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은 선구가 건넨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선구에게 피해가 갈까 동네를 벗어난 곳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듯 집 앞에서 보자고 했다. 가스통을 싣던 오토바이는 사람을 싣고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세정은 처음 타보는 오토바이의 속도에 무서워하면서도, 그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몸을 돌려 멀어지는 집을 보고 또 보았다. 두 다리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온몸에 힘을 주는데, 아스팔트에 지우의 몸이 갈리는 장면이 상상되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세정은 등 뒤에 바싹 붙어 소리쳤다.
“오빠, 나 전화해야 하는데!”
선구는 곧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야, 니 가자마자 폰부터 하나 사라. 내 엄마한테 말해 둘 테니까는.”
“괜찮아. 전화 쓸 일 없어.”
“와 없노? 내랑 통화는 해야 될 거 아니가? 집 전화기 있는데 억수로 불편할걸?”
세정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의 사투리만 들으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열어 114 번호를 누른 후 귀에 가져다 댔다.
“안녕하세요. 청가원 번호 알 수 있을까요? 네, 청, 가, 원.”
세정은 가방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 뒤 손을 뒤집어 손바닥에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하나씩 적히는 번호를 빤히 보다가 기차 시간에 맞출 수 있는지 시계를 보았다.
“거가 어딘데?”
“두정 언니가 여기 있어.”
“맞나? 보고 갈라고?”
“볼 수 있으면?”
“기차 시간 어중간한데? 일단 통화해봐바.”
세정은 소리 내가며 번호를 눌렀다. 긴장이 되는지 침을 삼키자, 그도 덩달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거기 최두정이라는 분이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누구라고요?”
“최두정요. 입소한 지 몇 달 됐을 텐데요.”
“그런 이름은 여기에 없어요.”
“그리로 간다고 했는데요?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세요!”
“확실히 없어요. 지금 입소자분들은 제가 다 아는데, 그런 이름은 없어요.”
“그럼, 중간에 나간 사람이나 전화 왔던 사람이나, 혹시 다른 분한테 물어봐 주실 수 없나요? 부탁드려요!”
“그럼 좀 기다리셔야 해요. 다른 분은 오후에 출근하셔서, 전화번호 남겨 주시면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부탁합니다.”
세정이 저쪽에 번호를 남기는 사이 선구는 가슴이 답답한지 헬멧 윗부분으로 가슴을 툭툭 쳤다.
“뭔데, 또. 거 없다나?”
“오빠, 뭐라는지 전화 꼭 해줘. 알았지?”
“알았다… 하이구 마, 진짜 언서시럽다. 니는 일단 내려가라. …뭔 일이야 있겠나, 내 연락 오면 바로 연락할게.”
“안돼. 언니…….”
세정은 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동동거리며 손바닥에 적은 번호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곳에서 받아주지 않은 걸까, 부식이 사람을 시켜 어딘가로 데려갔나, 아니면 다른 어딘가로 도망친 걸까.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선구는 헬멧이 씌워진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세정을 들어 올려 뒷좌석에 앉혔다.
“꽉 잡아래이.”
선구가 끊어준 기차표를 손에 들고 대기실에 앉아 있던 세정은 그가 자판기에서 뽑아온 따뜻한 우유를 받았다. 그녀는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구가 준 목도리가 따뜻해 할 수 있는 최대한 목을 아래로 내렸다.
“배 고프겠다. 빵이랑 물이랑 샀으니까, 기차 타면 먹어라. 그리고 잠 좀 자라, 얼굴이 지금 푸르뎅뎅하다. …… 내 고만 간데이. 잘 내리 가고, 이따 밤에 전화할게.”
세정이 일어서려는 걸 그가 어깨를 눌러 막았다. 그리고 그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강세저이, 탈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세정은 고개만 끄덕일 뿐 웃지 못했다. 어깨에 놓인 손과 앞에 서 있던 그의 몸이 점점 사라졌다. 그녀는 손에 봉지를 들고 라디에이터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출발까지 십 분 정도 남았다.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집에 전화했을 테지만, 지금 시간에 매화는 잠을 자니 아무도 받지 않을 거다. 저녁에 알게 되거나, 학교에서 또 전화하지 않는다면 월요일에나 알게 될 거다.
세정은 인우와 지우가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인우는 어떻게 해서든 지우를 내보내려고 하겠지만,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두정은 어떻게 된 걸까. 세정은 두통에 뒷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양말 끝이 젖어 축축했다. 운동화를 벗어 신문지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방에
서 새 양말을 꺼내 갈아 신고 젖은 양말을 빈 봉지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세정은 타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좌석 테이블을 내려 선구가 준 빵을 꺼내 억지로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먹어야 한다. 그녀는 약을 삼키듯 눈을 질끈 감았
다. 음식물이 내려가는 묵직한 느낌. 물을 마시고 뚜껑을 닫은 뒤 가방을 끌어안았다. 출장이라도 가는지 커다란 짐가방을 든 양복 차림의 남자가 자리를 확인하고는 가방을 선반에 올렸다. 그녀는 자리에 앉는 남자의, 묵직한 무게감이 싫어 최대한 창 쪽으로 몸을 붙인 뒤 고개를 창가에 댔다.
언젠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낯익은 남자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작은 키와 짧게 자른 머리, 물건을 잡는 손을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가,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그의 얇은 목소리에 서둘러 다른 골목으로 발을 옮겼었다.
매화네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였다. 십 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의 대문을 넘었는지 셀 수 없었다. 부식의 방에는 손님의 신상이 적힌 공책이 있었는데 그는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며 일기를 쓰듯 거르지 않고 공책을 펼쳤다. 아무 데나 둘 수 없다던 공책은 그의 금고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그녀는 생각을 떨치려는 듯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 웅크렸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 풍경이 변하는 모습만 뚫어져라 보았다.
‘우리 기차는 곧 부산역에 도착합니다. 놓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좌석을 확인해 주시고……’ 남자가 일어나 가방을 내리고 일찍부터 줄을 선 사람들 뒤에 합류했다. 세정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좌석 테이블의 쓰레기를 정리한 뒤 가방을 멨다. 그녀는 사람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구가 알려준 대로 2층의 빵집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 앞에 섰다. 주말을 앞두고 역은 떠나려는 사람들과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로 뒤섞여 혼잡했다. 그녀는 멀리 엘리베이터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가 알려준 인상착의를 가진 여자를 찾으려 했지만, 아직 보이지 않았다.
“강세정?”
그녀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손을 씻은 건지 손수건으로 두 손을 닦으며 걸어오는 여자가, 그가 말한 모습 그대로 세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고…맞는 갑네. 내 일찍 도착했는데 갑자기 소피가 마려워가 화장실 갔다 왔는데, 그단새 도착해뿟네. 온다고 억수 고생 많았제? 내는 선구 엄마! 만나서 반가워요?”
김영자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니 너무 억세게 말하지 말라고 했던 아들의 말이 생각나 배운 대로 말끝을 살짝 올렸다.
“안녕하세요. 강세정입니다.”
“아이고야, 내사마 서울 사람은 처음 본다 아이가. 내가 말이 좀 무섭게 들리도 그런갑다 하고, 짐은 이게 다가?”
“네, 이게 다예요.”
“그라몬 우리 아저씨가 밖에 기다리고 있으니까 후딱 나가자. 배 안 고프나, 뭐 묵고 탔나?”
“아, 선구 오빠가 빵이랑 물 사줘서 그거 먹었어요.”
“지 애미한테는 껌 한 통 안 사주는기.”
세정은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긴장이 풀리자, 편두통이 한결 나아졌다.
“와, 엄마 말이 웃기나?”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절대요! 아줌마 얼굴이랑 말투가 오빠랑 똑같아요.”
“내 자식인데, 내 닮아야지 누구를 닮노.”
김영자는 세정의 팔짱을 끼고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계단 중간쯤 내려왔을까, 그녀가 갑자기 팔을 들었다.
“여기, 여기! 우째, 차 댈 데가 있었는갑지?”
그녀의 목청에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돌렸다. 뒤따르고 있던 세정은 계단을 한 칸 내려가 그녀의 옆에 섰다.
“어! 한 구티 남았드라, 아이고! 가가 세정인갑네. 억수로 참하게 생깄네. 내는 선구 아빠! 머스마가 공부하라고 서울 보내놨드만 뭔 딸내미를 보내는가 모르겠다.”
선구 아버지, 이덕배의 말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영자를 바라보자, 그녀는 또 크게 웃으며 세정의 손등을 두드렸다.
“좋다는 기라, 아이 야가 서울 사람이니까는 말을 쪼매 알아 묵게 하소.”
“내나 지나. 밥 먹이야 안 되나. 집에 뭐 있나?”
“있지. 야 온다고 내 어제 잡채 해놨다. 가서 밥 묵고. 우리는 또 일하러 가야 되니까, 니는 집에서 푸우욱 쉬라. 알았나?”
세정이 치아를 드러내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덕배는 신이 나 껄껄 웃고는 그녀가 메고 있던 가방을 들어 앞장서 걸었다.
“와? 늦둥이 딸내미 생긴 거 같아가 기분이 막 째지는 갑지?”
엄마. 아빠. 세정은 그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중얼거렸다.
세정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자신의 흉터투성이인 몸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은 어떨지, 흉터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지.
새로 얻은 상처가 옷에 쓸려 피가 묻었을 때, 민아가 셔츠를 걷고 보지도 못한 폭력을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가 오열했을 때도, 체육관 창고에 몰래 들어가 그 어린 눈으로 하나씩 찾아냈던 흉터들에도 세정은 아무렇지 않았다. 창고의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꺼지고, 보이는 것은 눈에 익은 실루엣뿐이었으나, 민아의 둥근 어깨에 움츠리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고 하면 믿어줄까.
세정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팔등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던 그녀가 자신처럼 가여워, 벗은 몸으로 그녀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세정은 민아를 달래려고 입을 뗐다.
“날 죽이지는 않을 거야.”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민아는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는 세정에게 옷을 건넸다. 그날 이후 민아는 가끔 세정을 이유 없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흉터가 있던 자리에 손을 대고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아프냐고 물었다.
“이제 아프진 않아.”
어느 날 민아는 흉터 크림을 사왔다며, 체육복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가는 세정을 따라와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크림을 날개뼈 위에 조심조심 바르고 후후 불어주었다.
한정이 맞을 때마다, 두정이 연고를 발라주고 후후 불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세정이 피식 웃자, 그녀는 뭐가 우습냐고 묻고는 체육복을 내려주었다.
“나도 누가 있구나 싶어서. 누가 뒤에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민아가 세정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어떤 느낌인데?”
세정은 민아를 깊이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여름에, 잔디에 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시답잖은 얘기를 하고, 깔깔대는 거야. 뜨거운 햇빛에 눈을 찡그려도, 아직은 시원한 바람이 등을 식혀주는…… 그런 느낌.”
그녀는 뭔지 알겠다는 듯 세정의 어깨를 꽉 쥐고 말했다.
“으음…… 그것 참, 조화로운 느낌이네?”
세정이 선구의 집에 도착한 날, 그녀는 김영자가 선물한 몸에 딱 맞는,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두툼한 겨울 잠옷을 선물 받았다. 그 옷을 입고, 평생 먹어본 적 없던 반찬들로 밥을 먹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는 그녀를 보며 부부는 신이 나 밥솥을 아예 안방으로 가져왔다.
“맛있나?”
“제가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맛있어요. 국도 맛있고, 잡채도 맛있어요. 이 생선도 맛있어요.”
김영자는 밥솥 뚜껑을 닫고, 세정의 앞에 반찬 그릇을 더 밀어주었다.
“이기 이기, 딸내미 키우는 맛인갑네. 선구 자슥은 이런 말도 몬하는기라. 맨날 쳐 묵기만 해쌓고, 팽하니 가뿌고.”
“아니에요, 오빠가 얼마나 다정한데요. 무뚝뚝해도 다정해요. 아저씨랑 아줌마처럼요.”
그녀는 생선 가시를 발라 세정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맞나… 그 머스마가 진짜 그렇다고?”
“세정아, 우야동동 간에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고 싶은 만큼 쉬고,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알았제? 그라고, 여서는 친구 아부지, 엄마는 그냥 내 엄마고 아빠고 그렇거든? 그니까 니도 그래 생각해라. 뭐 만사 어렵다 생각하몬 어려운 기고, 쉽다 생각하몬 쉬운 기고, 알겠나?”
이덕배의 말에 세정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눈에 힘을 주며 계속 깜빡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저, 생선 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