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절망의 위로
“아저씨는 나를 위해, 큰 결심을 해 주었다. 오늘은 아저씨가 아버지를 엄마에게서 없애주기로 한 날이다. …… 네가 쓴 거지?”
“네.”
“사윤아. 우리 다 알아.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는데, 그래도 정말 그런 부탁까지 해야 했어?”
“틀렸어요. 형사님은 몰라요. 엄마와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 저는 아팠다는 말로 밖에 할 수 없어요.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했어요. 엄마가 행복해지면, 나도 봐주겠지. 그럼 나도, 행복해지겠지. …… 아저씨랑 아버지는 벌받아 마땅해요. 내 엄마예요, 내 친구였고요, 나도…… 나도 그냥 윤사윤일 뿐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그렇게 해도 되는 이유 같은 거 없었잖아요! 사람 아니잖아요!”
다락방에서 예준의 흔적을 찾았고, 흩어진 유골을 수습했고, 김정무와 그의 동생 김정선, 그리고 이희연 간호조무사가 함께 기소되었다. 사윤은 자책했다. 푹 꺼진 눈 아래에 회색빛 그림자는 깊어서, 사윤이 말했던 그 호수처럼 쓸쓸해 보였다.
병원에 있던 호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사윤은 동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어 있었어요’ 그게 사윤의 대답이었다. 호의 몸이 바스러진 날, 유일하게 눈물을 흘린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사영은 그렇게나 자신을 짓눌렀던 무게가 이제 두 손에 잡히는 가루가 된 것이 기가 차다는 듯 항아리를 한번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사윤을 처음 안았을 때의 무게와 비슷했다.
사영은 떠올렸다. 호를 처음 만났던 날과 뭐라 말할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했던 날들이 지나, 굴복했고, 복종하고, 자포자기했던 날들도 지나, 갓 태어난 사윤을 보며 자신과 같은 운명에 들여놓은 것에 증오하고, 분노하고, 커가는 사윤의 눈에 짓밟혔던 순간들.
“…… 용서 못 할 것 같아.”
그녀는 곧 흩뿌려질 그를 뒤로하고, 사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창문이 큰 면회실의 안쪽에는 다른 환자가 보호자와 만나고 있었다. 사영은 문에서 가까운 사각 테이블에 앉았다. 긴장한 탓에 방석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사윤은 보호사와 함께 들어왔고, 사영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가, 곧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의자를 꺼내 앉았다. 보호사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고, 그는 사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화장했어.”
“오늘이었어요?”
“엄마는…… 전에는 용서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사영의 아랫입술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기사 댓글에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다면서, 그런데 용서해야지 어떡하냐고……. 웃기지 않아요? 말은 되게 쉽더라고요.”
사윤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하는데 사영의 손은 의자를 붙든 채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나 바랐던 사영과의 만남은 이제는 사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지 못했고, 어떤 마음인지도 알 수도 없었다. 집에서 보자는 말도 할 수 없었다. 함께할 수 있을지 물을 수도 없었다.
지금은 서로를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지소의 철거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흙먼지 속에서 혀를 찼다. 그날 사윤은 김정무를 만나러 교도소로 갔지만 몇 번의 요청에도 면회는 거절되었다. 그는 핸드폰으로 예준에 대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김 씨는 성폭행을 시도하던 중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갑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키자, 겁이 나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그렇게 됐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사윤은 그 문장을 계속 곱씹었다.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강풍에 자꾸만 풀리는 사윤의 목도리를 한 번 더 감아 묶어 주던 사영은 가슴 깊숙이 사윤을 끌어안았다.
“그 사람은 왜 보려고 했어?”
“질문이 있어서요.”
“뭔지 물어도 돼?”
사윤은 대답 없이 목도리 끝을 붙잡고 발목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했다. 버스가 보이자, 그는 사영의 손을 잡아내렸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라는 말요, 그 말 되게 싫어했는데. 엄마, 우리도 나중에 다 알게 되겠죠?”
버스가 앞에 서자 사윤은 사영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둘은 나란히 앉아 고르지 않은 길을 달리며,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사윤은 해가 질 녘의 상담실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늦은 오후 시간에 면담 약속을 잡았는데, 상담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통창 아래 놓아둔 화분에 물을 주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한 옆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어린 사영도 보였고, 훗날 어른이 되어 있을 사윤을 마주한 것 같기도 했다.
“사윤이는 코끼리를 좋아해?”
“아니오.”
“그럼, 코끼리만 만드는 이유가 있어?”
“언젠가 코끼리 다큐멘터리를 봤는데요. 성체 수컷 코끼리는 원래 살던 무리에서 떠나 혼자 살거나 다른 수컷과 산대요. 공격성이 강한 수컷 코끼리는 암컷에서 분리되는 것이 사회적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암컷은 수컷을 내쫓는다는데… 아셨어요?”
“아니, 몰랐어.”
“엄마는 아버지를 내쫓지 못했어요. 두려움이 엄마를 침묵하게 한 거예요.”
사윤은 점토를 크게 떼어냈다. 귀를 만들려는지 손에서 굴렸다가 바닥에 대고 넓적하게 눌렀다.
“사람들이 저한테 후회하냐는 질문을 지겹게 해대요. 그런데요, 선생님.… 숨이 찰 때까지 달리지 말라는 건, ‘너는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게 없을 거다’라는 말과 같지 않나요?”
“숨이 찰 때까지 달리지 마라. 그건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도 생각되는데?”
“내 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내 심장은 언제까지 괜찮을까, 언젠가 피가 거꾸로 도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떤 일을 끝까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접게 돼요.”
금세 꼬리가 만들어졌다. 눈을 붙일 자리를 위해, 사윤은 끝이 뭉툭한 도구를 들었다.
“정기 검진도 받고 있고, 증상이 생기면 그때그때 치료만 적절히 잘하면 되니까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마. 지난 결과 보니까 시력이 떨어진 것 외에는 괜찮던데?”
“어른들은 걱정도 골라서 할 수 있나 보죠? 어떤 걱정은 그만하라고 하고, 어떤 걱정은 하라고 하고. …… 그냥, 그렇다고요. 시간 다 됐는데요?”
“만들던 건 가져갈래?”
“…… 버릴래요.”
사윤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로고가 없는 검은색 모자를 꾹 눌러 쓰고 가방을 멘 후 점토 덩이들을 뭉쳐 하나로 만들었다. 머리였고, 귀였고, 꼬리였던 것들이 사라졌다. 그는 들어올 때처럼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진료실 문 앞에 섰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던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모니터를 보며 타이핑 중인 의사를 향해 돌아섰다.
“…… 선생님. 그날, 경찰서에서 엄마가 처음으로 제 이름을 불렀어요. 전해 들은 얘긴데, 엄마는 저를 부르지 못해 아팠대요. 저는 엄마를 몇 번이나 죽였을까요? 생각해 보니, 엄마는 제 꿈이자 절망이었어요.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절망이다. 그런데 저는 그런 절망에라도 위로받았어요.”
문이 열렸고, 긴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가슴이 움푹 패일 만큼 깊은 숨소리. 그게 아니면 울음소리일지도 모를 헐떡임이 복도 끝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가여운 모자’에 대해 얘기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 누가 더 불쌍한지, 누가 위로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갑론을박하며 미래를 점쳐주고, 대신 빌어주고, 대신 용서했다. 그들은 각자의 종교에 기대 그럼에도 그들이 살기를 바랐다.
정작 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감내할 수 있는 선까지만 드러났고, 아무 의미 없다는 듯 숨겨졌다.
마음 깊이 동정하며, 타인의 여전한 삶이 내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 말했다.
우리가 보아야 했던 것들은, 결국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더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