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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형 Jan 17. 2022

'모방'은 나의 힘?!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읽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322)는 서양 철학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플라톤의 아래에서 약 20년간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요. 가족들은 그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아테네로 가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죠.


플라톤이 죽은 뒤, 2대 원장으로 자신이 아닌 플라톤의 조카가 임명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왕자 시절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7년 동안 가르쳤는데요. 이후 리케이온이라는 이름의 학원을 세우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철학을 포함한 수많은 분야를 연구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에 대해 우리는 그의 저작 <시학>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강의록 중 가장 널리 읽히고, 토론되는 이 작품은 미학적으로도 가장 흥미로운 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우리에게 쉽게 그 문을 열어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문체로 구성된 플라톤의 대화편과 달리, 이 책은 어렵고 딱딱한 산문체로 구성된데다가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들이 설명 하나 없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죠.


그럼 우선 시와 예술에 관한 그의 입장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시학>의 한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는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 이런 사실은 경험이 증명한다. 아주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신의 모습처럼 실물을 볼 때면 불쾌감만 주는 대상이라도 매우 정확하게 그려놓았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위 텍스트를 소위 ‘모방 기원론’이라 불리는 학설의 근원으로 파악합니다. 인간의 모방 능력이 미적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건데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 모방은 시는 물론 지식과 쾌감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은 스승 플라톤의 그것과 상충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플라톤이 우리가 세계에서 경험하는 감각적 아름다움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어떤 작품이 보다 더 탁월하며 그 ‘훌륭함’이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는 입장에 가깝기 때문이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집중한 예술 장르는 ‘시’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서정시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서사시, 희극 등 이야기가 존재하는 시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시를 ‘이야기’의 형식으로 주목하였으며, 이를 창작하는 시인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 청자,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죠.


아울러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비극, 서사시, 희극)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그가 보는 시의 세계는 오직 ‘가능성’의 세계일 뿐이며, 이를 보는 사람도 둘 사이를 결코 혼동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을 위해서는 시의 서사가 개연성 혹은 필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한 편의 시적 서사가 긴밀하고 짜임새 있는 구조를 지님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의 세계가 우리의 삶과 완전히 동일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가령 영화 <조커>를 생각해 보죠. 정신이 박약하며 유머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물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코미디언이 되기를 결심하고, 그런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 분개해 사람들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TV쇼에 출연하여 라이브 도중 그 쇼의 진행자를 죽이고, 이러한 행동들이 성난 군중들에 의해 추앙받기까지 하죠. 이게 정말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요?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기적인 통일성’은 시가 무조건적으로 사실적인 이야기를 그려야 하며, 빈틈의 여지가 없는 인과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시적 서사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긴밀성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줄거리의 진행 과정에서 ‘파국’ 등으로 불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작품의 긴장감은 배가 되고, 관객들은 더 큰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의 세계가 현실 세계를 모방한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일까요? 시인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 사실들’을 짚어 내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죠. 다시 말해, 시인은 우연적이며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개별 사실들로부터 벗어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삶 속에 담긴 어려움과 그 본질을 포착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적 서사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플라톤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에 주목하고, 이를 분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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