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두정(1)」

by 제인

「두정(1)」


이제 지우는 두정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면 고개를 돌리거나, 한 마디라도 주고받으면 폭발할 것 같던 눈이 아니었다. 두정은 그의 눈에서 그 어떤 것도 읽을 수가 없어서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두정은 그를 바라보며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졌다. 두정은 마지막에 등을 돌리면서도 그의 왼쪽 어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정은 이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안갯속을 걷는 것처럼 두정의 걸음은 발을 디딜 때마다 어디를 디뎌야 안전한 것인지 몰라 휘청거렸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두 시는 끈적했고 어지러웠고 볼품없었다.

환한 시간의 탈출을 꿈꿨던 적은 없었다.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새벽 두 시가 아닌 오후 두 시, 그렇게나 고대하던 순간에 마주 선 둘이었지만 해피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정이 대문 앞에 선 순간 돌멩이 하나가 발 옆에 떨어졌다. 언제 그 많은 돌을 쓸어 담았는지 그의 얇은 바지 주머니가 불룩해 있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돌 한 개를 또 던졌다. 돌들은 두정을 향하지 않고 던질 때마다 다른 곳에 떨어졌다. 두정은 그의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부어올랐고, 눈가는 점점 붉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의 기억을 다 지울 거야. …… 너는 그렇게 살다 죽어. 여기에 와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운명이었다는 말을 믿고 살았지. …… 그 말을 믿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믿어서 살았던 거야.”


두정은 고개를 저었다. 떨어지지 않을 눈물이 속눈썹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지우 넌, 정말 황매가 돼버린 거 아니야?”

“…… 그래, 그럴지도.”

“김지우, 나랑 같이 가자.”

“혼자 가.”


그가 피로 물든 두 손으로 셔츠 끝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봐. 난 이 꼴로는 못 가.”


이곳에 온 후로 우리 모두 그런 꼴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두정은 그 말은 뱉지 않았다. 두정은 지금 그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두정아, 나는 내내 …… 환하고, 따뜻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널 보내주고 싶었어. 더 행복해지게. 우리 항상 행복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 기도가 뭔지도 모르면서 매일 밤, 그랬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보내서 미안해.”


지우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이 보이게 펼치고 두정의 배를 아래위로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만 두정이 가방으로 배를 가렸다. 두정이 돌아섰다.


“언니!”


두정은 세정의 목소리에 대문을 나서던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케이크 상자를 넣었던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거 가져가. 내 교복 치마야. 언니 줄게.”

“너는 어쩌고.”

“괜찮아. 어서 가져가. 나중에, 나중에 우리 만날 때 입고 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게. 응?”


나중이 있을까. 두정은 그런 생각을 하며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세정의 미소처럼 곱게 접힌 교복 치마를 바라보았다.


“우아하게도 개켰네.”

“우아하지? 어서 가. 그리고 언니, 소식 꼭 전해 줘.”


두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너머로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지우를 보았다. 가방을 내려 교복을 집어넣었다.


“세정아, 졸업 축하해. 네가 우리 대신에 해준 일들 알아. 모두 고마웠어.”


두정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대신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다치지 마. 울고 싶을 땐 울어버리고 말아. 울고 토하고 욕하고, 그렇게 하나도 마음에 남기지 말고.”



이제 두정은 상처투성이었던 어린 세정의 앞에 섰다.

팔이 빠졌는데도 참아 넘기고, 가슴이 멍투성이었는데 숨만 잘 쉬고, 발목이 퉁퉁 부었는데도 꾹 참고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었던 아이. 어쩌면 이 집에서 가장 가여웠고, 가장 처절하게 살았던 동생, 세정.

두정은 그녀의 팔등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회초리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겼고, 어린아이는 밤마다 깨 그 흉터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언니, 흉터가 자꾸 일어나. …… 일어나’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죽도록 아프다는 말이었음을 두정은 이제 알 것 같았다.


두정은 대문을 넘었다. 다른 집과 똑같은 갈색 대문을 가진 매화네를 나서며 두정은 초인종 옆에 붙은 ‘강부식’이라는 이름을 뚫어져라 보았다. 문패를 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시장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도착한 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어디까지 가냐는 물음에 가장 먼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두정은 가장 먼 곳으로 가는 표를 가슴에 품고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 인우가 보고 싶어 했던 바다에 가서 목이 쉬어라 아이들의 이름을 비명처럼 외쳤다. 동그랗게 말려 들어오는 파도와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할, 흩어지는 파편들을 어두워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잡초만 무성한 마른땅에 문패를 파묻고 수백 번을 밟아댔다.




떠나온 집을 찾아가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가난한 동네는 여전히 가난했고, 사람들도 여전했다. 두정은 그곳에서 매화나 부식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우면서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거칠한 팔꿈치 같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한정의 손을 잡고 내려왔던 날을 떠올렸다. 집을 떠나올 때 부식이 준 단팥빵 한 귀퉁이를 입안에서 한참을 오물거렸었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도, 몸에서 찌든 내가 나고 오래된 티셔츠를 누렇게 될 때까지 입어도, 오빠와 남동생이 두정을 괴롭혀도, 한정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 달고 짠맛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쉽게 얻지 못했던 달콤한 향 때문에 부식의 손을 잡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두정은 지렁이같이 좁고 긴 골목길을 따라 끝까지 걸었다. 철제문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쇠가 채워져 있는 걸 보니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누구세요? 거기 지금 아무도 없는데.”


두정이 고개를 돌렸다. 이따금 한정과 두정의 손에 땅콩사탕을 쥐어 주었던 아주머니가 여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는 어디를 다녀오는지 빨간색 대야와 검은색 비닐봉지 뭉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집 앞에 그것들을 내동댕이치고 두정에게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두정이 맞지? 아이고, 두정아! 너 어떻게 된 거야! 한정이는? 한정이 어디 갔어, 이리 와, 이리 와. 아줌마 집에 들어가자.”


어릴 때 보았던 집 그대로였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사탕 바구니와 전화기, 그때와 같은 꽃무늬 밥상, 노란색 장판과 자글자글한 벽지.


“엄마는요?”


아주머니는 물을 따르다 말고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두정은 그녀의 늘어진 볼과 턱, 목의 주름을 찬찬히 살폈다. 그녀는 오늘 처음 마시는 물인 듯 두 손으로 컵을 꽉 쥐고 급하게 들이켜더니 탁 소리 나게 컵을 내려놓고 두정의 손을 꽉 쥐었다.


“좀 일찍 오지. 엄마 작년에 갔어.”

“…… 가다뇨?”

“쓰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손도 못 쓴다더니 그냥 누워있다가 갔어. 위암 말기랬나. 네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거야. 응?”

“우리를 찾았어요?

“애들 없어졌다고 네 엄마가 신고도 했는데 장석이 놈이 가출했다고 해버렸으니 누가 찾아주겠니? 찾는 시늉만 하다 끝났지.”


그렇게 그냥 포기해 버렸구나. 부식은 집을 나가면 죽여버리겠다고, 땅끝까지 쫓아가서 데려오겠다는 말을 수시로 해댔다. 엄마는 우리를 찾고 있을까, 두정이 한정에게 물을 때마다 그녀는 찾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엄마니까, 당연한 거라고. 우리가 잘못한 거라고.


“한정이는 왜 같이 안 왔어?”

“아줌마, 저 갈게요.”

“어디 가는데, 어디 있을 데는 있는 거야? 두정아. 잠깐만. 아줌마가 밥 차려줄 테니까 먹고 가. 금방 해줄게.”


일어서려던 두정이 털썩 주저앉았다.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입에 넣은 것이 없었는데, 뱃속의 아이는 이미 굶주림에 익숙해진 건지 미동도 없었다. 그런데 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지고 찌개가 끓고 밥솥의 밥이 이가 나간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기고 세정이 급식 때 자주 나온다던 멸치볶음과 김이 순식간에 그릇에 담겨 두정의 앞에 놓였다. 이미 가까이에 있는데 자꾸만 자신의 앞으로 가까이 오는 반찬을 보며 두정은 숟가락을 들었다. 찌개에 밥을 말아 크게 한 숟가락 올리자, 아주머니가 멸치볶음을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눈물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꽉 감고 밥을 밀어 넣었다. 삼키지 못하고 그대로인 밥 한 덩어리.

두정은 울고 싶었다.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입안에 든 것을 뱉고, 모조리 토해냈다. 위가 쪼그라들고, 식도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달려와 등을 두드려주자, 거짓말처럼 메슥거림이 멈췄다. 그녀는 대야에 받아놓은 물에 수건을 적시고 두정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꽉 짜진 수건이 두정의 눈물을 가득 머금었다. 두정은 세면대를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누구인지 모를 얼굴을 마주했다.

‘나 인가요?’ 한정이 매일 밤 쓰다듬어줬던 얼굴. 자매니까, 닮았다고 하니까 두정은 한정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알고 있었다.

두정은 손을 뻗어 거울에 손끝을 갖다 댔다. ‘너는 이마가 둥글고, 나보다는 넓어. 콧대는 높은 편이고. 광대가 조금 나왔고, 아랫입술이 도톰해' 한정의 말이 맞았다. ‘언니는 그냥 예뻐' 두정이 그렇게 말하면 한정은 두정을 흘겨보며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간지럼을 태우며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야, 언니는 그냥 예쁘다니까? 언니가 예쁘니까 나도 예뻐'라고 말하자 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닮았어. 그럼 된 거야' 두정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거울 속의 한정을 보며 웃어 보였다.


“아줌마, 저 밥 먹을래요.”


두정은 밖으로 나와 밥상 앞에 앉았다. 기회가 될 때 먹어둬야 했다. 두정은 언니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먹으라고 등을 만져주고, 급히 먹느라 국물을 흘리면 들고 있던 휴지로 덮어 닦아줄 것 같았다.


“두정아, 어디 있는지 전화번호 주고 가.”

“제가 전화할게요. 밥 잘 먹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전화기 옆에 둔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자, 두정이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아 들었다. ‘다음에는 제가 밥 사 드릴게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오천 원을 꺼내 두정의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굶고 다니지 마, 다음엔 한정이랑 같이 오고’ 두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와 처음 걸었던 길로 돌아왔다. 두정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잘라둔 신문지를 꺼냈다. ‘서울 미혼모자시설, 청가원. 사회적 편견과 낙인 속,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청소년, 미혼모. 두 단어가 두정의 입안에서 천천히 돌았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동전 지갑에서 백 원을 꺼냈다. 신호음이 주는 긴장감에 두정은 낡은 전화선을 손가락으로 감싸 쥐었다.


“청가원입니다.”

“…… 저.”

“네, 말씀하세요. 입소 상담 원하시나요?”

“아, 네, 네.”

“이름 알려주세요. 찾아오실 수 있나요?”

“이름은 최두정이고, 지금 가도 될까요? 여기, 신주동인데 버스 타고 가려고요.”

“그럼 3시쯤 도착하겠네요. 도착해서 상담실로 바로 오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먼저 끊자 두정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배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두정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차례 청가원의 주소를 보여주고 나서야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내리는 곳 가까이에 앉아 버스 노선표를 보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지 숫자를 셌다. 문이 열릴 때마다 두정의 시선도 정류장에 머물렀다. 한 겨울의 뜨거운 햇빛이 그녀의 둥근 이마에 닿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빛을 그대로 받았다. 크게 숨을 마시고 내쉬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는 아이, 좌판에 채소를 내놓고 파는 사람들, 손수레에 실린 폐지를 내리는 할아버지와 옆에 서서 노끈을 풀고 있는 할머니. 코트를 여미며 걷는 여자들. 검은색 단화를 신고 바쁘게 뛰어가는 학생들.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가 마트 앞에 서서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칠 하고 있었다. 버스가 달릴 때마다 풍경도 달라졌다. 버스는 어느 학교도 지났고, 시장도 지났다.


‘두정아! 두정아!’

한정이 야윈 손으로 두정의 손을 잡아당겼다. ‘나 물……’ 두정은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을 따랐다. 숟가락 가득 물을 담아 입안에 흘려주자, 한정은 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넘겼다. 바짝 말라서 갈라진 입술 사이에 마른 피가 붙어 있었다. 두정은 젖은 손수건을 작게 접어 한정의 입술에 갖다 댔다. 두정이 한정의 이마에 올려둔 수건을 내려 대야에 넣었다. 반이나 채워왔던 얼음이 다 녹았다. ‘언니, 나 물 좀 갈고 올게’ 두정이수건을 다시 올리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한정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언니, 왜 이래? 코피 나. 언니 괜찮아?’ 두정이 입술에 올려둔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지만, 코피는 멈추지 않고 수건을 붉게 물들이더니 곧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두정이 한정의 어깨를 안아 올리려 했지만 축 늘어진 한정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쳐진 머리가 자꾸 바닥에 닿았다. 갑자기 한정이 손을 들어 두정의 어깨를 밀쳐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두정은 저만치나 몸이 밀렸다. 검은색 피가 한정의 다리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다. 끝없이 쏟아질 것 같아 두정은 한정이 누운 두꺼운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다리를 붙잡았다. 검고 붉은 피가 고이더니 매트의 주름을 타고 두정의 몸에도 닿았다. 벌어진 다리사이에 자리한 핏덩이, 아니 핏덩이가 아니었다. 두정이 다가가 손을 대자 핏덩이에서 작디작은 손이 뻗어 나와 두정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아!’


“이봐요! 이봐요!”

두정이 눈을 떴다. 두정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 버스 기사가 앞에 서서 두정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승객들이 두정을 쳐다보더니 곧 시선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 종점요? 호산 교차로에서 내려야 하는데 여기 어디예요?”

“호산 교차로? 아이고, 한참 왔네. 여기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저기 서 있는 버스 보이죠? 4시에 출발하니까 타 있든지 아니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호산 교차로 가는 버스서는 정류장이 있으니까 그리로 가도 되고.”

“아저씨, 지금 몇 시예요?”

“3시 40분.”

“저, 죄송한데 여기 공중전화 있어요?”

“공중전화? 여기는 없는데. 대로변까지 내려가야 해요. 일단 내리고, 우리 사무실에서 한 통 쓰게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정은 가방을 손에 든 채로 버스에서 내렸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들어가 청가원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현재 있는 곳을 얘기하고 곧 출발하겠다고 말하자 상담실 직원은 내리자마자 전화를 주면, 정류장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사무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두정은 나가려는 버스가 앞에 오자 일어나서 가방을 멨다.


“아가씨, 핸드폰이 없어요?”


두정이 뒤를 돌아보자 좀 전에 버스를 운전했던 기사가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다.


“네.”

“어디, 멀리서 왔어요?”


그의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전화 통화도 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니 모르는 척하고 싶지 않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핸드폰은 우리 애들도 다 있는 건데.”


세정이 핸드폰이 생기면 알려 달라고 했었다. 두정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버스에 올랐다. 이제 정말 정신 차려야 해. 그녀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초행길이면, 택시를 타는 게 나을 텐데.”

“괜찮아요. 내려서 전화해 주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어요.”

“그럼, 뭐. 아니 우리 기사 하나가 지금 퇴근하는데, 방향이 같아서 괜찮으면 데려다주라고 말하려 했지. 어디까지 가요?”


그가 남아있던 커피를 다 마신 후 종이컵을 구겼다. 검지로 이마 위를 긁으며 다가오자 두정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게, 쉽게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가방끈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는 배를 감쌌다.


“죄송하지만 담배 냄새가…… 아기가 있어서요.”


그 말에 그는 두정의 손을 보았다가 다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뒷문으로 내렸다. 그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흙바닥에 가래침을 뱉더니 운동화로 쓱쓱 문지르고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두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호산 교차로까지 여덟 개의 정류장을 지나야 한다. 어디든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당장 오늘부터 어디에서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한숨을 쉬는 순간,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