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에필로그(2)- 완결
사영은 김정무의 편지를 내미는 이 경위의 손을 바라보았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김정무의 글씨체는 자신이 지은 죄와는 다르게 깔끔하고 단정한 글씨체였다. 그 편지를 펼치면 아름다운 말들만 흘러나와 오르골의 태엽처럼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저주에 걸릴 것 같았다. 한 통은 자신에게, 한 통은 사윤에게였다. 참 오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질기게 살아남은 자는 이제 감시의 여유 안에 있고 한숨 돌린 사람들을 도리어 틀 안에 넣어 옥죄고 있었다.
“경위님, 읽어 보셨어요?”
“네.”
“사윤이에게는 보여 주지 않을 거예요.”
“네. 어머니 선택입니다.”
“지소에서 숨만 붙어 있는 그 사람을 다시 보았을 때, 저는 그 생각부터 했어요. 너는 끝내 죽지 않고 나를 영원히 괴롭히겠구나. 사윤과 나, 우리는 뼈만 앙상한 당신의 몸 아래에서 또 죽어가겠구나. 그러다 벌떡 일어나 차라리 나를 죽여 줬으면… 했어요. 그럼, 이 모든 게 끝나지 않겠냐고. 어릴 땐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어요. 아버지는 왜 이곳으로 왔을까, 왜 나를 버리지 않았을까, 왜 나를 모르는 척했을까. 호는 왜 나였을까. 왜 나와 결혼했을까. 왜 나는 그를 받아들였을까. 왜 나는 피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사윤을 미워했을까. 사윤은 왜 나를 엄마로 두었을까.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의문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라봐요. 차라리 버리지, 사윤의 눈은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 애는 내내 제 옆에 붙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사영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봉투의 끝을 찢었다. 그녀는 찢어낸 종이를 앞의 철제 쓰레기통에 넣었다. 호를 보내고 처음 산 검은색 코트는 몇 번 입지 않아 아직도 새것 같았다. 코트를 살 때 사윤이 따라갔었는데, 이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사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코트 앞섶을 자꾸만 쓸어내렸다. 긴장이 되는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그녀는 이 경위와 눈을 마주치고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산책하던 사람들도 방향을 틀어 걷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경위를 부르며 손을 흔들자, 그는 이만 들어가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사영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편지를 펼쳤다. 빼곡하게 쓰인 글자들, 얼핏 봐도 아무 의미 없는 내용들이었다.
“경위님!”
이 경위가 돌아서자, 사영은 그에게 달려갔다.
“라이터 좀 빌려주실래요?”
그는 잠시 놀란 눈으로 사윤을 보다가 점퍼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가지세요.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고맙습니다.”
“사윤이한테 근처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세요. 근처에 햄버거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맛있더라고요.”
“네, 감사해요”
사영과 이 경위는 동시에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김정무가 사윤에게 쓴 편지의 끝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끝까지 타 검은 재만 남은 것을 보고 자신의 것도 꺼냈다.
[사영 씨, 이 모든 일이 저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처음에 사윤이의 부탁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저나 호나 둘 다 결국에는 이렇게 됐지만 저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쓰레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꾸 저의 과거를 사람들이 이 일에 대입시키는데 그 건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어요. 그런데 왜 이번 일에 자꾸 지난 일을 끌어다 붙이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무튼 사윤에게 한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영 씨가 당한 일, 호가 사윤을 학대한 일은 사라지지 않아요. 애초에 호에게 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저는 호가 무슨 짓을 해 왔는지 아주 세세히 알고 있어요. 사윤이가 사영 씨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호가 그렇게 되고 나서도 저와 형은 호가 죽지 않기를 바랐어요. 지소에 가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요. 저는 지소에 갈 때마다 사윤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어요. 벗어나지 못한 건 오히려 저라고요. 세뇌당한 건 난데, 자신이 제일 억울한 사람인 것처럼 굴었어요. 그리고 그 애는 나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협박하기까지 했어요.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그대로 두면 또 다른 호가 되겠더라니까요? 예준이 일도, 사윤이는 다 알고 있었어요. 저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학대당했다는 이유로 빠져나갔어요. 사영 씨, 우리는 제대로 볼 필요가 있어요. 저는 ㅇㄹㄱ… ㅏ ㅜ … ㅅ…]
사영은 봉투 겉면에 이름이 다 탈 때까지, 그것이 처음에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사영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경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눈앞이 흐려졌다가 뚜렷해졌다가 했다. 검은 코트에 눈물이 떨어졌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사윤이 우산을 챙겨 나갔는지 걱정이 됐다. 그녀는 가방에서 울리는 소리에 핸드폰을 꺼냈다.
“응, 사윤아.”
“어디예요? 이 경위님은 엄마를 왜 만나자고 한 거예요?”
“그냥, 우리 잘 지내나 궁금하셨대.”
“아닌 것 같은데요? 다른 이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경찰서 앞에 햄버거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맛있대. 근처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시더라.”
“그래요? 여기 비가 와서 견학 빨리 끝났어요. 거기는요?”
“오려나 봐. 흐려지네? 집으로 바로 올 거니?”
“네. …… 엄마, 혹시 울었어요?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 같아요.”
“아니야. 감기가 오려나 봐, 목이 좀 아프네.”
“그것 봐요. 전기매트 꺼내야 한다니까요? 어, 저 이제 버스 타요!”
“그래, 조심해서 와.”
예준의 유골이 발견됐다던 뉴스를 보며 울부짖던 사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사윤이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진술하던 날, 사윤의 눈동자는 마치 눈앞에 호수와 숲이 있는 것처럼 짙은 녹음을 띠었다가, 큰 잎에 가려진 가지의 그림자였다가, 호수의 바닥 같은 먹색이기도 했다. 그를 바라보는 사영의 눈도 그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 잠시 기절했다가 눈을 떴다. 거친 나무 바닥에 희망도 없이 끌려다니다가 살아보자고 한 선택. 살아보자고 한 선택.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잘못이 있었다. 끝도 없이 뻗어나간 잘못들은 오히려 너무 짙어서 보이지 않았다.
사영은 신발 코에 떨어지는 비를 보고 일어섰다.
“호. 나는 이제 여전하지 않아. 그러지 않을 거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시작이 된 이소라 - Track 9 을 다시 들으며 소설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