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아이들 - 「세정(4)」

by 제인

「세정(4)」


두정이 전화를 끊자, 세정은 마리아의 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본인이 원하지 않으니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등의 행동은 삼가달라는, 날 서 있는 여자의 대답만 돌아왔다. ‘거기 사람들’ 단 몇 달 만에 두정에게 다른 의미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세정은 일어나 거실을 서성였다. 그리고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은 후 패딩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를 알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세정은 낮에 장을 볼 때 근처에서 PC방을 본 것 같아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간판을 살피기 시작했다. 골목을 벗어나자, 대교로 향하는 도로가 나왔고, 건너편에 PC방이 보였다. 육교를 한달음에 건넌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리문을 열어젖혔다. 출입문 종소리와 문이 닫히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자,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남자가 허리를 펴고, 세정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세요. 앉고 싶은데 앉으세요.”


세정은 앞쪽 의자에 앉았다. 인터넷 검색 창을 열고 ‘마리아의 집’을 입력했다. 검색 결과에는 마리아의 집 홈페이지가 있어 클릭하자, 원장의 시설 소개 영상, 후원자, 입소자의 후기영상이 차례로 떴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리의 집 원장 나경심 요안나입니다. 마리아의 집은 미혼모자시설로, 청소년과 성인 등 나이에 상관없이 시설에 입소하여 건강하게 이 시기를 이겨내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원내에는 생활지도사를 비롯해서 상담사, 산모 교육 담당자 등이 있으시고, 임산부들의 산전 교육, 출산 후 교육 및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분께서 정기후원을 해주고 계셔서…… 최근에 저희가 외부 행사나 활동으로 후원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한 생명이 태어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원봉사 및 후원 문의는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세정은 이어지는 영상을 몇 개 보다가 창을 내리고 시설 위치와 조직도를 보았다. 수첩에 주소를 적고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도 같이 메모했다. ‘게시판’을 클릭하니 입소자 활동사진이 나왔다. 세정은 두정이 집을 떠나던 달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두어 페이지를 넘기니 두정이 공예품을 만드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른 입소자들과 함께 찍힌 사진에서 그녀의 왼쪽 손은 배에 올린 채였고 오른손은 자신의 작품에 손을 올린 채 웃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때보다 살이 오른 것 같았다.

저 미소는 진짜일까. 진짜 우리 다 언니에게 그 집 사람들이 돼버린 걸까.

세정은 마우스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떼고, 사진 속의 두정을 한참 바라보았다. 게시판을 뒤져 두정이 찍힌 사진을 모두 찾아낸 다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찍은 사진을 한장 한장 넘기며 보고 있는데 선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정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곧바로 짐을 챙긴 다음 계산을 마쳤다.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세정은 종소리가 울리지 않을 정도로 문을 조심히 여닫았다.


“오빠, 바빴어?”

“어, 니 어딘데?”

“PC방.”

“거기서 뭐하는데. 엄마는 아직 안 왔나?”

“모르겠어. 말하고 나온 게 아니라서. 두정 언니한테 연락이 왔는데, 우리랑 연락하고 싶지 않대. 잘 지내라고 말하고 그냥 끊는 거야. 마리아의 집이 어떤 곳인지 찾아보고 싶더라고.”

“그래서, 뭐 찾아낸 게 있나?”

“아니, 그냥 평범해 보이던데. 게시판에 언니 사진도 있어서 사진 찍어놨어.”

“그럼, 진짜 연락하기 싫은 거 아니가. 잊고 싶은 기억은 빨리 잊어야지, 생각할 수도 있고.”

“…… 그럴 수 있나? 정말?”


세정은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랐다. 육교에 서서 보니 대교가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다.


“오빠, 대교 보인다. 나 주말에 아저씨가 바다 보여주신댔어.”

“맞나. 좋겠네. 거기 대교 건너면 바로 시내거든. 극장도 있고, 서점도 있고, 시장도 있고 뭐 많으니까 열심히 댕기봐라.”


세정은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언제나, 생각했던 것보다 해는 빨리 떨어지고 밤은 길었다. 세정은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버릇 생겼다?”

“무슨 버릇?”

“그 집 지나다닐 때마다 걸음이 느려져. 대문 앞에 가만히 서서 누가 올 때까지, 대문에 귀를 요래 대본다? 근데 아무것도 안 들려도 무섭고, 들려도 무서운 기라. 그래가 강세정이는 이래 등골 서늘한 집에 우예 살았을까 그 생각도 하고.”

“그건 오빠 엄마랑 비슷하다?”

“우리 엄마?”

“응, 문 다 걸어 잠그고 나간 다음에도, 대문 밖에서 안을 한참 쳐다보셔.”

“아, 그거.”


세정은 대문을 기웃거리는 선구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남의 집 대문과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불안한 눈을 한 모자. 세정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빠네 자명종 정각 알람 소리 진짜 커.”

“그쟈. 나도 맨날 놀랬다 아이가. 그래가 우리 엄마는 정각이라고 뻥 못 치는 거지. 그 소리가 안 들렸는데 우째 정각이겠노.”

“하하, 그렇겠네.”


코너를 돌자, 집이 보였다. 세정은 선구에게 늦어도 괜찮으니 매일 통화하자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집 앞에 서서 대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정은 열쇠를 꽂아 돌렸다. 마당에 서서 그 집과 한정을 묻었던 곳을 떠올렸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가족이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자, 세정은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목도리도 가지고 나올걸. 지금 후회한 들 뭐해’ 세정은 대문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려 습관처럼,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세정은 지우의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그날, 돈뭉치와 함께 지우의 일기장을 가지고 왔다. 남의 일기 좀 몰래 보지 말라던 지우에게 우리가 남이냐고 되레 큰소리쳤던 세정은, 떠나기 전날 지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일기장 내가 가져감. 내 일기장은 오빠 줄게.]


세정은 그가 쓴 일기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한정이 죽던 날에 씐 페이지를 펼쳤다.


긴 겨울을 나며, 땅 일부가 될 것 같았던 화분의 나무에 새순이 돋고, 끝도 없이 빛을 받아들이고, 물 한줄기 빨아들여 잎을 치켜세우는 계절이 오겠지. 날이 좋은 날 시커멓게 이끼 낀 계단을, 물을 뿌려 청소하고, 커다란 건조대를 꺼내 와 마당에 세우고,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빨아 널겠지. 꽃을 심고, 잡초를 뽑고, 언제 그 꽃들이 얼굴을 드러내나 매일 짝사랑 하겠지. 거기에는 땅속에 누운 이가 없겠지.


세정은 본 적 없는 수평선의 일몰이 그리웠다.

두정과 함께 사라졌던 문패는 바다 아래에 잠겼을까, 아니 그렇게 쉽게는 안 된다. 세정은 두정이 벼랑 끝에 발을 딛고 서 문패의 끝을 잡고 천천히 손가락을 떼는 상상을 했다.


낙하하며 여기저기 부딪혀 깨지다, 결국엔 두 동강이 나, 지면에 닿는 순간 그것이 처음에 무엇인지도 모를, 무엇에 썼던 물건인지 아무도 모르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아본 적 없던 매일을 사는 동안, 두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곳을 떠올리는 것은 새 삶에 대한 기회를 잡지 않겠다는, 시작하지 않겠다는 의미 같았다.

사진 속의 두정의 미소가 낯선 이유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것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른다.

세정은 매일 밤, 기도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몰랐으니까. 진짜 웃는 게 뭔지'




초여름이 되자, 세정의 방에 아기자기한 커튼이 달리고, 검정고시 문제집과 교재가 책장을 가득 채웠다. 버스를 놓칠까 봐 서두르는 발소리와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풍경은 일상이 되었다.

날을 넘겨 독서실 봉고차를 타고 돌아오는 세정이 안쓰러워, 어깨를 감싸고 한쪽 팔을 쓰다듬는 김영자의 얼굴이 선명해질수록, 그리움은 점점 투명해졌다.

매일 거울을 보며 아, 에, 이, 오, 우 소리를 내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학원에 가기 전, 손목에 흉터 크림을 두껍게 올린 후 머리를 질끈 묶었다.


추석을 앞두고, 선구가 집에 내려왔을 때, 두 사람은 새벽까지 거실에 앉아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달일은 그만두고 제대로 된 회사에 취직해야겠다는 그의 말에 세정은 마른오징어를 든 손으로 손뼉을 치며, 잘 됐다고, 두 분이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아, 맞다! 그 집 아저씨가 요새 안 보이대?”

“언제부터?”

“……한 달 됐나?”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세정이 새로 집어 든 오징어를 채가더니 질겅질겅 씹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줌마는?”

“그 여자는 있더라. 그라고 니가 지하실에서 허락 없이 못 나온다 했잖아? 근데 지난 번에 배달 갔을 때 인우라는 애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니까?”


선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란히 앉아 있던 세정은 몸을 틀어 선구를 똑바로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오징어를 씹고 있던 그는 맥주를 또 한 모금 마신 후 땅콩을 하나 손에 들었다. 엄지로 꺾자, 껍질 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문이 열렸으면 도망쳐 나와야 되는 거 아니가? 내를 빤히 보길래, 내가 소리는 안 내고 니 이름을 말했거든? 근데 내한테 돈을 주더라니까? 그래 주리, 아니 잔돈 받아 가랬지. 근데 문 닫고 들어가드만 조용해. 기분이 싸한기라.”


믿기 힘든 얘기에 세정은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지우 오빠는?”

“못 봤다.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나. 마트 사장님이 요새 그 집, 술 갖다 달라고 맨날 전화 온다드라. 그걸 누가 묵는단 말이고. 냄새가 난다카이, …… 요상한 냄새.“


세정은 머리가 지끈거려 엄지두덩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온몸의 털이 다 서는 기분이었다. 세정은 손을 내려 그의 팔등을 꽉 붙잡았다.


“오빠, 언니 보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서 바꿔줘.”

“알았다. 마트에도 물어봐야겠다. 누구 딴 사람은 없었는가.”


선구는 꽃무늬 접시에서 껍질을 깐 땅콩 몇 개를 집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와 있을 정도면 전화도 쓸 수 있는 거 아니가? 근데 왜 니한테 전화 안 하냐고. 그 두정이라는 애는 연락 없드나?”

“응… 그 뒤로는.”

“강세정, 이런 소리 미안한데 좋은 일로 맺은 인연도 아닌데 뭐 굳이 연락하고 싶겠노. 다 자기 앞에 떨어진 불 끄고 살다 보면 힘든 거는 잊고 싶은 거 아니가?”


그래도, 인우 언니랑 지우 오빠는 그럴 리 없어. 세정은 속으로 말하고 음료수를 마셨다. 앞에 놓인 핸드폰을 쥐었다가 앨범으로 들어가 두정의 사진을 보았다. 선구는 취하는 것 같다며 소파에 드러눕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세정은 쟁반에 접시와 마시던 맥주병을 올리고 부엌으로 가져갔다. 땅콩 봉지를 잘 묶어 냉장고에 넣고 개수대에 컵을 넣었다. 방에 들어가 장에서 홑이불을 하나 꺼내고는 선구의 배 위에 덮어 주었다. 세정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안방에서 나는 기침 소리에 정신이 들어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선구가 서울로 돌아가고 며칠 뒤였다. 세정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 그의 전화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듯 손을 들어 표시하고는, 교실 밖으로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복도 끝으로 가 열린 창문 앞에서 전화받았다. 지우를 봤는데, 집을 나가는 듯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나오더니, 시장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그 집에 둘만 남아 있냐고 물었고, 그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집으로 가 벨을 눌렀고, 인우에게 그가 어디에 가는지 물었지만, 답이 없었고 세정과 통화하게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원하지 않더라고 했다.

세정은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괜찮은지 묻는 그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고 학원 밖으로 나와 길거리를 쏘다녔다.


세정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학원으로 돌아갔다. 모두 돌아간 빈 교실에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왔다. 독서실도, 집에도 가기 싫어 근처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탄산음료 하나를 주문하고 늦은 시간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집을 나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니 괜찮아져야 했다. 그래서 알람까지 맞춰가며 흉터에 재생 크림을 발라댔다. 그런다고 없어질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울퉁불퉁한 피부에 흰색 크림을 씌웠다. ‘안심하다, 걱정 없이 마음을 편히 가지다’ 잘도 그런 상태가 될 거라고 말이다.


추석 전 불어닥친 태풍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깨진 간판이 아직 골목에 방치된 채였다. 세정은 다른 생각은 떨쳐버리려고, 간판에 불이 켜졌을 때 어떤 색이었는지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강세정.”


바닥을 보며 걷던 세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 쏟아졌다는 게 맞겠다. 바닥으로 떨어져, 눈물이 눈물을 튕겨내고, 또 튕겨냈다. 세정은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양쪽 무릎에 두 손을 대고 허리를 구부린 채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세정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강세정.”


과거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세정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에 선 사람을 붙잡았다. 들어 올려진 얼굴이 검은 하늘과 구름을 마주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맺혀있던 눈물을 모두 흘려보냈다.


우리의 재회는, 만개한 꽃같이 아름다울 거야.


그가 일기장에 적은 문장과 같은 순간이, 진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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