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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Feb 24. 2019

사르트르 <구토> 읽기

책이다 라이브 독서모임 1회차

 

1. 작가 소개

사르트르. 1905년 프랑스 파리 출생.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2살이 되던 해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전쟁 후유증으로 사망. "만약 내 아버지가 오래 살았다면 그는 내 머리 위에 군림하며 나를 억압했을 것이다. 나는 내 위의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Q. 아버지에 관한 사르트르의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후 외가에서 생활. 소르본대학 독문학과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 슈바이처 박사의 큰아버지인 외할아버지 밑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냄. 파리 고등 사범학교(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or 서울교대)에 진학 후 수석 졸업. 교사 시험 합격 후 평생의 반려자 보부아르를 만남. 루브르 박물관 앞 벤치에서 2년짜리 결혼 계약을 맺었으나 평생 관계를 이어갔으며, 같은 호텔에 투숙하되 각자의 방에서 지내는 독특한 생활 양식을 유지.


Q. 두 사람이 같이, 그러나 따로 생활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소집.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포로가 되었고, 이후 풀려난 뒤 레지스탕스 참여 등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감. 그리고 1938년 소설 <구토>를 출간하였으며, 5년 뒤인 1943년에는 철학서 <존재와 무>를 출간. 13년만에 46판이 인쇄되며 철학 서적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됨. 독립 이후에도 알제리 독립전쟁 짖 활동, 68혁명 참여, 김지하 시인 석방 운동 등 실천적 활동을 이어 갔음.


Q. 실천과 이론 중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1980년 4월 15일 사망.


2. 사르트르 철학 공부하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실존 = 그저 있음. 본질 = 존재의 이유와 목적.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난들 생존의 이유를 알겠는가? 그녀처럼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기대도 없으니까. 나는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까닭 없이’ 주어진 이 인생 앞에 놀랄 뿐이다.” 사물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남. 그저 있기 전에 목적을 지니는 것. 즉,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고 할 수 있는 것. 반면 인간은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 채 세상에 던져진 존재.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이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음. 다시 말해,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


Q.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사물 혹은 동식물과 무엇이 다른가?


3. 책 내용 훑기

몇 년 전부터 부빌에 거주 중인 앙투안 로캉탱. 드 롤르봉 후작이란 프랑스 혁명 전후 혼란기의 인물을 연구하고 있지만 이미 답보 상태인지 오래이며, 사회적 관계 또한 철도회관 여주인과의 섹스,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 ‘독학자’와의 대화가 전부.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서 조약돌을 줍게 된 뒤부터 구토가 이어짐.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지면’ 안 된다. 살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정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쓸모 있는 물건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나를 만진다. 그 사실을 참을 수가 없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접촉하는 게 두렵다. 이제 생각난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쥐었던 느낌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시큼한 구토 증세였다.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진 거였다. 그렇다. 그거다. 바로 그거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 증세.”


Q. 로캉탱이 조약돌을 쥐었을 때 구토 증세를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구토는 이후부터 계속됨. 물웅덩이의 종잇조각을 주우려고 할 때, 마로니에 나무 뿌리를 보았을 때, 카페 종업원의 벨트가 셔츠의 주름 속으로 보일 듯 말 듯 했을 때 등등. 증세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 바로 낡은 재즈 레코드의 음악을 듣는 것.


“다음에 오는 짧은 침묵 동안 나는 됐음을, ‘무슨 일인가’ 일어났음을 절실히 느꼈다. 정적 / 머지 않아서 / 그대는 / 내가 없어 외로우리! / Some of these days / You’ll miss me, honey! 일이 일어났다는 건 ‘구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침묵 속에서 소리가 튀어나왔을 때, 몸이 굳고 ‘구토’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Q. 재즈 음악을 들은 뒤, 로캉탱의 구토 증세가 가라 앉은 이유는 무엇일까?

Q.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4. 문장 엿보기

가스등이 반짝였다. 나는 가스등 켜는 사람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가라는 신호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눈치만 살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태양의 마지막 반사에 불과했다. 하늘은 아직 밝은데 지상에는 땅거미가 감돈다. 군중은 흩어지고, 바다가 허덕이는 소리만 똑똑하게 들려왔다. 난간을 짚고 있던 젊은 여자가 립스틱으로 검은 줄을 그은 듯한 창백한 얼굴을 쳐들었다.


‘내가 인간들을 사랑하려 하는가?’ 순간적으로 자문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오늘은 그들의 일요일이지 나의 일요일은 아니었다.


드 롤르봉 씨와 나는 협력 관계였다. 그가 존재하려면 내가 필요했고, 나는 내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나는 많이 가졌으면서도 어디에 써야 좋을지 몰랐던 원료, 즉 존재, ‘나의’ 존재라는 원료를 공급하고 있었다.


내 생각, 그것이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는 저 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는 것이 나로 나, ‘나’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오와 권태가 ‘나를 존재시키는’ 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 넣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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