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형 Jul 11. 2021

금욕주의의 끝판왕 스토아 학파 이해하기

철학유치원 원전 읽기


기원전 3세기경, 아테네로 향하던 어느 배 한 척이 난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는 페니키아의 어느 직물상이 타고 있었죠. 직물상의 이름은 키티온의 제논. 배가 모조리 부서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된 제논은 아테네 골목을 정처 없이 배회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서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죠. 그의 눈에 들어온 책의 제목은 <소크라테스의 회상>. 책을 읽고 소크라테스의 삶에 크게 감명받은 제논은 이후 철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훗날 ‘배의 침몰이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사건이었다’라고 회상했죠.


꾸준한 공부와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상을 발전시킨 제논은 이윽고 로마제국 시기동안 많은 이의 각광을 받은 학파를 만듭니다. 이름은 스토아 학파. 구성원들이 주로 모임을 가진 장소인 ‘스토아 포이킬레’, 즉 벽화가 그려진 주랑의 명칭을 따서 지은 이름이었죠. 스토아 학파는 승승장구했습니다. 심지어 로마제국 시기의 5현제로 불리는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한평생 ‘스토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을 정도죠.


그럼 대체 스토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요? 스토아 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향한 접근방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죠. 이들이 강조한 것은 ‘금욕’을 통한 행복의 추구입니다. 인간이 지닌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통제해야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 개개인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에 걸쳐서도 이성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독창적인 신의 개념을 도입했는데요. 신을 자연 전체에 존재하는 이성적 실재라고 보는 범신론적 개념이 바로 그것이죠. 이들은 이러한 신이 세계 전반을 통제하고, 배열하며, 사건의 경과를 결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성을 통한 세계의 운용 원리를 ‘로고스(Logos)’라고 불렀죠.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스토아 학파는 크게 두 가지 근본적 요구를 제시합니다. 우선 첫 번째 요구는 행위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과감하게 일을 시작하고, 그 결단에 따라 행동하라고 조언합니다. 또한 괴로움을 참고, 쾌락을 버려야 하며, 일관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리고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생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독 속에 처박혀 있기보단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죠.


두 번째 요구는 아파테이아(Apatheia)에 대한 권고입니다. 아파테이아란 정념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첫 번째 요구의 전제조건인데요. 덕과 본성에 알맞은 행위를 하기 위해선 격정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우리는 정욕, 분노, 공포 등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동정이나 후회에 의해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 ‘세계가 무너져 떨어질지라도, 의연히 버티고 서 있는 자라면 그 파편만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이를 완전하게 실천하는 자를 현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모든 덕을 갖추고 있는 자이자, 항상 올바르게 행위하는 자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진정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이런 사람만이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주요 철학자들의 삶에서 굳이 공통된 부분을 찾는다면 아마도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창시자인 제논은 70살의 나이에 학당을 나서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발가락이 부러진 뒤 스스로 목을 졸라 목숨을 끊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클레안테스도 단식 끝에 굶어 죽었죠.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갖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휘둘리며 욕심부릴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남의 손에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후기 스토아학자인 세네카가 대표적이죠. 그는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는데요. 황제는 부임 초기만 해도 세네카를 신뢰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의심을 쌓아가다 결국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하죠. 사형집행관이 처음에 그의 동맥을 끊었지만 평소 먹은 것이 없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고, 이후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죽지 않아 결국 독약을 푼 뜨거운 물에 그를 집어넣었다고 하죠. 세네카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 물은 주피터 신의 거룩한 물’이라고 읊조렸다고 합니다.


스토아 학파의 사상은 서양 문명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감성이 아닌 ‘이성’을 중심으로 인간을 파악함으로써 서양 주류 철학의 줄기를 형성했으며, 모든 인간을 동일한 가치와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간주하는 ‘세계주의’를 주창하며 로마의 만민법 형성에도 도움을 줬죠. 유독 짧은 생을 살아간 이들이 많았지만 그 철학만큼은 길게 남은 공동체가 바로 스토아 학파였던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세 교부철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 이해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