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개수대에 놔두라는 말에도 세정은 부득부득 설거지를 끝내고 부부를 배웅했다.
문단속 잘하라는 말, 일 끝나면 바로 오겠다는 말을 듣는 데 자꾸만 마음이 간지러워 발을 꼼지락거렸다. 밤이 꽤 깊을 때까지 부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불안하지 않았다.
선구의 방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인 별 모양 스티커를 보며 잠이 들었다 깼다 했다. 그러다 창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풍경과 바닷냄새가 신기해 시장 골목의 개처럼 계속 코를 찡긋거리고 킁킁거렸다.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집들을, 턱을 괴고 구경하다가 전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섰다.
“내다. 잤드나?”
“아니요, 언제 오세요?”
“지금 간다. 너무 늦었제? 쪼매만 기다리라, 니 배 안고프나? 뭐 쪼매 사가까?”
“저, 괜찮아요. 배고프시면, 제가 밥 차려놓을까요?”
“됐다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래이.”
김영자는 집안일이 익숙해 보이던 세정의 모습이 생각나 전화를 끊고 혀를 찼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남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보소, 통닭집 가가꼬 통닭 한 마리 퍼뜩 사 갖고 오이소. 아 주구로.”
그녀는 남편이 달려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 저…… 꽁지 빠지게 달리가네.”
그녀는 딸 하나 더 낳지 그랬냐는 이웃들의 말을 웃어넘기곤 했다. 이웃에게 말하지 못한 그들만의 사정은 십 년 전 끝이 났지만, 가끔 어느 집에 태어난 아이가 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을 팽개치고 들어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이불을 끌어안고 좌절과 질투심에 악이 받쳐, 미친 사람처럼 울어댔다. 퉁퉁 부은 눈 위로, 이제 막 찬물로 씻은 차가운 남편의 손바닥이 올라와 그 열기를 내려주었다. ‘고마 해라. 내 애 터진다, 이게 다 내 때문이다. 서방 잘 만났으믄 일도 안 해도 되고, 내가 미안타’ 그때는 등을 두드리며 건네는 남편의 말도, ‘이 속에서 일나는 일에 책임이 누한테 있겠노, 그기 다 욕심인기라’라는 아버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제 의뢰가 들어온 인쇄물을 백 장씩 나눠 앞뒤로 색지를 끼우고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하던 인쇄소를, 선구가 태어나던 해 물려받아 가게 이름을 ‘선구 인쇄소’로 바꾸고 지금까지 영두동 시장 골목 끝자락에서 삶을 보냈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인쇄소에서 유년기를 보낸 선구를 보며 자식에게 인쇄업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 오빠가 있는 서울에 올려 보낸 게 3년 전이었다. 선구는 대학을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휴학했다. 다시 수능을 쳐서 다른 학과를 가라고 했지만, 공부도, 서울도 적응이 안 된다더니 용돈벌이나 하겠다며 그 사이 학교도 그만두고 몇 년 동안 가스 배달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선구라면, 제 일을 잘 찾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는 남편의 타박에도 조바심 내지 않았다. 선구가 배달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강세정이라는 아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술 심부름, 담배 심부름,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다니는데 그 애 부모가 애를 학대하는 게 분명하다고,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잘 대해주라고 했었는데 지난주 그 애를 부산에 보내도 되냐고 묻더니 허락하기도 전에 제 방을 내주라고 했었다. 월세는 자신이 낼 테니 받아 달라고 말이다.
그녀가 아는 한, 아들 선구는 조용한 아이였다.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없었고, 그저 기계에 찍혀 나오는 똑같은 종이 같은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명함을 찍고, 전단지를 찍어내다 보면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었다. 이제 일감이 많이 줄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길 시간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다 커버렸고 이제 누군가를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말까지 하니 과거로 돌아가 선구를 다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고서야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녀는 정리가 끝난 인쇄소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와 문을 걸어 잠갔다. 오토바이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손잡이에 통닭 봉지를 걸고 골목을 달려오는 남편이 보였다. 손을 흔들고 허리에 매는 가방을 잘 여몄다.
세정은 전화기 앞에 앉아 있었다. 선구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왜인지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일이 끝났을 시간인데, 어째서일까. 선구는 왜 이렇게 자신을 돕는 것일까. 언젠가 그에게 질문했지만 그는 ‘우리 엄마, 아부지 다 착하다’라는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자신도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을까. 착한 사람이 모두 남을 돕지는 않는데. 그녀는 멀리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 집 앞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반가워 현관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젖히자,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 검은색 비닐봉지 속, 몸속 깊이까지 들이치는 튀김 냄새에 숨을 멈췄다.
“야도 야도, 튀김 억수로 좋아하겠네. 통닭 사 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하이고, 내가 사 오라 한 거거든. 세정아, 오해하지 마라. 엄마가 사 오라고 한 거다.”
세정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고는 봉지를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이 씻는 동안, 그녀는 접시에 통닭을 올리고 젓가락 짝을 맞춰 놓고 앞접시를 세 개 꺼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와 소주를 꺼내고, 꽃무늬 의자커버를 만지작 거리며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니가 차린 거가?”
김영자는 누군가 차린 상은 선구가 장가갔을 때나 받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정이 의자를 빼놓고 기다리자 참을 수 없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야, 이덕배! 와바라, 빨리! 대충 씻고, 평소엔 씻지도 않는기!”
“니 내 이름 막 부르지 말랬쟤! 호온난다 진짜로!”
“뭐 부르면 닳는 이름인갑지? 니도 내 이름 불러라 영자야, 김영자아. 내는 기분 하나도 안 나쁘다!”
“말을 말자. 세정아, 내가 엄마보다 어리거든. 그래 툭하면 내를 지 알로 본다니까.”
그녀는 닭다리를 뜯어 이덕배에게 내밀었다.
“내가 언제 글캤노? 울로 보제. 봐라, 이 닭다리도 먼저 주고.”
“그거는, 니가 다리를 안 무니까 낼로 주는거 아니가?”
세정이 그녀가 내민 닭다리를 보며 손사래치자, 그녀는 자신의 접시에 툭 내려놓고는 세정의 앞에 놓았다.
“싫타카는 거 아니면, 고마 무라. 니 와이리 애볐노. 살 좀 찌자, 니 앞으로 밥은 두 공기씩이다, 알겠제?”
세정의 팔목과 어깨를 만져보던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쌀통에서 쌀을 퍼 둥근 볼에 담더니 물을 채웠다.
“내일은 당신 먼저 가소. 나는 야 델꼬 동네 구경도 시키 주고, 시장도 가고 하게.”
“알았다. 우리 일요일날 세정이 바다 보여주러 가까?”
“그래, 그라자. 회도 먹이고. 니 회 물 줄 아나?”
세정이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이덕배는 잘됐다는 듯 젓가락을 든 손으로 손뼉을 쳤다.
“그라믄 아부지가 억수로 맛있는 회 사주께.”
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 식탁의 유리 상판 아래에 가득한 가족사진을 보며 세정은 바삭하니, 어서 먹어보라며 건넨 튀김옷을 입에 가져갔다.
선구의 어린 시절 모습을 차례로 보면서 그가 왜 좋은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데도 둘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한 손은 아빠의 허리를 두르고, 한 손은 엄마의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어느 산인지, 산 정상에 오른 사진 속에서 그는 발그레한 얼굴로 묘한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을 게 분명했다. 입안에 닭튀김을 우물거리는데, 김영자가 무를 집어 세정의 접시에 놓았다. 세정은 김영자를, 이덕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아하다는 듯 세정을 보던 그녀는 알았다는 듯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건넸다.
“와, 뭐, 걸렸나. 뼈가? 뱉어라, 자!”
그녀가 내민 휴지를 보며 세정은 고개를 숙였다. 꽃향기가 나는 티슈가 그녀의 손끝에서 팔랑거렸다.
“아줌마, 제가…… 통닭을 좋아하나 봐요.”
알 수 없는 세정의 대답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정은 미소를 짓고는 곧,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열심히 닦았다. 선물 받은 잠옷에 눈물이 닿을 것 같아, 소매를 걷기까지 했다. 소매 아래, 선명한 세정의 흉터를 보고도 그들은 아무 내색이 없었다.
“옛날에 우리 아부지가, 사람한테는 각자 뭐 하나씩이 있다는 거야. 그게 뭔지 내는 모르겠대? 근데 이제 쪼매 알 것도 같고. 니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고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으몬, 또 사는 기 괜찮거든? 니가 좋아하는 게 생기믄, 그라믄 우리도 좋은기라. 니가 좋다카믄서 울어도, 웃어도, 우리는 니 편 해줄께.”
“그래, 니는 아직 얼라다. 아직 한참 더 커야 된다고. 여기서 자알 커보자, 알겠제?”
세정은 이전에도, 그날 이후로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다.
한정이 말한 적 있었다. ‘아직 어려.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면 세정은 포기한 적이 없다고, 애초에 가진 것이 없는데, 포기할 게 뭐가 있냐고 답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몰랐다. 살아만 있으면, 그게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 한정의 죽음 후 언제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의문이었다.
한국쌤은 세정이 공모전을 포기한다는 말에도 포스터를 건넸고, 겨울 방학을 앞둔 마지막 수업 때 ‘자유롭게 책 읽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말이 책 읽는 시간이지, 몇몇 아이들은 교실 뒤에 모여 소리를 낮추고 수다를 떨었고, 대부분은 무릎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었다. 세정은 민아가 가져온 보온 도시락을 품에 안고 엎드려있었는데, 교단에서 책을 읽던 한국쌤이 갑자기 칠판을 두드렸다.
“깨지지 않는 마음 같은 건 없어, 모두 깨져. 그냥 이어 붙이고 가는 거야. 그런데 처음 모양과 다르게 변한다고 해도 그게 내 마음이 아니겠어? 만신창이가 된대도 지켜주고 싶은 내 마음이지. 그러니까, 쌤 말은 이제 너넨 고등학교 가면 다 죽었다…… 이 말이다. 깨져도 울지 말고, 잘 붙여 쓰라고.“
집을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세정은 선구의 침대에 누워 형광별의 수를 세다가, 아무 일도 없이 잠이 들었고 이른 아침 일을 나가는 이덕배의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세정은 다짐했다. 흔들리고, 넘어져도 그 자리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으로, 누군가의 위로에 더 가져서 으스댄다고 말하지 않고, 젠체한다고 비아냥대지 않고, 선한 마음은 선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
세정은 아침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해서, 졸리지 않은데도 자꾸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