매화의 아이들 - 「세정(1)」

by 제인

세정(1)


한정 언니가 있는 곳은, 달라지기 시작한 내 가슴처럼 작고 동그스름한 언덕 같았다. 열여섯 살의 나는,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당하지 않은 일에 소리를 내고, 횡포에 맞서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묵과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은 여느 평범한 집에서 자란 사람도 힘들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언니를 보낸 날,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인우 언니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하실 열쇠를 내게 건넸다. 우리 모두 아저씨가 방문을 열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다음에 일어날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니의 죽음만큼이나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2층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짐을 나눠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언니가 떠난 후에도 매화네는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손님이 들어오거나.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우리는 여전히 맞고도 울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시장의 소음과 냄새도 여전했고, 옆 골목의 공사 소리는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학교에 가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하고 책가방을 정리하는데 지우 오빠가 다가왔다.


“지난번에 써달라고 했던 거.”

“이번엔 빨리 썼네.”


내가 학교에 다녀서 좋은 점은 교과서를 돌려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언니, 오빠에게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하듯 알려주었다. 특히 지우 오빠는 누구보다 공부를 좋아했다. 시험 기간이면 옆에서 같이 밤을 새워주기도 했다. 나는 언니들과 오빠가 쓴 글들을 교내 백일장에 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공부도 잘하고, 시도 잘 쓰는 강세정이 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곧 방학이지?”

“응. 방학 같은 건 왜 있는지 몰라. 어차피 부모님들도 다 일하고 애들은 집에만 있던데. 안 그래?”

“선생님들 쉬라고? 너같이 말 안 듣는 애들 상대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내가 뭘 말을 안 들어? 나 엄청 모범생이다? 그런데 거짓말이 커지는 것 같아서 불안해.”

“왜?”

“선생님이 대학도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고 하셔서. 내 글은 오빠를 훔쳐서 쓰는 거잖아. 오빠도 알잖아, 나 일기도 쓰기 싫어한 거. 그것도 다 오빠랑 언니들이 써 준 건데. 근데 괜찮아. 내가 대학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냥 대충 둘러대면 되니까.”


오빠는 가방 지퍼를 올려 닫았다. 가방을 멜 수 있게 도와주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마음이 아팠다. 그 행동이, 그때 나를 보는 눈빛이 이곳에 처음 왔던 어린 지우 오빠를 보는 것 같았다.


“대학을 왜 못 가. 가.”

“내가 어떻게 가? 아저씨가 보낼 것 같아? 집 밖에 이렇게 나가는 것만도 감지덕지하지.”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우리처럼 여기 갇히려고? 너도 없어지려고?”

“오빠.”


오빠는 내 두 손을 가져가더니 꽉 쥐었다. 얇게 쌍꺼풀진 눈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세정아.”


그는 아랫입술에 침을 묻히더니 잠시 뒤를 돌아보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쯤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 나가. 꼭, 나가. …… 나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

“나 혼자는 싫어.”

“우리도 갈 거야.”

“…… 정말?”

“그래. 정말.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는 거야. 우선 이 집을 나가는 것부터.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저었다.


“…… 모르겠어. 우리 다 같이 살면 안 돼?”

“잊지 마. 한정 누나가 말했잖아. 우리 이름을 잊지 말라고. 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누나가 왜 죽었는지 잊으면 안 돼. 세정아, 여기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어. 시간이 갈수록 우리도 없어질 테니까. 알아들어?”


오빠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우리 함께 떠나자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가능하지 않은 일은 빨리 잊으라고 했던 한정 언니는 이름은 기억하라고 했었다. 여기 남기로 한 대신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것에는 희망을 둔 것이라고, 인우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세탁기 앞에 서 있던 인우 언니에게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지하실문 열쇠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익숙하게 열쇠를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곧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 주었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

“두정 언니는?”

“한정이 보러 갔어.”

“다녀올게.”


지하실에서 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살짝 열었다. 두정언니가 멍한 얼굴로 앉아 옆집 담벼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관리되지 않고 버려진 채인 옆집은 꽤 오랜 기간 할아버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간 후, 빈집으로 남겨졌다. 가끔 그와 닮은 남자가 찾아와 환기를 시키는 것 말고는 누구도 찾지 않았다. 가끔 간병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마당에 나와 있는 그를 보기도 했는데 주로 졸고 있거나, 다 시들어버린 나뭇잎을 만지작거리거나 늙은 개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지루하다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고 성화였었다. ‘저 할아버지, 이제 아무도 못 알아보는 것 같아. 전에 아들이 왔었는데 누구냐고 묻더라’ 두정언니는 2층 베란다에 서서 할아버지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기하잖아. 우리한텐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없으니까. 우리는 나이 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말할 때마다 한정 언니는 오히려 담담해 보이는 동생의 어깨를 끌어안고 이마를 잠깐 대고 있었다.


조심스레 한 발 내딛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인우 언니와 같은 표정으로 미소 짓더니 이리 오라고 양팔을 벌렸다. 나는 빠르게 걸어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세정아, 나 부탁이 있는데.”

“뭔지 알거든? 곧 지우 오빠 생일이잖아. 이번에도 롤 케이크지?”

“응. 고마워. 인우 언니가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는데, 그럴 수 없잖아? 누구 생일인데.”

“맞아, 누구 생일인데. 언니, 나도 부탁이 있는데.”

“뭔데?”

“오늘 밥 한 공기 다 먹기. 가능?”

“음…… 노력!”


그녀의 말에 내가 눈을 흘기자,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노력한다니까?’라고 말했다. ‘좋아, 노력은 아름다운 거랬어’ 내 말에 언니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마당에 나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하실 문은 허락된 시간에만 열렸고 그 허락된 시간은 식사 시간과 2층으로 올라갈 때뿐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쯤 아저씨는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학교에 갈 때 지하실 열쇠를 한정 언니에게 맡기라고 했었다. 이제 열쇠는 인우 언니에게 있고, 나는 모두가 제 자리에 있는지 다시 확인한 후에야 대문을 열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등교한 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이 좋았다. 어두운 교실, 열린 창문 사이로 그 계절의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우리가 같이 학교에 다니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상상했다. 상상 속 우리는 그저 웃고 있었다, 지우 오빠의 말도 안 되는 농담에 야유하고, 두정 언니의 장난기에 깔깔대며 하루를 보냈다. 내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한정 언니와 정글짐 꼭대기에 앉아 크게 노래를 부르는 인우 언니. 우리는 마지막 종이 치면 쏜살같이 분식집으로 달려가 사장님을 정신없게 만들고, 후식으로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골목길을 휘젓고 다닌다. 그렇게 다니다가 밤이 오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만난다. 내 상상은 언제나 거기까지다. 더 이상의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다음은 언젠가 우리가 자유로워졌을 때 채워 넣고 싶다. 그래서 나의 상상력을 누군가 놀리는 것에 ‘뭐 어때, 아직 겪어보지 않은 걸’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지만.


지우 오빠가 쓴 시는 내 이름으로 제출되었다. 나는 그가 쓴 시를 읽지 않았다. 접힌 종이를 펼치지 않고 그대로 제출했다. 언제나 그래왔다. 시를 읽어 본 한영호 국어 선생님은 ‘너 요즘 괜찮아?’라고 물으며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던 펜을 세우고 초록색 책상 보호대를 살짝 두드렸다. 내 시가 당선이 되면 교내 게시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의 마음을 제일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그 마음을 마주하고 제일 처음으로 아픈 사람도, 역시 나였다.


나는 누군가 베어버린 너의 날개에 기대

나는 말할 수 없었던 우리의 미래를 꿈꾸었다.

나는 꿈을 꾸고 너는 끝을 보고

나는 너와 살고 싶었고 너는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시에 관해 물어도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어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니들이 쓴 일기를 대신 내고, 오빠가 쓴 글에 내 이름을 적어 내면서 바랐던 것은, 모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비밀 속에 가라앉은 우리의 진실이 떠오르고 떠올라, 누군가의 손에 닿아, 마침내 읽히기를 바랐다.


“강세정! 교무실로!”


반장이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교복 치마를 탁탁 털고 일어섰다. 칠판지우개를 털고 있던 김민아는 ‘너 올 때 한국쌤한테도 들렀다 와라’라고 말했다. ‘한국쌤’은 한영호 국어 선생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아이들은 별명도 ‘한국쌤’이라며 선생님을 놀려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아는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담고 말했다.


“시간 나면 매점도 들리고! 시간 나면.”

“뭐, 노력은 해볼게.”

“아니야, 제발. 시간 날 거야.”

“안 날 것 같은데?”

“치사하다, 강세정! 주번 너무 바쁘다고.”

“야, 그것도 네가 자꾸 지각해서 주번 된 거 아냐. 열심히 해, 더 열심히 해!”

“와, 진짜 강세정!”


나는 열여섯 강세정이 되어 웃었다. 아무 고민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한껏 웃은 뒤, 뒤돌아서서 민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교무실 벽에 세워져 있는 전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담인 강철환선생님 자리에 가 꾸벅 인사를 했다.


“어, 세정아. 저기 의자 가져와서 앉아.”


창문 아래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는 생활기록부와 학생 카드를 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바쁘시니?”

“네.”

“아버지는?”

“아버지도…….”

“전화 통화만 해도 되는데. 너 정말 실업계 가는 걸로 결정한 거야? 선생님이 부모님이랑 얘기해 볼게. 요즘 장학금 제도도 잘 돼 있고, 교장 선생님 추천서도 제출하면 문제없이 받을 텐데. 너무 아까워서 그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랑 상의해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부모님께는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


교복 치마에 구깃구깃하게 잡힌 주름이 신경 쓰여서 손가락으로 주름진 부분을 긁었다.


“그래, 그런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는 말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너도 부모님도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여기 부모님 직업란에 두 분 다 장사라고 적었네. 같이 일하셔?”


나는 카드에 적힌 ‘장사’라는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부모님은 함께 장사를 해요. 더러운 장사요.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그가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대답했다.


“네.”

“알았어. 그만 가봐, 그리고 이거 반장한테 전달해 줘. 학급 문고 만드는 건 어때?”


그는 작년 졸업생들이 만든 문고를 내밀었다. 나는 책을 받아 들고 문제없다는 듯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의자를 접어 제 자리에 두고 한국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선생님, 아까 들리라고 하셔서요.”

“어, 세정아. 잠깐만. 이거, 아직 게시판에 걸진 않았는데 청소년 문학 백일장이 열린대. 12월 31일까지 접순데 이번에도 참가할 거지?”


그는 백일장 공문을 보며 교사 수첩에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다. 내가 쉽게 대답하지 않자,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오. 저 참가 안 할래요.”


선생님들의 볼펜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한국쌤의 볼펜은 엄지로 퉁겨져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잡혔다가, 또 아슬아슬하게 돌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 진학이랑 관계있어?”

“이번엔 쓰기 싫어서요.”


그는 아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볼펜 끝을 입술로 물었다가 책상에 내려놓았다.


“일단 가져가. 쓰고 싶은 것도 자기 마음이지.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알겠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요. 나는 또 미소 지었다. 포스터를 받아 들고 문고 사이에 끼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닦다 판 칠판처럼 뿌옇게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를 인정했다가도 다시 부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팔을 휘휘 저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다. 태어난 이후의 모든 것을 직접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나태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데.

나는 정말 그럴 수 있는데.


교실로 돌아와 반장에게 문고를 건네고 민아의 자리에 포스터를 두었다. 책상 서랍에 두 손을 넣고 손바닥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 곧 어둠의 계절이 온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무도 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지하방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날을 말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한정 언니는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노는 것, 두정 언니는 버스를 타고 멀리 가보는 것, 인우 언니는 바다를 보러 가는 것, 지우 오빠는 발길 닿는 대로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걷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나중에는 집을 지어 다 함께 살자고 약속했다. 요일마다 식사와 청소 당번을 정하고, 주말 당번이 정한 일정대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모두 한정언니와의 하루를 기대

했는데 이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테니, 우리는 언젠가 놀이공원에 가 그녀를 기리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시장에 있는 가스 배달 가게의 선구 오빠에게 돈을 건네고 날짜를 알려주며 케이크를 부탁했다.


“이번에도 롤케이크?”

“비밀 엄수.”

“하루이틀 장사하나. 걱정하지 마라.”

“진짜 고마워.”

“내 니한테… 뭐 물어봐도 되나? 전에 소주… 진짜 네가 마신 거가? 아니쟤?”

“내가 마셨는데. 술맛이 궁금해서.”


그는 못 믿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 대답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더니 곧 오토바이에 가스통을 실었다. 그러고는 내가 건넨 돈을 뒷주머니에 넣고 모자를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빠, 나 갈게.”

“야아, 강세저어이.”


돌아선 내 등에 대고 그가 물었다.


“니는 그래 사는 거 개안나.”


나는 돌아서서 물었다.


“어떻게 사는 거?”

“니 질질 울면서 다닌다 아이가?”


나도 모르게 내 등이 젖어있었나 보다. 나는 그가 모르게 손으로 등을 만지작거렸다.


“오빠, 나 열여섯이야. 사는 게 뭔지도 모르거든?”

“대포까지 마라. 내도 보이는데 네가 모를 수 있나?”

“내가 대포를 왜 까. 그리고 대포는 쏘는 거거든?”

“그래 고마, 니 억수로 발랄하네. 잘 가래이.”


나는 웃으며 다시 뒤 돌았다. 건어물 가게와 생선 가게에 들렀고, 슈퍼마켓에 가 소주 두 병과 맥주 다섯 병을 샀다. 지갑을 열어 지난달 외상값을 갚았다.


“먹고 싶은 과자 있으면 하나 골라서 가져가.”


월초에 이루어지는 사장님과 나와의 기브 앤 테이크. 지갑에서 돈이 뭉치로 나오는 날에는 아무도 모르는, 선물 같은 보상이 주어졌다. 나는 언제나 껌이나 사탕을 집어 교복 허리춤에 하나씩 끼워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껌이다. 턱이 아프게 씹다 보면 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각종 생각들을 접고, 접고, 또 접을 수 있다. 장 본 것들을 양손 가득 들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열쇠로 대문을 열고, 의식처럼 크게 숨을 대여섯 번 쉬었다가 허리를 숙이며 바닥을 바라보았다. 한정 언니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눈으로 인사를 건넨 뒤 집안으로 서서히 잠겨 들어간다.

이전 06화매화의 아이들 - 「한정(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