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한정(2)」

by 제인


「한정(2)」


한정이 그 방에 들어간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두정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서더니 부식의 방문 앞에 섰다. 숨을 크게 쉰 후 결심이라도 한 듯 문을 차기 시작했다. 두정을 지켜보던 지우는 매화의 방 문고리를 쥐고 흔들었다.


“언니 몸이 너무 뜨거워요! 제발! 병원에 좀 데려가 주세요! 제발요, 내보내 주세요!“


두정의 목소리와 함께 세정의 목소리도 들렸다. 내보내달라는 외침에 매화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잰걸음으로 방으로 가, 그녀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녀는 세정의 바지 주머니에 달린 열쇠를 빼앗더니 모두 지하실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인우는 핏물이 가득한 대야를 매화를 향해 집어던졌다.


“너는 나쁜 년이야! 지독한 년, 너는 죽어서도 영원히 불타 죽을 거야! 네가 그렇게 되는 꼴을 꼭 살아서 지켜볼 거야!”


인우는 인우가 아니었고, 두정은 두정이 아니었다. 매화가 인우의 머리채를 잡아 지하실 쪽으로 끌자, 그녀는 매화의 손목을 물어버렸다. 비명과 함께 두 사람이 계단을 굴렀다. 부식은 세정의 몸을 걷어찼다. 그를 말리려던 두정은 엄청난 힘에 밀려 책상 모서리에 몸을 부딪쳤다. 지우가 달려와 두정을 부축한 뒤 구석으로 보내고, 부식 앞에 섰다.

언젠가 부식은 자신보다 큰 지우를 올려다보는 게 거지 같다고 했었다. 그는 지우의 배에 보란 듯이 자신의 큰 주먹을 꽂았다. 그리고 쓰러진 지우 위에 올라타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계단 쪽에서는 매화와 인우의 비명이 엉켜 들렸다. 지우의 코피가 바닥에 튀더니 부식의 주먹에 곧 입술까지 터졌다. 두정의 양말은 지우의 피로 물들었다.


더는 안 된다.

두정은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매화가 인우의 다리를 붙잡아 끌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두정은 칼끝을 매화의 손목에 가져다 댔다.


“그 손 놔. 아니면 여기, 한 줄. 더 그어줄거야.“


누가 뱉은 말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두정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모두가 매화의 왼쪽 손목에 남은, 두 개의 가느다란 흉터를 알고 있었다. 매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안 치워?”


손목을 향했던 칼끝이 이제 매화의 목을 향했다.


“아니야. 여기가 좋겠어요.“


두정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칼끝에서 피가 베어 나왔다. 놀란 매화는 인우의 다리를 놓았다.


“놨어, 놨다고!“


매화는 두 손을 치켜들었다. 인우는 구겨져 있던 몸을 간신히 일으키더니 매화의 팔을 잡고 그녀를 주저앉혔다.


“병원에 데려가요.”

“나도 데려가고 싶어! 그런데 가잖아? 쟤 보면 모르겠어? 지금에서 가면 일이 아주 커진다니까?”

“우린 그런 거 몰라! 당장, 말해요.”


매화는 힐끗 뒤를 돌아 두정을 확인했다. 칼끝은 그녀의 등을 향하고 있었다. ‘강부식! 강부식!’ 피부 끝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매화는 다급히 부식의 이름을 외치며 일어섰다. 그녀의 바로 뒤에 두정이 섰다. 그리고 인우가 둘을 따랐다.

지우의 신음에 인우가 달려가 그를 안아 들었다. 부식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잔머리를 넘기더니 매화 뒤에 선 두정과 칼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가지가지네?“


부식이 다가오자 두정은 매화의 허리춤을 붙잡고 칼끝을 배에 가져다 댔다. 매화가 목을 들어 보이며 부식을 향해 어떻게 좀 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 미친년들이! 칼 안 내려놔? 진짜 여기서 죄다 뒈지고 싶어?”

“아아! 아파! 어떻게 좀 해 봐! 진짜 찌를 것 같다고!”

“너도 그만 뒈져야 해. 너무…… 어? 오래 같이 살았어. 잘됐지 뭐, 그래 찔러. 찌르고 죽이고, 그러고 다 같이 빵에 가면 되겠네, 어?!”

“저 새끼가, 강부식, 이 미친 새끼야!”


매화는 부식을 보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칼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면서도, 누구 하나 여기서 못 하겠다고 손을 들어도 끝이 아니었다. 누구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았다.


“…… 언니!”


세정의 목소리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러지 마, 정신 차려, 언니!”


두정이 칼을 떨어뜨렸다. 방으로 뛰어 들어가자, 세정이 한정의 몸을 올라타고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숨을 안 쉬어! 숨을 안 쉬어!”


‘한정 언니, 오늘 학교에서 배웠는데 심장이 멈추면 여기 왼쪽 가슴 위를 이렇게 누르면 살 수 있대’ 세정은 오른 손바닥을 왼쪽 가슴에 대고 누르는 시늉을 했다. ‘나중에 세정이가 언니 살려줄 수도 있겠네?’


세정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다. 참고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맞아서 퉁퉁 부은, 피범벅이 된 얼굴의 지우가 세정을 끌어내리고 한정 위에 올라타 가슴을 눌렀다.


“누나! 누나! 안돼! 누나 눈 좀 떠!”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누가, 왜 이런 상황에 닿게 한 걸까.

두정이 한정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댔다. 두정은 한정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지우가 누를 때마다 두 사람은 같이 흔들렸다.


“그만해, 지우야. 그만해. 언니 아플 것 같아.”

“두정아!”

“…… 그만하자, 우리 그만하자.”


세정과 지우가 흘린 땀과 눈물로 한정의 얼굴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두정은 한쪽에 떨어져 있던 수건을 가져와 한정의 얼굴을 닦았다. 부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병원? 이름 있어? 사람이 실종되면 말이야, 그냥 다 없어지는 거야.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없는 사람이 없어졌다. 두정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았다. 그러나 이내 한정의 목소리가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두정아, 귀가 들리지 않고 더 괴로운 게 뭔지 알아? 울음소리가 머리에서 들려. 눈 속에서, 입속에서, 언젠가는 손가락 끝에서도 들렸어'


그 누구도 찾지 않았고, 그 누구도 모르게 가버렸다. 언니는 왜 그랬을까. 두정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왜 그랬냐고, 왜 그냥 가버렸냐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왜 이렇게 되었냐고, 왜, 왜, 왜. 죽으면 편해진다는 말은 맞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살아있을까.

두정은 고개를 들었다. 지우와 인우가 한정의 몸을 붙들고, 세정이 방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언니, 고마워. 하루도 빠짐없이 고마웠어. 언니가 사라지는 이 순간에도 우리를 안아 주고 싶어 하는 거…… 알아. 언니는 왜…….”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문제가 어렵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세정의 뾰로통한 입술을 보며, 한정은 몽당연필의 끝부분을 둥글게 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우리의 매일이야말로 숙제 같다고 했다. 그러니, 그 문제가 제일 어려운 문제는 아닐 거라고. 그리고 풀어도 못 풀어도 그만이라고 했다.


해본 적 없던 일을 위해 아이들은 눈물을 닦고 일어나 한정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정과 인우가 한정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이는 동안 지우는 이불장에서 두툼한 겨울 이불을 꺼냈다. 그 위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눕히고 흰색 천으로 덮어 주었다.

아이들은 이불 끝을 앞뒤로 잡고 매화와 부식을 지나쳐 아래로 내려갔다.


“너무 가볍다.”


세정의 말이 아파서 두정은 팔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뒷마당으로 나와 그녀를 내려놓았다. 지우와 세정이 지하실 창고에서 삽과 공구 통을 가져왔다. 아이들은 말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땅 파는 소리만 들렸다. 밤늦은 시간, 누군가 대문 벨을 눌렀다. 시끄러운 벨 소리에 부식이 2층 창문을 열었다. 지우가 삽을 집어던지고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오늘 장사 안 해?”

“씨발…… 꺼져.”


지우는 발소리가 멀어지자 2층을 올려다보았다. 부식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도 한계인 것 같았다. 한정이 있던 방의 불이 꺼졌다. 문 닫는 소리가 아이들이 서 있는 곳까지 전해졌다. 지우는 다시 돌아와 삽을 붙잡았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 지나 곧, 같은 하루가 시작될 참이었다. 아이들은 구덩이에 한정을 내려놓고 천천히 흙으로 덮었다. 천 위로 보였던 몸의 굴곡이 점점 사라지자 두정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무에 몸을 기댔다. 세정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마시다 남은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그거 어디서 났어?”

“한정 언니가 마시던 거야.”


세정이 소주병을 두정에게 내밀었다. 남아있던 소주가 한정이 누워있는 여기저기에 뿌려졌다. 다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인우는 모종삽으로 흙을 다듬더니 손으로 토닥이기 시작했다.


“곧 한정 언니 생일인데.”


세정의 말에 인우가 땅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최한정, 생일 축하해.”


지우가 흙을 두드리며 말했다.


“한정누나, 생일 축하해.”


두정은 한정이 누워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생일날 말해줄래.”


두정은 딱 한 번만 더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칠고 따가운 흙의 감촉이 도리어 한정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한정이 누워있는 곳 위에 앉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감았다.

한정의 다리 사이로 흐르던 피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렸던 때, 진짜 악마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살고 싶어서.

자신이 죽이는지도 모르게 죽이고 있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애써 모르는 척했던-이 집의 악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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