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 서은영 Cast : 김고운, 김정현 외 Philosopher : 프리드리히 니체 Lines :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초인이래.”
한바탕 싸움을 벌인 대가로 4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도현. 구립 도서관에서 봉사시간을 채우던 중 매일 책을 빌리는 수현을 만난다. 수현은 이 도서관에서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빌린 대단한 독서광. 자신과는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수현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 도현은 자석에 이끌리듯 수현 앞으로 다가간다.
최도현, 최수현. 이름이 비슷하네. 우리 진짜 운명인가?
체조를 하는 도현과 책을 읽는 수현의 ‘닮음’은 두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서 오는 듯하다. 한때 유명 배우였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려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는 도현, 그리고 사소한 다툼으로 멀어진 절친의 자살 후 그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수현. 두 청춘은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초인”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아픔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초인’이 될 수 있을까?
나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초인’이라는 말만큼 많이 인용되고, 또 다양하게 해석되는 철학의 단어가 있을까. 철학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니체의 ‘초인’이라는 개념에 매력을 느끼고, 또 각자 나름의 의미를 덧붙이는 과정을 거치곤 한다.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김고운(현재는 채서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은 인터뷰를 통해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 내가 좋고 행복한 것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슬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초인”이라 답했고,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서은영 감독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초인을 설명한다. 같은 영화를 만든 배우와 감독조차 초인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던 것. 대체 ‘초인’은 어떤 개념이고, 또 어떤 존재일까?
그 단서는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찾아보자. 주인공의 이름은 차라투스트라. 그는 서른 살이 되는 해에 산으로 들어가 10년간 깨달음의 기쁨을 누렸지만, 자신이 얻은 지혜를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결심하고 하산한다. 산을 내려오던 중 그는 어느 늙은 은둔자를 만나고, 왜 구태여 스스로 얻은 지혜를 나누려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람들은 어차피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테고, 그의 노력은 결국 헛수고가 될 것이라며 말이다. 그에게 차라투스트라는 당신은 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되묻는다. ‘노래하고, 울고 웃으며, 신을 찬양한다’는 대답을 들은 차라투스트라. 그는 그 말을 듣곤 크게 웃으며 산을 내려온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마을에 도착한 차라투스트라. 그는 막 줄타기를 시작하려는 곡예사의 구경꾼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친다. “나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것들은 그들 이상의 것을 창조해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며 사람을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물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일리 없다. 그저 줄타기에 앞서 흥을 돋우는 광대로 여길 뿐.
신, 아니 낡은 가치는 죽었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정말 광대놀음에 불과할까? 그의 말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선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유명한 문장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이란 우리가 기도를 올리는 신을 포함해 인류가 떠받드는 다양한 가치를 모두 이야기하는 표현이다. 낡은 도덕과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서양문화를 오랜 기간 지배한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세계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이런 모든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의 가치 속에서 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초인은 이런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초인이라는 말은 ‘넘어선(über)’과 ‘사람(mensch)’의 합성어인 위버멘쉬(Übermensch)의 번역어이다. 물론 그렇다고 초인이 슈퍼맨처럼 인간 아닌, 혹은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 초인은 니체가 신이 죽은 세계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자세, 즉 낡은 가치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이를 통해 성장하려는 자세를 통해 거듭난 존재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한 존재이지 인간과 다른 존재는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초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럼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자신들이 바라는 존재, 즉 초인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두 사람은 꽤나 아프다. 자신을 요양원에 모시려는 사실을 알게 된 도현의 엄마는 자살을 기도하고, 수현은 자살한 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창고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신에게 남겨진 쪽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의 나타샤 세영아, 미안해. 보고싶어..
그래, 사실 수현이란 이름조차 죽은 친구의 것이었다. 부서지는 청춘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가늠하는 일은, 어쩌면 그조차 그들을 다시금 부서뜨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두 사람 모두 영화가 끝날 무렵 ‘제 삶을 조금은 더 긍정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사회봉사 시간을 모두 채운 도현은 다시 체조선수의 삶으로 돌아가고, 오랜 기간 아팠던 엄마와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수현은 자신의 본명이 민세영임을 도현에게 고백하며,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몽골로 떠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2000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또 서로를 응원하지.
"도현아, 너의 첫 여행은 이곳(몽골)으로 정해.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재밌게 달리자."
세영아, 언제 돌아올거야? 빨리 와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두 사람은 앞으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그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두 청춘에게 초인이란,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