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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May 25. 2023

혼자이기에 보이는 것들

가다 서다 멈추다


집순이인 내가 요즘은 자주 밖에 나간다.올해는 집 마당에 핀 조팝나무 꽃도 시들 때가 돼서야 보았다. 집 앞에 나가 밖을 볼 여유조차 없이 살고 있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일 하느냐, 티도 안 나는 집 청소 하느냐, 애들 보느냐, 책 읽고 쓰고, 드라마도 보고, 멍도 때려야 하니 바쁘기는 했나 보다. 이렇게 집에서 세월이 어찌 가는지 종이로만 보다가 끝날 것 같아 아침마다 집을 나선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풍무 도서관.계단 곁 장판이 깔린 너른 바닥에 신발 벗고 다리 쭉 펴고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쉬었다 온다. 오전 시간에는 해도 크게 들지 않으면서 바로 앞 화장실에 정수기도 있고, 도서관 냄새와 사부작 덜덜덜. 책 넘기고 책 이동하는 카트 소리, 도서관 책 냄새들이 너무나 좋다. 커피 스틱에 자잘한 간식거리, 텀블러와 책들, 다이어리, 필통을 굳이 바리바리 싸 들고 와 이 곳에 펼쳐 놓는 이유이다.



엊그제는 모임이 있어 운양역에 내렸다. 역에서 카페로 가는 길에 만난 공원은 정말 숲이구나. 새소리, 나무냄새, 풀냄새에 홀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다가 길을 놓쳐 한참을 다시 돌아갔다. 초록 공기를 가슴에 가득 품었다.



요맘때 다 자란 초록 잎들과 새로 난 연두 아가 잎들이 함께 보이는데, 이 모습이 참 좋다. 매번 같아 보이는 나무들도 햇빛을 받고 비를 마시며 쑥쑥 자라고 있는 게 확연히 보여서. 나 잘 크고 있어요! 하며 온몸으로 말을 거는 것 같아서 그래, 잘 크고 있구나. 예쁘다 하고 대답해 본다. 가다 멈추어 자세히 보니, 초록 잎 위 빨간 무당벌레가 눈에 띈다. 자그만 게 어쩜 이리 오밀조밀 있을 거 다 있으면서 찬란히 존재를 빛낼까. 가만히 앉아 바라보았다.



가다 서다 멈추고. 하늘을 보며 소리에 집중해 본다. 자동차 소리, 새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하늘에 비행기 소리. 입을 다물고 귀를 여니 온갖 소리들이 다 들려온다. 전과 같은 풍경일진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 신기할 따름이다.


자발적 고립의 상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겁다. 나만의 시간이란 게 없이 함께, 같이에 맞추어 나를 당기고 조이고 늘리느라 내가 많이 놓치고 가는 것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좋은 사람들 잘 나누고 있다. 떨어져 있지만, 보고 싶은 이들에게 닿아있기에 지금 이 시간이 외롭지 않다. 오히려 혼자이기에 보이는 새로운 세상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멈춘 이 시간들이 참 좋다.


#일상 #쉼 #멈춤 #바라보기 #나만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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