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백조는 분명 있다

물러서지 않는 마음_칼 포퍼

by 이준형

<물러서지 않는 마음>에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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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계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하는 시도 중 일부는 틀렸다는 사실뿐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매번 짜증나는 경우가 하나 있다. 바로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말이다. 이 말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만큼 사람 의지를 효과적으로 꺾어버리는 것도 없다.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 그건 뭐 때문에 불편하더라.” 결국 다 안 된다는 통에 뭐라도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보려는 날에는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늘 같은 대답이 반복되는 거다. “아니, 그것도 내가 해봤는데..”


문제는 이들의 이런 조언 아닌 조언이 기대(?)보다 잘 틀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건 네 사정’이라 되뇌이며 호기롭게 도전해보지만, 결과는 그들의 경험과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유야 뻔하다. 어차피 사람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고, 기존 경쟁자들은 보기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내 열정과 인내심은 마치 부풀어오른 설탕 뽑기처럼 눈 깜짝할 사이 바싹 타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기분이 조금 나쁘더라도,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그들의 ‘경험’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편한 선택이 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경험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 된다”며 고개 내젓는 문제를 나 홀로 멋지게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다. 과연 “당신이 틀렸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도 올까?


사회주의에 빠지고, 사회주의를 버린 청년 포퍼

여기 우리에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20세기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다. 칼 포파는 1902년에 태어나 92년을 살다갔다. 말 그대로 20세기를 온전히 산 인물인 거다. 그가 92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수많은 지식인들은 “마지막 철학자가 떠났다”고 외쳤다. 그리고 포퍼는 그 외침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과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등 정치인은 물론, 노벨상 수상자인 피터 메더워와 자크 모노 등이 포퍼를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철학자’로 손꼽았을 정도로 말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중 한 명인 조지 소로스는 철학과 재학 시절 만난 지도교수 칼 포퍼의 가르침을 토대로 독자적인 투자이론을 정립했다. (우린 사실을 토대로 그저 철학자가 돈을 못 버는 거지,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론 덕분에 그는 여러 차례의 경기 불황에도 막대한 투자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소로스는 포퍼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스승의 대표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이름을 딴 ‘열린사회 재단’을 설립했을 정도다.


물론 그런다고 포퍼의 삶이 마냥 순탄하게만 흘러갔던 것은 아니다. 그가 태어난 1902년의 빈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그는 유대계 변호사로 꽤나 높은 명성과 부를 쌓은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그의 삶, 아니 전 세계 모든 이의 삶을 뒤바꾼 일이 일어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끔찍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의 가족이 누리던 부도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포퍼는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안정의 위험성을 깨달은 그는 한동안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포퍼는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지만, 그 열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유는 그가 활동하며 겪은 어느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포퍼는 투옥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어느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국은 폭력적인 수단을 써서 이를 진압하려 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당 지도부는 오히려 유혈 사태를 유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포퍼는 망설이지 않고 당을 탈당한다. 개인을 장기말처럼 사용하는 이념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해를 피해 떠난 철학자, 해결책을 찾으려 분투하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퍼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치르고, 결국 빈 대학에 입학한 거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마칠 무렵, 포퍼는 자신의 대표작인 <탐구의 논리>를 완성한다. 이 책은 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인슈타인, 러셀 등 당대 지식인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결국 포퍼는 이들의 추천을 받아 뉴질랜드의 캔터베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뉴질랜드로 떠나고 몇 년 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포퍼는 유태인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활했다. 덕분에 포퍼와 그의 가족은 안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전쟁에서 마냥 자유로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한 그의 친구와 친척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시시각각 들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찾고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써내려가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포퍼는 런던 경제 대학의 교수가 되어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후 오랜 기간 최고의 석학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전쟁기에는 전체주의 국가를, 냉전기에는 사회주의 국가를 비판하는 저서로 널리 읽혔으며, 독일어 버전으로만 나왔던 초기작 <탐구의 논리> 또한 영어판이 출간되며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

포퍼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가 문제 삼은 ’논리실증주의’라는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논리실증주의란 과학의 논리적 분석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말한다. 당대에 ‘지성의 집합소’로 불린 빈 서클에서 시작되었으며, 귀납주의와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 귀납주의와 검증가능성의 원리란 대체 무엇일까? 우선 귀납주의는 우리가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특정 내용을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우리가 그동한 발견한 백조가 모두 흰색이었다고 생각해보자. 귀납주의는 이 경우 다음에 관찰될 백조도 흰색일 거라고 가정한다. 만약 관찰 결과가 예상과 동일하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더불어 검증가능성의 원리는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거나 논리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주장 혹은 이론은 모두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말한다. 다시 말해, 모든 이론과 주장은 참 또는 거짓으로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거다.


두 원리에 관한 정의를 종합해서 논리실증주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유추해보자. 아마 두 개의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이론은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타탕성은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다’는 명제와 ‘그 관찰의 빈도 혹은 경험의 양이 많을수록 그 이론의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포퍼 이전의 연구자들은 귀납주의적 사고에 기반해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많이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과학’이자 ‘학문’의 과정이라고 믿었다. 즉, 가능한 많은 수의 백조를 관찰하고, 그 백조의 색이 모두 흰색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모든 백조가 흰색은 아니다

문제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확인할 때 생긴다. 검은색 백조가 발견된 거다. 이 경우 진술은 최소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바로 ‘모든 백조가 흰색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포퍼는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자신의 이론과 가설에 부합하는 사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잘못을 통해 배운다. 우리가 실재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과학은 발전한다.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가설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어떠한 가설이 관찰을 통해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그 가설은 포기되고 새로운 가설이 제안된다.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과정의 반복 또 반복. 그 지난한 과정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을 만나게 된다. ‘이론’이 정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이론도 영원히 ‘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후에 또다른 가설과 반론이 제기됨으로써 거짓임이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진리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가설과 반증을 통해 지식이 성장한다고 믿는 관점을 우리는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말한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점에 가장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포퍼가 보기에 인간은 잘나고 똑똑한 몇몇 사람 혹은 능력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특정 집단에 의해 '계몽’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상호간의 비판을 허용하고 다양한 반증과 가설을 제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이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며, 진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검은 백조를 찾아라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우리에게 “안 된다”고 말한 사람들의 ‘조언’은 이를테면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한 두 마리 백조를 본 사실만으로 모든 백조가 희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 다양한 사례를 경험하고, 살펴봄으로써 “네 목표는 달성 불가하다”는 조언을 하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서 무조건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앞서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아무리 많은 흰 백조를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백조가 희다’는 명제가 무조건 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참이되는 경우는 오직 하나,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될 때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검은 백조는 세상에 존재했다. 흰 백조보다 훨씬 적은 수이지만 당당하고 고고하게 말이다. 물론 검은 백조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흔히 존재하는 것도, 아무 곳에나 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는 1697년 네덜란드의 여행가 윌리엄 드 블라밍에 의해 호주의 어느 강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그리고 300여 년이 지난 지금, 검은 백조라는 말은 여전히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존재’ 혹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검은 백조를 찾으려는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의 걱정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해답은 늘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우리를 애타게 만들 것이다. 정해진 코스와 룰을 따르다 보면 흰 백조만 있다고 믿게 된 이들과 똑같은 벽에 부딪힐 것이며, 때때로 너무 지쳐 그들과 함께 “검은 백조는 없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이고 싶은 충동에 부딪힐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검은 백조를 발견한 순간, 기존의 모든 ‘답’은 무너지고 당신이 증명한 새로운 ‘명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물론 모두 포기하고 싶은 충동, 남들의 기준과 기호에 맞춰 맘 편히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견디는 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지만 말이다. 검은 백조는 분명 있다. 윤기나는 깃털을 꽁꽁 숨긴 채, 당신이 새로운 길을 뚫고 자신을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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