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 뤽 베송
Cast : 브루스 윌리스, 게리 올드먼, 밀라 요보비치 외
Philosopher :엠페도클레스
Lines : “바람은 불고, 불은 타오르네, 비는 내려.”
때는 서기 2263년. 지구에 위기가 닥쳤다. 우주로부터 정체불명의 괴행성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지구 연방은 근처에 전함을 보내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외려 행성의 크기만 키우고 만다. 보통의 행성이 아닌 암흑의 존재라(벌써 뤽 베송 돋는 설정이다) 공격을 가하면 가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인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래 전 현자 종족 몬도샤와인들이 5000년마다 닥쳐오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건넨 무기를 되찾고, 이를 이용해 행성을 파괴하는 것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기의 재료인 돌을 회수한 주인공 일행. 신전의 무기실에 모인 뒤, 동반자이자 제5원소인 릴루에게 무기의 작동법을 묻자 그는 대답한다.
바람은 불고, 불은 타오르네, 비는 내려.
이들은 수수께끼 같은 릴루의 대답 속에서 무기 작동법을 알아낼 수 있을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어린 시절 재밌게 본 <캡틴 플래닛>이란 만화영화 시리즈가 있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힘을 부여받은 반지를 가진 다섯 영웅이 모여 환경을 파괴하는 빌런을 물리치는 줄거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이 내 기억속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조롭지만 꽤 중독성 있는 주제가 때문이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 캡틴 플래닛!
이 소절의 앞도, 뒤도 잘 기억하지 못했던 난 이 부분만 하루종일 주구장창 되뇌였더랬다.
다섯 가지는 아니지만, 그 속에 포함된 네 가지 힘을 모티브로 한 설정은 비교적 최근의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비밀의 숲은 물, 불, 흙, 공기(바람)이라는 네 가지 정령이 지키는 공간이다. 이야기의 구조 또한 캡틴 플래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들은 어느 날 인간이 자신들이 만든 인위적 선택과 구조물이 자연에 큰 해를 입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당연히 이를 되돌리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을 했고, 모험에서 되돌아온 이들은 오래오래 행복했겠지 뭐.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럼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땅, 불, 바람, 물이라는 소재를 영화에 활용했을까? 당연히 우연은 아닐 터, 이야기는 서양철학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됐다. 그가 이를 궁금해 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후대인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첫째, 기존의 신화적인 세계관만으로는 세상만사를 모두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제우스와 헤라가 다툼을 하면 천둥이 친다거나,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폭풍우가 몰려온다는 이야기로는 납득 안 되는 일들이 많았던 거다. 둘째,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그가 살던 지역인 밀레토스는 상업이 번성항 항구도시였다. 거주자들은 부를 축적할 기회가 많았으며, 먹고 살만 해진 사람들은 자연스레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탈레스는 고민 끝에 이 세계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탈레스가 그 물질로 물을 지목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식물이 물을 머금고 자라나는 모습,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게 있어서 물의 중요성 등을 떠올리지 않았으려나? 비슷한 시기, 탈레스 외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내놓고자 했다. 누군가는 그 근원 물질을 공기라고 했으며, 불이나 흙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가 되자 다양한 철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엠페도클레스가 그 주인공. 그는 여러 철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모든 물질이 물, 불, 흙, 공기라는 4가지 원소의 합성물이라고 주장했다. 사물이란 네 가지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물들은 대체 어떻게 각각의 ‘비율’을 갖게 된 걸까? 엠페도클레스는 네 가지 원소를 묶어주는 ‘미움’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원소들은 때로는 미워하여 서로를 밀어내고, 또 때로는 사랑하여 서로를 당긴다. 이 두 가지 작용으로 말미암아 각각의 사물은 서로 다른 원소 비율을 갖게 되며,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4원소를 묶는 힘, 사랑?!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과연 그들은 지구를 구했을까? 네 개의 원소 기둥을 구해 신전으로 온 주인공 일행은 각 기둥을 제 위치에 배치한다. 그리고 각각에 맞는 원소를 구해 기둥을 활성화시킨다. 흙의 기둥에는 모래를 뿌리고, 공기의 기둥에는 입김을 불고, 물의 기둥에는 땀을 짜 올리고, 불의 기둥에는 조심스레 성냥불을 켠 거다. 자, 이제 4개의 원소가 모두 준비되었다. 마지막 제5원소는?
그 순간,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할 릴루는 일행의 요청을 거부한다.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며 전쟁이나 폭력 등 추악한 역사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구를 구해야 할 이유나 당위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릴루의 혼란한 표정을 본 코벤은 대답한다.
하지만 아직도 구할 가치가 있는 게 많아.
그리곤 키스한다. 제5원소는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원소를 묶는 힘,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어떤가? 누군가는 이 결론이 ‘유치하다’며 몸서리치지만, 난 이 결론이 꽤나 마음에 든다. 때때로 SF는 그럴듯하고 합리적인 마무리보다 어설프고 인간미 넘치는 결론이 더 현실적인 순간도 많은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엠페도클레스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그럴듯하게 이야기가 연결되기도 하지 않나.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