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과 플라톤
Director :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Cast : 안소니 홉킨스, 조너슨 프라이스 외
Philosopher : 플라톤
Lines :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11:50)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
100개의 조직과 100가지 리더
소통과 균형, 평등을 말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일부의 뛰어난 리더가 국가와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봐, 해봤어?”라 되물으며 자수성가식 성공의 DNA를 주입한 정회장님부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던 이회장님의 재벌식 성공방정식까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를 이해하고, 그 자리에서 한 발 더 나아가려 노력한 사람만이 성공을 거머쥐었다. (성공이 대체 무엇인지, 그들의 성공을 진정 ‘성공’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따위의 ‘근본’ 있는 질문은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거기까지 가면 우린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할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그러나 같은 성공의 방정식을 적용한다고 모든 조직이 동일한 크기와 형태의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복잡한만큼, 조직의 형태와 그 조직을 둘러싼 환경도 다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개의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의 리더와 리더의 성공 방정식도 최소 100개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럼 대체 플라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가 살아간 기원전 4세기경, 아테네는 급변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연달아 치르며 국력은 약할대로 약해져 있었고, 무능력하고 당파적 이기심에 눈이 먼 이들이 지도자로 행세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지식인이 희생됐다. 플라톤의 스승이자 무지의 지를 설파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대표적 사례.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우고, 독배를 손에 쥐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경험한 플라톤에게 지도자란 무릇 ‘하고 싶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 테다. 플라톤이 생각한 건강한 도시국가란 권력이 인민 또는 무능력하거나 간악한 지도자가 아닌, 능력 있는 리더의 손에 맡겨진 곳이었다.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의 최소 조건이자 국가와 조직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지름길이었던 셈이다.
동굴 밖을 벗어난 리더
그렇다면 플라톤이 말하는 진정한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 플라톤은 이를 나름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동굴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사슬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온몸은 물론 머리까지 고정되어 동굴의 벽멱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 그 뒤로는 불이 있으며, 불과 사람들 사이에는 길이 존재한다. 사람과 동물이 길을 지날 때마다 벽면에는 그림자가 비칠 테다. 물론 맨손으로 지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을테니 다양한 사물의 그림자도 비쳤을 테고 말이다. 평생 동굴의 벽면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그림자가 실재라고 믿고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잠시 풀려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동굴의 반대편을 향한다. 처음엔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조금씩 환한 빛에 적응하게 된다. 그는 곧 태양빛 가득한 동굴 밖까지 발걸음을 옮기고, 그곳에서 자신이 실재라고 믿었던 것들이 고작 그림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지만 더 이상 어둠이 익숙하지 않다. 친구들은 그가 불쌍하기만 하다. 동굴 밖을 다녀온 뒤로 시력이 떨어진 데다, 엉뚱한 소리마저 지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진짜를 보았다’고 외쳐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의 친구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바라는 리더는 바로 그, ‘진짜 세상을 본 사람'이다. 거짓된 세상, 지금 보고 있는 것에만 안주하지 않고, 정말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진짜'를 추구하는 사람 말이다. 플라톤이 보기에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한 현상들, 즉 동굴의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간다. 반면 일부의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실재에 관한 지식을 추구한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철학자'라고 불렀다.
흐르는 시대, 변화하는 리더
시대는 흐르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의 모습도 매번 조금씩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가령 플라톤은 자신의 국가가 사적 소유와 가족생활 금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지도자의 충성심, 그리고 국방력에 의해 지탱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무능력 이외에 당파와 이기심에 의한 알력이 당시 아테네의 타락한 민주주의에 닥쳐올 위험 요인이라고 믿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리더를 만들기 위한 그의 제안은, 그리고 그 제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질 지도자는 과연 우리 시대에 걸맞은 인물일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가톨릭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라칭거 추기경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대중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는 베르골리오 추기경 중 더 ‘리더’의 모습을 갖춘 인물은 누구인가? 사실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일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 무엇이 옳고, 다른 무언가는 그르다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듯 하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결과뿐이다. 라칭거 추기경은 이날 콘클라베가 끝난 뒤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로 즉위하였으며, 그의 사임 후 호르헤 추기경이 뒤를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즉위했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