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두정(2)」

by 제인

「두정(2)」



청가원 상담실 직원인 김경희는 두정의 전화를 받고 두꺼운 니트 위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달려 나왔다. 그녀는 두정의 팔짱을 스스럼없이 끼더니 ‘여기서 멀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도로변을 벗어나 연립주택과 빌라들이 있는 주택가에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을 지나니 5층짜리, ’청가 모자원’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황토색 계열의 콘크리트 외벽에 세월이 느껴지는 균열이 보였다. 정문 옆에는 시설 표지판과 안내판이 있었고 입구 앞에 입소자들이 꾸민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저희 시설은 어떻게 아셨어요?”

“신문에서 봤어요.”


김경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정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유리문을 밀었다.


“일단, 사무실에 가서 따뜻한 차 마시면서 기다려요. 원장님은 30분 뒤에나 오신다고 하셔서요.”


두정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손끝에 닿은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편안해져 손깍지를 끼고 입김을 불었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가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는 이 순간이 꿈같았다.


“피곤해 보여요. 점심은 먹었어요?”

“네, 먹었어요.”


김경희는 책장에서 파일철을 꺼낸 후 종이 한 장을 뺐다. ‘인적 사항 확인이 필요한데, 여기에 작성해주세요.’ 볼펜과 종이를 내밀자 두정은 침을 삼키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나중에 써도 되나요?”

“별거 없어요. 이름, 연락처, 주소 같은 정보라서요.”

“그런 정보가 꼭 필요한 거죠?”


그녀는 왜인지 묻지 않고, 자리에 앉더니 나중에 쓰자고 했다.


“혹시 아기 주 수는 알아요?”

“잘 몰라요.”

“그건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면 되니까요. 쉬고 있어요.”


두정은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넣고 가만히 있었다. 혀끝을 입천장에 댔다가 치아에 가져다 댔다가 하며 코로는 숨을 뱉었다. 그리고 식도를 타고 흘러가는 물을 느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았지만 졸리지는 않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한정과 핏덩어리가 떠오르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문이 열렸다.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하네?’ 놀라 일어서는 두정을 보며 원장 최정순은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두정은 상담실로 들어가 최정순과 마주 앉았다. 60대로 보이는 얼굴에, 조금만 미소 지어도 환하게 웃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녀는 수첩을 열고 천으로 만든 필통에서 검은색 볼펜을 꺼냈다.


“현재 거주지가 어디시죠?”

“…… 없어요. 사실은 제가 집을 나온 지는 오래됐는데, 그 사이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지내던 곳에서도 나온 상태라 머물 곳이 없어요.”

“기본적인 서류는 확인이 되어야 입소할 수 있거든요. 신원 불명인 경우, 입소 절차를 밟기는 어려워요. 나이가 어떻게 되죠?”

“올해 열아홉 살요.”

“두정 씨, 주민 등록이 말소된 상태라면 재등록을 해야 해요. 일단 오늘은 숙직실에서 자고, 내일 주민센터에 가서 같이 알아보죠. 다른 보호자는 없나요? 아빠나 다른 형제나, 친척이랄 지요.”

“없어요.”


한정을 생각하자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을 찡그리자 메모하던 최정순은 숨을 작게 내쉬며, 수첩을 덮고 일어섰다.


“피곤할 테니 오늘은 그만하고 쉬죠.”

“감사합니다.”


5층 숙직실에 철제 2층 침대 두 개가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침대를 두드렸다.


“여기 아래 칸 쓰면 되고, 혹시 세면도구는 있어요? 없으면 여분이 있으니 줄게요.”

“있어요. 갈아입을 옷도 있고요.”

“그래요? 2층에 샤워실이 있으니까 샤워하고 싶으면 쓰고, 화장실은 5층 끝 쪽에 있어요. 6시에 저녁 올려 보낼게요. 혹시 무슨 일 있거든, 시간 상관없이 인터폰 1번 누르면 당직자가 받을 거예요.”


두정은 그녀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벽에 붙은 인터폰을 들었다가 놓는 그녀를 보며 두정도 따라서 ‘무슨 일 있으면, 1번’이라고 중얼거렸다. 문이 닫히고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 때야 큰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랫배가 뭉치는 것 같아 두정은 몸을 숙이고 1층 침대로 들어가 벽에 기대앉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언제 여섯 시가 된 건지, 그녀는 정신없이 문을 열고 식판을 받아 들었다. 흰 밥, 콩나물국, 멸치볶음, 시금치나물이 알맞은 양으로 올려져 있었다. 책상에 식판을 놓은 후 몸을 좌우로 틀어 찌뿌둥한 몸을 풀어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 세면도구를 챙겼다. 식판을 들고 1층으로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가자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몇몇 입소자가 보였다. 그들은 두정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녀의 배를 보고는 자기들끼리 몇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두정 씨, 밥은 입에 맞았어요?”


김경희는 식판을 들고 두정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두정의 식판까지 함께 반납해 주고 샤워실까지 데려가 주었다.


“오늘 제가 당직이라, 저녁 9시까지 사무실에 있을 거예요. 저도 열쇠 가지고 있으니까 무서우면 문 잠그고 자도 돼요.”


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다음 5층 숙직실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아 수첩과 연필을 꺼내 일기를 쓰고 내일 할 일을 아래에 적었다. ‘주민센터, 주민등록 재등록’ 그녀는 다음 장을 넘겼다. 여백에 ‘엄마, 언니, 나머지 가족. 가족. 인우 언니, 세정이. 그리고 지우’를 쓰고 수첩을 덮었다. 수건을 풀어 덜 마른 머리카락을 꾹꾹 눌렀다. 가방 안, 인우가 건넨 돈이 생각나 손을 넣어 신문지 책을 꺼냈다. 두정은 책상 위에 돈을 한 장 한 장 펼치고 천천히 세어 보았다. 백만 원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린 만큼, 침대 위에 몸을 누인 만큼의 돈이었다. 쓸 수 없는, 쥐면 흩어지고 사라질 눈물이 맺힌 돈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쓰라는 거야.

두정은 중얼거리고는 다시 책 속에 넣었다. 세정이 준 교복 치마를 꺼내 허리에 대 보았다. ‘지금은 못 입겠다’ 그녀는 치마를 반으로 접어 의자 위에 올려 두었다. 침대로 들어가 담요로 온몸을 덮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에 두정은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무거워서 처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우리 언니, 최한정.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언니 다른 따뜻한 곳으로 옮겨줄게. 인우 언니 고마워. 나 잘할 거야. 세정아, 언니가 곧 찾아갈게. 김지우…….”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한번 눈을 뜰 때마다 모두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시간은 과거로 흘러 처음 아이들을 마주했던 때로 돌아갔다.

다시 눈을 감고, 담요 끝을 붙잡았다.


아침 일곱 시쯤이었다. 누군가 문 앞에 두고 간 식판을 보면서도 어제부터의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자각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두정은 식판을 들고 와 책상에 놓고 수첩을 다시 펼쳤다. 김경희가 두고 간 건지 물병이 있어 컵에 물부터 따른 후 밥을 떠 김칫국에 말았다. 오늘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갑을 꺼내려고 침대맡에 둔 가방을 가져왔다.


“돈, 여기 뒀는데, 여기 뒀어! 분명히 다시 넣어뒀는데? 어디……?”

“두정 씨, 일어났어요?”


김경희가 노크를 먼저 한 후 문을 열었다. 정신없이 가방을 뒤적이는 두정의 모습에 그녀는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두정은 가방을 뒤집어 안에 있는 것을 몽땅 바닥에 쏟았다. 두정의 옷가지와 교복 치마와 인우가 챙겨준 갖가지 것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두정 씨, 왜 그래요? 뭘 찾는데요?”

“돈요. 가방 안에 돈을 넣어뒀는데, 없어요. 없다고요!”


두정이 침대 위로 올라가 담요와 베개 밑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할 말을 잃고 김경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가방에 둔 거 맞아요? 얼만데요?”

“백만 원요.”


생각보다 큰 액수에 놀란 김경희가 두정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와 앉았다.


“어제 확실히 있었어요?”

“자기 전에 확인하고, 가방에 다시 넣고, 머리맡에 두고 잤어요. 일어나 보니까 없어서…… 이, 이 밥 누가 가져다 놓은 거예요? 누구예요?”

“잠깐만요. 흥분하지 말고, 내가 알아볼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봐요.”

“그 돈, 제 전부예요! 그 돈…… 제 돈이 아니란 말이에요, 꼭 돌려줘야 한단 말이에요!”


김경희는 두정의 손을 붙잡았다.


“두정 씨, 알았어요, 잠깐만요. 일단 식판을 누가 올린 건지 확인해 볼게요. 마음 가라앉히고 여기 있어요. 알았죠?”

“같이 갈래요. 흥분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같이 내려가요.”


차분해진 그녀의 눈빛에 김경희는 1층 침대에서 빠져나가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여사님, 오늘 5층 숙직실에 식사 올려주신 분이 누구죠? 저 지금 잠깐 내려갈게요.”


김경희가 몸을 돌려 두정을 바라보았다. 두정은 바닥에 쏟아진 것들을 하나씩 주워 가방에 담고 지퍼로 잠갔다. 1층에 내려왔을 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돈을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팽배해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까지 떨려왔다.

두정은 벽을 짚은 채 복도를 지나 식당에 들어섰다. 식사 중인 사람들은 김경희를 보자 목례를 건넸다.


“한순희 여사님은요?”


이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는 한 여자를 보고 그녀는 손짓했다.


“여사님, 오늘 5층에 식사 올려주셨다고요?”

“응.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올라갔지. 아가씨가 자고 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식판 갖다 올려줬지. 왜?”

“그때 혹시 누구 본 사람은 없었어요? 가방 안에 돈이 있었는데 밤사이 없어졌다고 해서요.”

“돈? 어디에다 뒀는데? 나야 모르지. 책상에 식판 올려두고 바로 나왔으니까. 얼마였는데?”


그녀가 여자에게 다가가 작게 액수를 속삭이자, 여자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아니, 그 큰돈을 자기가 간수를 잘해야지. 원장님한테 얘기해야겠네. 아이 뭐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혹시 모르잖아.”


한순희는 식사 중인 여자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는 뒤에 서 있는 두정을 보며 말했다.


“다시 찾아봐요. 그게 밤새 어디로 갔겠어.”

“없어요. 찾아봤는데 없다고요.”


딱하다는 듯 두정을 보던 한순희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하며 조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그러니까, 도둑년이 나 도둑년이오, 하냐고. 그냥 경찰서로 가요.”

“여사님!”


김경희가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자, 식판을 반납하러 오던 여자 두 명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둘 중 한 명이 부른 배에 손을 올리더니 곧 의자에 올려둔 무릎 담요를 가져와 어깨에 둘렀다.


“뭐 잃어버렸어요?”

“…… 네.”

“돈? 여기 가져갈 사람 한 명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두정이 앞으로 나서자, 김경희가 두정의 팔을 잡았다.


“아니, 아니. 그만해요. 두정 씨, 일단 우리 사무실로 와요. 원장님 출근하시면 그때 다시 얘기하죠.”

“그 사람이 누군데요?”


김경희는 두정과 여자 사이에 섰다. ‘그만 방으로 들어가요’ 그녀의 말에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알았다고 답했다.


“누구냐고요!”

“두정 씨! 아직 입소하기 전인데 이러는 거……!”

“난 그냥 내 돈을 찾고 싶을 뿐이에요! 그 사람 만나야겠어요!”

“지금 아무나 도둑으로 몰겠다는 거예요?”


김경희의 목소리가 커지자, 여자는 옆에 서 있던 다른 여자와 함께 식당을 나섰다. 김경희는 두정을 식당에서 데리고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두정은 계단을 오르는 여자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년 진짜, 난 년이네. 어떻게 숙직실까지 올라가서 돈을 털어?’ 두정은 김경희의 팔을 뿌리치고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두정 씨!”


두정은 여자들을 부르다 숨이 차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 한 손을 간신히 난간에 올렸다.


“그 사람 어딨 어요? 저 그 돈 꼭 찾아야 해요.”

“203호, 강순하. 소매치기 전과가 있댔어요. … 왜요, 김 선생님도 걔 먼저 떠오르지 않았어요?”


김경희가 이마를 찡그리며 한숨을 쉬자, 여자들은 팔짱을 끼고 각자의 방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김경희도 그 느낌이 뭔지 알고 있었다. 어제 두정이 상담실에 들어올 때, 강순하가 식당 쪽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저녁에 식당에서 만났을 때 두정에 관해 물어보기도 했다. 새로 온 사람이냐, 왜 2층이 아니라 5층으로 갔냐, 몇 살이냐 등등 물었지만, 그녀 자신도 아는 정보가 없어, 입소할지 아직 모른다고만 답했을 뿐이었다. 강순하가 돈을 훔친 게 맞다면, 센터 내 분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203호 쪽으로 걸어가는 두정을 보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최정순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저요. 빨리 와 주셔야겠어요. 강순하가 사고 친 것 같아요.”


전화를 끊은 그녀는 두정이 사라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정은 강순하 이름표가 붙은 바구니와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다. 강순하는 자신의 물건을 뒤집어엎는 두정을 말려 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고, 같은 방 입소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벽 쪽에 붙어 있었다.


“어딨 어요, 내 돈 어쨌어요?”

“선생님, 이 사람 뭐예요, 왜 이러는 건데요?”

“내 돈 훔쳤잖아! 백만 원! 빨리 돌려줘. 그것만 돌려주면 돼, 신고 안 할게. 진짜 부탁이야. 돌려줘.”


악다구니를 쓰는 두정을 보며 강순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김경희에게 다가갔다.


“왜 저러는 건데요! 무슨 돈인지 저는 진짜 몰라요!”

“두정 씨, 그만해요. 여기 다 임산부야. 두정 씨도 계속 그러면 힘들어져요. 우리 내려가서 차분히….”

“차분하게 생겼어요?!”


이성을 잃은 두정이 강순하 앞으로 오더니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는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진짜 미안해요. 근데 그 돈은 제 돈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냥 그 돈만 돌려주시면 저, 저 지금 당장 나갈게요. 제발요, 제발 돌려주세요.”


어이없다는 듯 두정을 보던 강순하가 두정의 어깨를 밀었다.


“씨발! 어떤 년이 내 이름 댄 건데! 선생님, 저 진짜 아니에요. 제가 여기까지 와서 그럴 일이 뭐가 있어요? 저 아니라니까요? 얘가 다 뒤졌잖아요, 안 나오잖아! 어떤 년이 내가 훔쳤댔어! 나와, 어떤 년이야!”

“야, 네가 도둑년은 맞잖아!”


좀 전에 강순하 이름을 댄 여자가 들어섰다. 김경희는 복도 끝에 최정순이 보이자마자 빨리 오라고 팔을 흔들었다.


“뭐?”

“너 소매치기하다 왔다며. 여기 그거 모르는 사람 있냐? 소매치기로 태교 하는 년이, 하다 하다 너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서 손을 함부로 놀리냐? 얼른 주고 끝내지?”

“이년, 이거 오지랖 좀 봐? 네년이 뭔데 내가 훔쳤다고 주둥이를 나불거려! 나 아니라니까!”


두정은 둘의 싸움에 김경희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게 되자, 몸을 일으켜 다시 바구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져도 없자, 다른 이름표가 붙은 서랍장도 열어젖혔다. 곧 서랍장의 주인들이 다가와 그만하라고 소리치더니 두정을 말리려고 몸을 붙들었다.

몸을 붙잡힌 두정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것은 부식의 발에 맞아 계단 아래로 떨어졌던 세정이었다. 숨을 못 쉬겠다는 세정을 엎고 내려온 한정과 그런 세정을 의자에 앉히고 진정시켜 준 지우. 두정은 몸부림치던 그때의 세정이 떠올랐다.


“어머, 얘 왜 이래?”


두정의 몸이 뒤로 넘어가자 몸을 잡고 있던 입소자들이 당황해 그녀를 앞으로 당기고 서둘러 이불 위로 옮겼다.


두정은 그 순간부터, 정신을 차렸던 저녁 7시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는 어느 병원 주사실의 침대 위였다. 누워 있는데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 그녀는 옆에 앉아 있던 김경희의 한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경희는 그녀가 눈을 뜨자 밖으로 나가 간호사를 불렀다. 곧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들어와 두정의 맥박과 혈압을 체크하더니 ‘괜찮네요’ 했다.


“선생님, 저 어떻게 된 거예요?”

“두정 씨. 쓰러진 거 기억 안 나요? 선생님 말씀이 영양 불균형이래요.”


김경희는 담요를 잡아당겨 두정의 어깨까지 덮어 주었다.


“아기는 괜찮대요. 두정 씨 여기 있을 때 저희도 입소자들 서랍장이랑 가방 검사 했는데, 돈 못 찾았어요. 보안 카메라가 내부에는 없기도 하고. 이런 말 미안한데, 우리도 두정 씨 말 만 믿고 입소자들을 의심할 수는 없어요. 모두 예민한 상태라 더 캐물을 수도 없었고요. 그리고 우리 센터 입소는 어려울 것 같은데, 원장님께서 다른 곳을 알아보고 계시니까 그쪽에서 도움받을 수 있을 거예요. …… 괜찮아요?”


주사실의 차가운 공기, 적막, 베갯잇을 타고 시트에 떨어지는 눈물.

김경희는 떨어지는 눈물에 두었던 시선을 그녀의 혈관에 꽂힌 수액 연결관을 따라 점적통까지 천천히 움직

였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과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이 상반된 모습이었다.


“두정 씨,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잖아요. 기운 내요.”

“…… 여러 가지로 죄송합니다.”

“수액 아직 남았으니까 좀 더 자요, 참, 진료비는 원장님이 내셨어요.”


두정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집 그리고 고통뿐이었던 그 집이 아니라 정말 쉴 수 있는 집으로 말이다. 한정이 보고 싶어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 이름을 부르자, 김경희는 휴지를 가져와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최정순이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쯤이었다. 두정은 접수처 앞 의자에 앉아 주사 맞았던 곳을 알코올 솜으로 누르고 있었다. 떠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곱절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두정 씨, 괜찮아요?”


최정순은 두정의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안타까움, 동정, 연민, 그런 단어들이 그녀의 손에 담겨 있었다. 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뒤에 서 있던 한 여자를 불렀다.


“두정 씨, 인사해요. 여기는 마리아의 집, 세실리아 수녀님. 두정 씨 상황을 얘기했더니 다행히 머물러도 된다고 하셔서요. 아무래도 저희보다는 종교 시설 쪽이 기준이 유연하기도 하고요. 두정 씨 쉬면서, 서류도 보완한 다음에 센터로 다시 입소해도 되니까 당분간은 여기 있도록 해요.”


세실리아 수녀는 두정에게 다가와 목례하고는 의자에 올려져 있던 두정의 가방을 바라보며 짐이 더 있냐고 물었다. 두정이 고개를 젓자, 그녀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이미 늦었으니 빨리 출발해야겠다며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네, 수녀님. 늦었는데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두정 씨 몸 관리 잘하고, 기회 되면 다음에 만나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고속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 어디인지 모를 곳에 도착한 두정은 조수석문을 열고 손을 내미는 세실리아 수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조심해요. 어제 비가 와서 바닥상태가 좋지 않아요.”

“여기가 어디예요? 서울에서 많이 멀어진 건가요?”

“창안 시요. 와 본 적 있어요?”

“아니오.”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려요. 원장 수녀님 기다리고 계시니까 피곤해도 조금만 참아요.”


두정은 그녀를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끝까지 걸어가자 넓은 계단이 나왔고 한층 한층 올라 3층까지 간 다음 복도 중간에 다다랐다.


“들어가 보세요. 전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녀는 등을 돌리고 창 쪽을 향해 섰다. 두정은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멘 다음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곧 문이 열리고, 최정순과 같은 미소를 띤 여자가 두정을 반겼다. 그녀는 이마의 짙은 주름이 더 안으로 파고들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팔을 벌려 그녀를 안더니 두 손바닥으로 등을 쓸고는 토닥여주었다.


“잘 왔어요. 나는 마리아의 집 요안나 원장이에요. 최 원장님께 간단하게 들었는데…… 무엇보다 산모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죠.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여기 머무르도록 해요. 생활 규칙은 밖에 있는 세실리아 수녀님께 듣도록 하고, 우리는 내일 아침 예배 시간에 다시 만나죠.”

“네, 감사합니다. …… 나가면 될까요?”


요안나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두정을 불러 세우고는 천천히, 새기듯이 말했다.


“최두정이라고 했죠? 마리아의 집은 본명을 부르지 않아요. 지금부터 두정 씨는 ‘솔란지아’입니다. 위로하는 자죠. 평화를 가져다줄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모두에게 소개할 때는 본명이 아닌 솔란지아라고 하면 되겠죠?”


솔란지아. 두정은 문패를 파묻었던 그곳의 바다를 떠올렸다. 왔다가 밀리고, 밀린 것들은 더 멀어지고, 부서진 파도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은, 마치 지금의 자신처럼 무력한.

두정은, 다시 쓸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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