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세정(3)」

by 제인

「세정(3)」


김영자는 여기는 서울과 다르다며, 바닷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서울 사람은 알 리가 없다고 했다. 세정이 괜찮다는데도 기어코 두꺼운 내복을 입히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가자마자 살려줘서 고맙다고 할걸. 내가 살이 쪄갖고 이제 못 입는 내복이라. 전에 선구가 월급 탔다고 보내줬는데, 그때는 어찌어찌 욱여넣었는데 이제 안돼. 니한테 딱이네.“


그녀는 길이가 긴 목도리도 꺼내 세정의 목에 둘러 주었고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에서 무늬가 들어간 갈색 양말과 장갑을 꺼내 흔들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현관 앞에 선 두 사람은 전화 소리에 신발로 뻗었던 발을 다시 내려놓았다.


“선군가? 어제 전화한다 카드만.”


그녀가 잰걸음으로 가 수화기를 들었다.


“어, 엄마다. 세정이 잘 도착했다. 어제 바빴는갑네? 전화한다 카드만. 그래, 아 밥 잘 묵고, 잘 자고, 인자 나가서 동네 구경 좀 시키 줄라고. 니는 별일 없나? 아, 폰? 알겠다, 아부지 명의로 개통하면 된다. 오야, 잠깐만. 세정아, 전화.”


세정은 수화기를 넘겨받자마자 두정의 소식부터 확인했다. 선구는 어제저녁 청가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었고, 두정이 몇 달 전 입소하려고 오긴 했지만 일이 있어 입소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청가원 원장님 소개로 ‘마리아의 집’이라는 곳에 갔고, 그곳의 연락처를 받아두었다고 했다.


“그 일이 뭔데?”

“그건 얘기 안 하더라. 나도 물어보긴 했거든? 찾아가 볼 거가?”

“거기엔 확실히 있는 거겠지?”

“내 생각에는 엄마가 전화해 주는 게 어떤가 싶다. 니가 엄마한테 설명하고, 전화 한번 해봐라.”

“응, 알겠어. 고마워. 오빠는 집에 안 와?”

“가야지. 그라고 폰 사면 내한테 바로 전화해도. 니 번호랑 주소는 내가 배달 갈 때 넣어두면 되니까. 그 언니한테는 어디 두는지 알려줬나?”


세정은 전화를 끊고, 김영자에게 두정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함께 살던 언니가 미혼모 시설에 있다고만 말 한 뒤 선구가 알려준 번호를 내밀었다. 김영자는 그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일로 세정이 나왔는지 오늘 밤 아들에게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정이 친자식이 맞는지, 그렇다면 아는 언니와 왜 같이 살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김영자는 왜인지 모르게, 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세정의 손을 잡고 수화기에 귀를 바싹 붙였다.


“여보세요. 거기 마리아의 집 맞습니까. 아 예, 저는 김영자라는 사람인데요, 다름이 아니고 거기 최두정이라는 사람 있습니까? 저요? 아, 아는 사람입니다. 청가원에서 이 번호를 줘갖고, 거기… 있을까예? 예예, 천천히 하이소.”


그녀는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사람이 많아가 찾아본단다’라며 세정에게 속삭였다. 김영자가 목이 마르는지 침을 삼키자, 세정은 부엌으로 가 물 한 컵을 내왔다. 오전 11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에 놀라 세정은 가슴에 손을 대고 쓸어내렸다.


“아, 예예, 있습니까? 아… 예, 다행이네예, 그라몬 메모 하나 전해주이소. 강세정, 전화번호가 공.오.일.사.일.사…, 핸드폰 번호는 공. 일. 육. 이. 삼. 오… 예, 꼭 좀 전화해 달라 해 주이소.”

“있어요?”

“있단다. 지금은 무슨 뭐 활동 시간이라 못 받는다네, 전화해 달라 했으니까 기다려보자. 인자 나가까?”


세정은 안심한 듯 엉덩이를 대고 바닥에 앉았다. 김영자는 세정이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세정에게 내밀었다.


“아나. 좀 마셔라. 그래, 이 언니야는 몇 살인데?”

“열아홉 살요.”


그녀는 세정의 머리를 빗겨주듯 쓰다듬으며 혀를 찼다.


“아이고…… 어린 기 얼라를 뱄네. 우리도 퍼뜩 나가자.”


세정이 양손에 장갑을 끼기 전 박음질이 느슨해져 자꾸 풀어지는 셔츠 단추를 다시 잠갔다. 세정은 운동화에, 김영자는 안감 전체가 털 내피인 신발에 나란히 서서 발을 넣었다. 그녀는 현관문과 대문을 잠그더니 습관인 듯 남의 집 보듯 대문 틈 사이로 집을 보았다.


“옛날에, 도둑이 든 적이 있어가 문을 잠갔는데도 불안한 거라.”

“그래요?”

“그래. 니 혼자 있을 때 문단속 철저히 해야 된다. 세상이 무서워가 옛날 맨치로 대문 열어 제끼고 못 다닌다.”

“네.”


김영자는 세정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기분이 좋은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트로트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10분 정도 걸으니, 과일 가게와 반찬 가게를 시작으로 시장 골목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 그녀는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 ‘우리 딸내미 길 잃으면 길 좀 갈챠주소. 얼굴

잘 봐 놓이소’라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큰 목소리로 세정을 소개했다. 건어물 가게에서 진미채와 쥐포를 세정의 손에 쥐여주더니, 세정이 맛있다고 하자 통 크게 비닐봉지 가득 쥐포를 샀다. 바로 옆 신발 가게에 들러 검은색 겨울 운동화를 신겨주고, 패딩까지 사 입힌 후, 마치 자신이 선물 받은 양, 두툼한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호탕하게 웃었다가, 또 귀부인처럼 입술을 꾹 다물고 미소 지었다.


“아따, 딸내미 옷 사주고 그래 기분이 좋나? 입가가 마 광대에 올라붙겠다!”

“그래, 좋지! 내사마 아들만 키우다가 요래 이쁘고 야물딱진 딸내미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데, 뭐든 못 해주겠노. 우야동동 오늘 장사 단디 하소, 집에 갔는데 단추가 떨어진다, 실밥이 나왔다 하몬 고마 쎄리 달려올거니께.”


그 말에 웃음이 터진 세정을 보며 옷집 아주머니도, 반죽을 올리던 호떡 가게 아주머니도 그녀처럼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녀는 세정의 팔에 팔짱을 끼고 시장 끝에 다다라서는, 이제 대형 상점이 많이 생겨서 시장도 많이 죽었다고 말하며 옛날이 재밌고 좋았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좋은 기억이 많지. 저기 사람들도 바빠 죽겠다 해도 돈통에 돈 쌓이는 거 보면 힘들다 할 수 있나. 힘들게 벌어가, 자식 잘 키우고. 그게 즐거운 거 아니겠나.”


잘 모르겠지만, 알 것 같은 것. 세정은 그런 마음을 하루하루 배우고 있었다. 나중에 아는 것이 더 많아지면 함께 장단을 맞추고, 너스레도 떨 수 있을까. 세정은 그녀와 한 마리씩 사 먹은 붕어빵의 꼬리를 깨물었다.

양손 가득 장 본 것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밥을 함께 먹은 후 그녀는 인쇄소에 가봐야 한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세정은 그녀가 일러준 대로 문단속을 다시 하고, 대문 밖에서 집을 살피는 그녀를 거실에 서서 바라보았다.

세정은 먹다 남은 딸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딸기 하나를 손에 쥐고, 인우 생각을 했다. 2년 전 인우 생일에, 선구에게 부탁해 딸기 맛 롤케이크를 숨겨 들여왔는데 그때 진짜 딸기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인우와 언젠가 세상에서 맛있는 진짜 딸기를 질릴 만큼 먹게 해 주겠다던 지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세정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씻고 나오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덕배가 밖이 추운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한 손에는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오셨어요?”

“어, 잤드나. 이거 받아라. 내 또 일가야 된다.”

“뭐예요?“


그는 봉투를 세정의 손에 쥐여주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핸드폰 하나 샀다. 이거는 선구가 돈 내는 거데이. 그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으라 카더라. 번호랑 책자랑 거기 같이 들었다. 전화번호 수첩에 니 번호도 적어놔라. 내 간다.”

“네, 다녀오세요!”


세정은 방에 들어가 바닥에 앉았다. 봉투 안에 든 핸드폰을 꺼내 책자를 보며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달 중이라 바쁜지 신호만 울리고 받지를 않았다. 세정은 ‘폰 샀음’이라고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민아에게 메시지를 쓰다 혹시 자신과 친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생길까 차마 보내지 못했다. 액정을 만지작거리다가, 썼던 메시지를 한 자씩 지웠다.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핸드폰이 있었다. 친구들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옆에서 보며, 사용 방법을 익혔었다.

방에는 새로 산 것들이 쌓이고 있었다. 입었던 옷을 개어 한쪽에 놔둔 후 가방을 열어 손을 깊숙이 넣었다. 가방 아래쪽에, 신문지 사이에 넣어 둔 돈을 꺼내 천천히 세었다. 세정은 월요일에는 은행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선구의 옷장 마지막 칸에 돈을 넣고 톡톡 두드렸다.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는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수화기를 들자, 매일 들어왔던 두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 세정이니? 너 어디야, 어떻게 된 거야?”

“언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왜 거기 있는 거야? 몸은 괜찮아? 서울에서 많이 멀어? 언니, 나 집 나왔어. 여기 부산이야. 보고 싶어.”


‘10초 동안 하고 싶은 말 다 하기’에 도전하는 사람처럼 세정은 수화기 너머 사람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자 세정은 수화기를 다시 고쳐 잡았다.


“언니? 괜찮아?”

“응. 연락이 왔었다고 해서 전화한 거야. 세정아, 나는 이제 거기…… 사람들하고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다신 전화하지 마. …… 잘 지내.”

“언니!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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