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정이 떠난 날, 부식은 매화가 부른 남자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향했다. 지우가 휘두른 칼은 결국 그의 한쪽 다리를, 제대로 걷지 못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술에 취한 채 남자 몇 명과 지하실로 내려온 매화는 지우의 다리를 부식과 똑같이 만들어 주라고 남자들에게 명령하더니, 세정이 덮고 있던 이불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지우가 부러진 다리를 붙들고 비명을 지르자, 남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인우를 막고 서 있던 남자는 혀를 차더니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부모가 버린 새끼들, 이만큼 키워놨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주인 다리를 아작을 내? 네 동생, 병신으로 만들어놔도 할 말 없겠지?”
인우는 그를 알아보았다. 몇 달 전부터 매화가 자주 집으로 데려오던 남자는, 인우를 볼 때마다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바보같이 웃었더랬다. 따라 하지도 못할, 그 웃음소리는 며칠 두정을 따라다녔다. 그는 마시다 남은 물컵들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내려오던 인우의 목덜미를 붙잡아 계단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인우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세정을 보았고, 바닥에 뒹굴고 있는 지우를 보았다. 그리고 두정은 지금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편하게 눈을 감고, 긴 밤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만끽하고 있을까.
매화는 들고 있던 술병을 벽에 치더니 깨진 병의 조각을 세정의 목에 들이밀었다.
“내가 왜 너를 데리고 있는지 알아?”
세정의 갈색 눈은, 용서할 수 없는 자의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우는 순간, 그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너는 내 치부거든.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놓을 수도 없는. 치부가 뭔지 아니?”
“…… 그건, 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줌마를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놓을 수도 없는. 아줌마는 누군데요, 나한테 뭔데요.”
세정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해할 수 있는 건 몸에 남는 상처가 아니었다. 그녀는 목에 닿은 조각을 천천히 뺏어 쥐더니, 자기 손목에 대고 보란 듯이 선 하나를 그었다.
“이제 이런 건, 아프지도 않아요. …… 무서웠어요? 그래서 못 죽었어요?”
매화는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숨이 막히는지 세정의 얼굴과 눈이 빨개지고 있었다.
“이거 놔! …… 안 죽이고 살려놨으면! 그 값도 스스로 치러야 하는 거야! 내가 아니라! 당신이 치러야 하는 거라고!”
매화는 그 말에 폭주하기 시작했다. 세정의 따귀를 때리고 베개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보이는 것들을 모두 그녀에게 집어던진 후에 분이 풀리지 않는지 책상 서랍을 뒤져 가위를 꺼내고는 걸려있던 교복을 찢기 시작했다. 세정은 엉망이 된 머리카락과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서걱거리며 질기게 뜯겨 나가는 소리에 미친 사람처럼 일어나 그 손에 또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그녀를 말렸다.
인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제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지우는 방에서 질질 끌려 나갔다. 교복은 다시 입지 못할 만큼 찢어졌다. 지우는 한정이 마지막에 머물렀던 방에 갇혔고, 지옥 속의 또 다른 지옥에 갇힌 지우는 내보내달라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세정은 곧 지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뒷마당 출입과 외출도 금지되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은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세정과 인우는 개학식쯤에도 그를 볼 수 없었다. 밥을 올려다 주는 동안에도 부식의 감시가 있어 문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바로 내려와야 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 들렸다. 인우는 빈 그릇을 보고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속삭였다.
그가 있는 방, 바로 옆방에서 세정과 인우는 또 다른 세계를 감당하고 있었다. 고요한 밤에 이어지는 쉴 새 없는 소음은 둘의 것이 아니었다. 인우는 입안에 담요 끝을 쑤셔 넣고,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벽에 부딪히던 사물의 소음은 어둠을 찢어발긴 후, 어김없이 동이 틀 무렵 사라지곤 했다.
인우는 매트리스 위에 쓰러져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옆에 누워 있는 세정의 볼을 쓰다듬었다. 세정은 새우등을 하고 누워 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의 제목을 하나씩 소리 내 읽다 ‘즐거운 겨울 방학’에서 멈췄다.
“인우 언니.”
“응?”
“…… 나 이제 안 괜찮아. …… 나 아파.”
“그래, 알고 있었어. 세정아, 나 두정이가 너무 보고 싶어.”
세정이 일어나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지우의 시가 적힌 전지를 꺼내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지우의 말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 뭐 해?”
“작게 접어서 그릇 밑에 붙여보게. 언니 몽당연필 모아둔 거 있지?”
“들키면 어쩌려고?”
“괜찮아. 들켜도 오빠가 맞지는 않을 거야.”
“세정아.”
세정은 종이 하나를 손에 들더니 접고, 또 접어 그릇 밑에 붙여도 될지 궁리하다가 인우가 꺼낸 몽당연필과 종이를 실로 묶었다. 박스 테이프를 자른 뒤 접착 부분이 앞으로 오게 둥글게 만 다음 종이 한가운데 붙였다. 그리고 소매 안에 조심히 넣고 팔을 흔들어 보였다.
“티 안 나지?”
“지우가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언니, 여기 좀 봐.”
세정은 인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여름에 눈이 내리고, 겨울비에 모두 잠겨도 너는 있어야 해’ 인우는 그 부분이 적힌 종이를 가위로 잘랐다.
“이건 두자.”
인우는 서랍을 열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 학교 그만둘 거야.”
“안돼! 그만두지 마, 학교는 끝까지 다녀야 해!”
“언니, 그거 알아?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식에게도 폭력을 행사한대, 그럴 확률이 높대. 확률적으로 말이야. 나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절대!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가끔 생각했거든. 내가 이 집을 나가면, 나는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우리 몸을 봐, 다 무서워서 도망갈 거야. 그럼 또 혼자가 되나? 외로워서, 아니 화가 나서 아무렇게나 들쑤시고 다니고 그럴까?”
“세정아!”
인우가 세정을 끌어안았다. 세정은 인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한숨이 인우의 가슴에 닿았다가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인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말이 맞아. 나는 쥐새끼야. 숨어서 엿듣고, 훔치고, 물어뜯을 기회를 노려. 언니, 나 그 여자가 돈 숨겨놓은 데를 알아. 금고 말고, 현금을 따로 두는 데가 있어. 내가 나가면, 그 돈을 챙겨. 돈이 없어졌다고 난리 치지는 못할 거야. 따로 챙겼다는 사실을 알면 아저씨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선구 오빠 아버지가 그랬대. 공범은 난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뜻 이래. 그 둘은 아주 오래전부터 배신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도, 하나 정도는 덕을 봐야지. 그리고 내가 떠나야, 지우 오빠가 나올 수 있을 거야.”
누군가의 부재를 또 다른 누군가 채운다는 것이 언제나 긍정의 신호는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그 부재를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배로 채워 넣어야 했다. 마치 처음부터 다른 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서로의 탈출을 염원하면서도, 진심으로 슬픈 이는 떠나는 자의 몫이었다.
누구도 손뼉 쳐 줄 수 없는 자유였다.
세정은 소매에서 연필을 묶은 종이를 꺼냈다. 테이프를 떼고 종이를 펼쳐 연필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빠, 나 떠나. 꼭 살아 있어 줘] 돌돌 만 종이와 연필이 다시 묶이고 그 위에 새 테이프가 올려졌다.
“밥 갖다주고 올게.”
인우는 방을 나서는 세정의 소매 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섰다. 책상 하나, 매트리스 하나, 옷장 하나가 전부인 방이었다. 이 방에선 눈치가 보여 키 크는 것도 미안했다. 지우의 키가 자라 매트리스에 누우면 발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는 바닥에서 혼자 자니 넓어서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똑같이 입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잤다. 그러나 모두의 머릿속에 각자 다른 이야기가 자라고 있었다.
인우는 매트리스 끝을 들었다. 아이들이 넣어 둔 작은 종잇조각들이 가득했다. 마치, 오래전에 성체가 되어 떠난 뱀의 허물 같았다. 비닐 옷장 뒤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양손 가득 조각들을 모아 담았다. 세정의 교과서를 찢은 조각들이 많았다. 그때 세정은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악의 산물이야’라고 했다.
악의 산물, 아니 우리 기억의 산물이지.
인우는 매트리스를 끌어당겨 하나도 빠짐없이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찢긴 세정의 교복으로 위를 덮었다. 봉투를 옷장에 넣어 두고 매트리스를 제 자리로 옮겼다. 이제 기억 따위,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잠을 자고, 눈을 뜨면 누군가는 떠나가고, 또 누군가는 돌아올 것이다.
약점이 있는 자는 그랬다. 눈을 감고, 입을 닫고, 혀를 목구멍 깊숙이 숨겨두고, 옴치고 뛰지 못했다.
세정이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날, 우산도 없이 봄비를 흠뻑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의 구성원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 있었을 때, 세정은 유일하게 현관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제, 세정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밖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지하실 뒷문의 창에서 세정의 실루엣을 본 인우는 빗소리가 거세지자, 뒷문을 서성였다. 그녀는 한정이 있는 곳에 그저 서 있기만 했다. 문을 두드린 지 30분이 지나서야 현관문은 열렸다. 그녀는 젖은 운동화를 밖에 거꾸로 눕혀놓고 셔츠와 머리카락의 물기를 대충 짠 다음 양말을 벗어 양쪽 주머니에 넣었다. 현관 앞 걸레에 두 발을 올려놓고 물기를 없앤 뒤 홈쇼핑 광고 소리를 들으며 지하실로 내려왔다. 인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수건부터 건넸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는 손을 보며 인우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로 가?”
“부산. 도착하면 선구 오빠가 주소랑 연락처 전해준다고 했어.”
“알았어, 기다릴게.”
“언니. 조금만 참아.”
무표정한 얼굴이던 인우가 웃어 보였다. 떠나면 어디든 갈 곳은 있는 걸까. 인우는 그 생각을 하며 엄지손톱을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너 가기 전에 두정이 찾아보고 갈 순 없어? 왜 소식이 없지? 너무 조용하니까 불안해.”
“알았어. 내려가기 전에 청가원에 물어볼게. 잘 있을 거야. 지금이면 배도 많이 불렀을 거니까, 움직이기 힘들 거고.”
“그래, 그렇겠다. 지우가 너 보고 싶을 텐데 못 보고 가서 서운하겠다.”
“나도 그래. 나도 많이 서운해.”
“네가 해준 이야기 들으면서 같이 아프고, 같이 웃었는데. 생각해 보면, 잊고 싶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어.”
“두정 언니가 해준 말, 하나도 마음에 남기지 말고 살라는 말. 나도 언니한테 할래. 언니, 참지 마. 다치지 마. 아프지 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미 다 아팠는걸.
인우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도 씹어 짧고 거칠게 돼버린 손톱 때문에 티셔츠 올이 또 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세정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방을 메고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식탁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지우가 먹을 밥을 쟁반에 담았다. 소매 안에서 쪽지를 꺼내 밥그릇 아래에 붙인 뒤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다 됐어요.”
소파에 누워있던 매화는 하품하며 일어섰다. 꽃 자수가 새겨진 두꺼운 청치마에 두꺼운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그녀는, 껌 씹는 소리를 유난히 크게 내며 니트를 가슴 위까지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가슴골에 숨겨둔 열쇠를 꺼내 끈을 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세정은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를 낳은 사람. 그저 그뿐인 사람.
세정은 그 생각을 하는, 숟가락에 비친 자기 얼굴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세정이 방 앞에 쟁반을 내려놓자, 그녀는 열쇠를 꽂아 돌렸다.
“밥.”
열리는 문, 지우의 손. 세정은 그를 보고 싶어 몸을 옆으로 옮겼지만, 쟁반이 들어가자마자 문이 바로 닫혀 볼 수 없었다.
“올 때 담배. 슈퍼에 가서 맥주 좀 넣어달라고 하고.”
“네.”
세정은 언제쯤 지우를 내보내 줄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질문 같은 건 필요도 없고 한다 해도 답을 듣지 못하겠지만 처음으로 제 입으로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이, 그 마음이 생경했다.
세정은 현관으로 나와 운동화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운동화에 신문지를 구겨 앞코까지 넣은 후 두꺼운 양말을 신은 발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계단 사이사이에 놓인 화분의 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시든 잎을 들어 올렸다. 사이사이 구멍이 난 잎을 머리 위로 올려 아침 햇살을 받게 했다.
그녀는 한정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제 빗속에서 한 말을 한정이 제대로 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젖은 땅 위에 서서, 눈을 감았다. 대문 쪽에서 선구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서둘러 마른 잎을 한정에게 전했다. 몸을 돌리다 뒷문 쪽에서 난 소리에 멈춘 그녀는, 창문에 올려진 인우의 손을 보았다. 문 앞에 선 그녀의 마른 몸이 느껴졌다.
아이들에게는 서로를 잡을 힘이 없었다.
손바닥을 부딪쳐 떠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