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배우는 철학 유치원
1469년 어느 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정치 철학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태어났습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마키아벨리죠. 당시 이탈리아는 밀라노 공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로마 교황청, 나폴리 왕국, 피렌체 공화국이라는 다섯 개의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30여 개의 작은 소국들이 통합과 분열을 반복하던 시기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가정환경이 그리 여유롭지는 못했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덕에 마키아벨리는 어릴 때부터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인문학을 공부했고, 일곱살이 될 무렵에는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죠. 이런 조기교육 덕분인지 마키아벨리는 젊은 나이부터 주목받는 인재로 성장했습니다. 29살이 되던 해부터 피렌체 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외교사절’의 역할을 했을 정도죠.
피렌체에서 외교술이 중요한 자질로 여겨진 이유는 내세울만한 영토나 군사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상태의 외교술은 한계가 명확한 법. 피렌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피사 탈환 전쟁이었죠. 당시 피렌체는 독립을 선언한 항구 도시 피사를 되찾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고 프랑스에 지원군을 요청한 상황이었습니다. 내륙의 상업 도시였던 피렌체의 입장에서는 경제활동을 위해 항구도시인 피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죠.
국가의 흥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 하지만 용병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고도 퇴각을 선택합니다.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시가지 전투를 포기한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마키아벨리는 군비 강화, 그리고 힘에 기반한 집권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알려지죠.
마키아벨리가 외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피렌체의 정치지형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1512년, 프랑스 군대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끄는 신성 동맹의 군대에 밀려 피렌체에서 철수하게 되었는데요. 프랑스의 지원을 받던 피렌체 공화정 또한 힘을 잃고, 그 대신 교황의 지원을 받는 메디치 가가 복귀하게 되었죠. 마키아벨리 또한 이 시기에 공직을 잃고 쫓겨나게 되었으며,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한 채 작은 농장에서 칩거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술 활동에 매진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철학적 정수로 불리는 <군주론>을 비롯해 <로마사론>, <만드라골라> 등을 작성하게 됩니다. 이후 메디치가의 신임을 얻은 마키아벨리는 다시 업무에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메디치 가의 후원자인 교황이 다시 몰락하는 바람에 피렌체가 공화제로 복귀하게 되었죠. 결국 그는 정계복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58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대표작 <군주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그는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을 통해 인민의 삶을 개선하고 새로운 국가를 성립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책 속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우선 군주국의 종류를 분류합니다. 먼저 군주의 가문에 의해 몇 대에 걸쳐 통치돼 온 세습 군주국이 있으며, 완전히 새로 탄생한 신생 군주국과 기존의 세습 군주국에 의해 정복되어 편입된 복합 국주국이 있죠. 이중 세습 군주국은 신생 군주국에 비해 통치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적습니다. 오랫동안 지켜온 관습을 깨뜨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해서만 적절히 대처해도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생 군주국 또는 두 개의 군주국이 합쳐져 생긴 복합 군주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고 군주를 갈아치우려 하며, 신생군주는 군대 또는 가해 행위를 통해 새로운 백성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군주국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병합된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들을 철저히 파멸시키거나, 그 나라에 직접 살며 통치하거나, 자신들 고유의 법에 따라 살도록 허용하면서 공물을 바치게 하고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과두정부를 수립하라고 말하죠. 또한 신생 군주국의 경우에도 자신의 능력으로 군주가 된 경우, 다른 세력의 군대와 행운을 기반으로 군주가 된 경우, 부정한 방법으로 군주가 된 경우 등이 있으며, 각각의 경우에 따라 들어가는 노력과 통치 원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죠.
마키아벨리는 모든 국가의 주요한 토대로 ‘법률’과 ‘군대’를 말합니다. 그리고 훌륭한 군대가 없다면 훌륭한 법률을 갖출 수 없으며, 훌륭한 군대가 있는 곳에는 훌륭한 법률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잘 조직된 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군주는 전쟁과 관련된 전략 수립 및 군사훈련 외에는 그 어떤 일이든 목표로 삼거나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며 또 연구해서도 안 됩니다. 전쟁과 관련된 것이야말로 통치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유일한 기술이기 때문이죠. 무력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어떤 공평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언제나 전쟁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며, 전시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더욱 많은 준비를 해두어야만 합니다.
더불어 군주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색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며, 군대와 함께 있거나 많은 병력을 지휘하고 있을 때에는 잔혹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죠. 함정을 알아차리는 여우의 꾀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사자의 성품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들을 언제나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자신의 태도 및 성품을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법률과 제도를 만들고, 군대를 양성해야 하며, 용기와 희망을 가져야 하죠.
마키아벨리가 논한 바람직한 정치적 행위의 종류는 당대 많은 사람들이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악의 교사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근세 시대 내내 서양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순히 이상적인 정치 혹은 지도체제가 아닌 현실에 발 디딘 정치사상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이가 바로 그, 16세기의 새로운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였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