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 본질에 닿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사르트르

by 이준형
Director : 압둘라티프 케시시
Cast :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레아 세이두 외
Philosopher : 장 폴 사르트르
Lines :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는 거야. 태어나자마자 존재는 있지만 본질은 행동으로 만들어 가는 거지. 그래서 각자 책임이 막중해.”


“난 여자고, 이건 내 이야기이다. 내게 관심을 보인 남자 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저절로 눈이 그에게로 끌렸다. 바라보는 것 자체가 행복인 줄 알지도 못한 채. (중략) 첫사랑은 이처럼 순진하게 시작되나 보다. 너무 달콤하기에 잘 보일 욕망마저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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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학생들이 어느 소설의 한 구절을 낭독한다. 책의 이름은 <마리안의 일생>. 18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드 마리보에 의해 쓰여진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첫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사랑의 설렘, 어설픔, 당혹스러움을 말이다. 누군가는 이를 주의 깊게 읽고, 누군가는 키득거리며, 또 누군가는 무관심하다.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다는 게 뭘까?


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아이들의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그래 그건 의미를 알아도, 알지 못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일 테니까.


그 자리에 아델이 있다. 낭독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즈음, 마침 그녀 앞에 한 소년도 나타난다. 이제 아델은 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될 터. 그러나 그는 그녀를 설레게 하지 못한다. 그녀를 깨우는 것은 동성친구와의 충동적인 키스. 아델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렴풋이 깨닫지만, 친구는 자신의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며 그녀를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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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엔 성별이 없지. 누구든 찾아봐. 사랑하면 그만 행복하면 다인 거지. 진실한 사랑이면 내일 죽는다 한들 뭐 어때?” 이끌리듯 레즈비언 클럽에 간 아델은 엠마를 만난다. 엠마는 아델을 그리고, 또 말한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는 거야. 태어나자마자 존재는 있지만 본질은 행동으로 만들어 가는 거지. 그래서 각자 책임이 막중해.


아델은 엠마를 만나 자신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까. 또 이로 인해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 본질 없이 태어나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태어났고, 또 이로 인해 방황한다. 무엇도 정해진 게 없다. 일곱 살의 내가 남들 말하는 것처럼 ‘미운’ 아이가 될지 조숙한 ‘애어른’이 될지 알 수 없으며, 어느 순간 누구와 만나 어떤 식으로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로에서 무엇이 ‘됨’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다. 그 선택이 훗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가 그 삶을 긍정하게 될지 또는 후회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런 삶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물론 그보다는 아델을 유혹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엠마는 20세기 어느 철학자의 사상을 꺼내든다. 장 폴 사르트르.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말이다. 그의 철학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실존이란 ‘그저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나 ‘그저 있게’ 되고 마는 존재라는 의미다. 본질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말한다. 세상에 태어난 내가 미운 일곱 살이 될지, 스무 살에 만난 당신과 오래오래 행복할지를 내가 결정하고 이를 통해 남과는 다른 ‘나’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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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다른 사물과 비교할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간과 달리, 사물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가령 사무실에 두고 온 가위는 무언가를 ‘자르려는’ 목적을 가지고 생산되며, 책상 위에 놓인 컵은 액체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다. 즉,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 정해지는 존재인 것이다. 반면 인간은 본질이 규정되지 않고 세상에 던져진 탓에, 외려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그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실존인 본질에 앞서’는 존재다.


인간, 구토하다.

이런 사르트르의 철학은 그의 소설 <구토>를 통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주인공은 앙투안 로캉탱. 그는 오랜 여행을 마무리하고 3년 전부터 부빌에 거주 중이다. 프랑스 혁명 전후 혼란기의 어느 후작을 연구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인지 오래. 그는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으며,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줍다가 불쾌감(구토)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바다에 돌을 던지며 누구 돌이 얼마나 멀리 나가는지 내기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들처럼 바다에 돌을 던지려고 했다. 돌을 던지려던 순간 나는 멈추었고, 돌을 떨어뜨리고는 그곳을 떠났다.


구토는 계속된다. 문의 손잡이를 잡을 때, 카페에서 맥주컵을 쥘 때, 땅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주울 때,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을 볼 때, 카페 종업원의 벨트가 셔츠의 주름 속으로 보일듯 말듯 할 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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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인가. 소설 속 구토는 인간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본래 모습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낯설고 부조리한 감정이다. 로캉탱은 본질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즉 인간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그 자유를 바탕으로 자기와 자기 아닌 존재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반 수면상태’에 빠진 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삶에 안주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자기와 자기 아닌 존재의 본래 모습에 주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로캉탱도 마찬가지. 그런 탓에 세계의 존재들이 지닌 본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구토증세를 보이고 마는 것이다.


아델, 자신만의 재즈를 시작하다

로캉탱이 구토 증세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낡은 재즈 레코드의 음악을 듣는 것. 재즈 음악의 모든 요소는 필연성의 법칙 아래 있다. 존재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냥 거기 있는 채’로 우연성의 지배를 받는 존재들과는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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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델의 재즈는 무엇인가? 그 ‘무엇’을 알아보기에 앞서 우리는 그녀의 첫사랑의 결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랑의 열병이 사그라든 자리, 엠마는 “이렇게 너랑 있는 게 내 행복의 방식”이라며 그녀에게 온몸 기대는 아델의 삶을 견디기 어렵다. 그리고 고독에 아델을 내던진 채 그 절망의 결과를 온전히 그녀에게 묻는다. 아델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실패가 곧 아델의 실패를 의미하거나, 그녀의 지나온 삶이 ‘반 수면상태’에 불과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델은 로캉탱과는 다른 존재다.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자각한 순간부터 단 한번도 그 욕망의 반대편으로 뒤돌아선 적이 없다. 다소 서툴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그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내던진다. 그녀의 재즈는 다른 무엇 아닌 그녀 그 자체이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왔다. 당신의 재즈는 무엇인가. 당신을 그 재즈를 찾기 위해 분투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그 재즈를 위해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던지고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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