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전한 이야기

13. 에필로그(1)

by 제인

“김정선 씨, 지금 어떤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어떤 혐의죠?”

“윤호 실종 사건에 형인 김정무가 관련이 있고, 제가… 호를 숨기는 데 조력했다는…….”

“윤호 씨와는 어떤 관계 시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김정무 씨와 윤호 씨는 어떤 관계인지 알고 계십니까?”
“저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윤호 씨가 실종된 날로 돌아가 보죠.”


김정무는 앞에 놓인 흰 종이와 펜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가슴이 답답한지 깊게 숨을 마시다가 그마저 담는 것이 힘에 부친지 짧게 끊어 뱉어냈다. 펜을 손에 쥔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다시 두 눈을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의 끝을 한참 만지작거리던 그는 결심이 선 듯, 품 속에서 봉투를 꺼내 형사에게 건넸다.


“진술서를 써 왔습니다. 그 속에 다 들어 있어요.”


형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는 두툼했고 얼핏 봐도 열장은 넘어 보였다. 김정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진술 녹화실 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저는 김정무의 동생입니다. 화주 종합병원 원장으로 재임한 지 10년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화주 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병원 창업자였어요. 퇴직 후에는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원장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화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원장입니다. 호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장님은 오래전부터 저희 집안일을 봐주셨어요. 지역 유지로 사람들의 신망을 받는 것, 그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명망 높은 집안이라고 평가받는 건 말입니다. 남다른 노력이 필요해요. 모든 건 내 마음 같지 않거든요. 세월만큼 묵은 때가 많았어요. 그러니 우리 집안을 유지관리 해 줄 관리인이 필요했어요. 이장님과 호가 그 역할을 해줬어요. 우리가 대대로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그들도 대대로 우릴 위해 뛰어주었죠. 어떤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 주는 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필요로 하는지 아세요?


어릴 때 형은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사람들 모두 형을 좋아했죠. 그도 그럴 게 보이는 곳에서는 마치 둘도 없이 친절하고 법 없이 살 사람이고, 아, 법이 필요 없긴 했어요. 무슨 짓을 해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형 때문에 제가 어릴 때부터 사건이 끊이지 않았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이장님을 불러 수습하라고 하더군요. 이장님은 현금 다발을 허리춤에 매는 가방에 돈을 탁탁 쳐서 정리한 다음 당연한 듯 집어넣고는 알겠다고 간단히 답했어요. 형이 원생을 건드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형은 골목을 배회하다가 혼자 놀고 있거나 유치원에서 제일 늦게 남아 있는 아이만 노렸어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부모가 바쁜 아이,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 애한테 별 관심이 없는 부모, 공통점이 뭘까요. 사고가 생긴 날부터 그들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어요. 이 지역에서,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그러느니 차라리 스스로 범죄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는 걸 택할 거예요.


그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그런데 그 애가 당한 일이 수치스러웠던 거예요. 수치. 여길 떠나지 않을 거라면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좋은 거죠. ‘다정한 손길’ 이장님은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정무가 너무 다정해서 그래. 그러니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넘치게 베풀어야 하는 거지.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요. 형은 그렇게 살아왔어요. 우리가 모두 적당히 하라고 했죠. 적당이라는 말을 뱉는 순간 다 같이 똑같은 얼굴을 한 괴물이 되는 거예요.


마음엔 한계가 없다는 걸 아시나요? 악한 마음은 멈출 줄 모르고 여기저기 뚫어대요. 끝도 없이 뚫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장이었어요. 결국 무너지고 말았죠. 그래도 아이를 해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호에게 그런 짓을 할 줄도 몰랐고요.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형은 그날 울면서 전화했어요. 저는 그 목소리를 알아요. 아주 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직접 내 눈으로 상황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말이에요. 그리고 이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이 될 거라는 것도 알았어요.


그날 피범벅인 형의 얼굴에서 공포를 보았어요. 죽여야 할까? 형의 말에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차라리 죽어 있었다면 쉬웠을 거예요. 제 판단으로는 그 상태로는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 일단 살리고 다음을 생각해 보자는 게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이었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요. 우리는 지소에 필요한 물품을 서둘러 옮겼어요. 그리고 여기를 지켜줄 사람, 누구를 데려올지 고민했죠.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했었던 이희연 간호조무사가 떠올랐어요.

그녀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파악이 빠르더군요. 처음엔 신고를 하니 어쩌니 하더니 병원에서 받던 월급의 세 배를 건네니 마스크를 챙겨 쓰고 호에게 다가가더군요.


호가 실종된 후 사영 씨는 한동안 경찰 수사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얼굴은 편해 보였어요. 그래서 더 의심받았죠. 그녀의 몸에 생긴 상처를 본 사람들은 이미 많아요. 그러니 그녀가 남편을 죽였더라도, 아니더라도 그게 뭐가 됐든지 간에 실종일이 그녀의 삶의 기념일이 됐을 거라는 당연한 결론을 내린 거죠.


호는 발견된 대로 그렇게 살아남았어요. 그는 죽지 않았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어요. 결국엔 살아 있어 다행이었어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가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습니다. 그 사이 형은 잠시 쉬지도 않더군요. 형은 사윤이를 데리고 주기적으로 지소를 들락거리더군요. 그 애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고 저는 두려워졌어요. 어떻게 그 아이에게 다시 접근할 수가 있습니까?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그러다 사람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우리는 정말 끝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어요. 제 협박은 그저 다정한 충고로 들렸나 봐요. 형은 매번 괜찮다고 하더군요.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꿇릴 게 없는지 그 뻔뻔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더군요.


호의 상태에 대해서는 매일 전화로 보고받았어요.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형이 가져갔고 저는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호의 아내와 아이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보냈던 장소에는 가해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고, 저 같은 방관자도 있었죠. 시간은 흘러가고, 호는 잊혔고, 우리는 우리 삶을 살았습니다. 때론 두려워하면서, 그러다 그 두려움마저 받아들이게 된 거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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