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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지 Feb 27. 2024

시의적절한 만남_선릉과 정릉

빛과 힘이 되어주는 음악과 글

아이들을 재우며 오늘도 늦는 남편을 기다리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띠띠띠 도어록 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남은 시간이다. "왔어? 그래도 술 많이 안 먹고 잘 들어왔네." "뭐 언제는 많이 먹었나." 말이 없고 뚝한 사람. "얼른 씻고 자." 짧은 인사를 던지고 이불을 끌어 덮었다.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일어날까, 지금 일어날까' 늘 일은 끊이지 않지만, 월 말이면 각종 마감과 회의에 쫓기듯 살고 있다. 2월의 끝을 달리는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엄마로, 학생으로, 선생님으로, 관리인으로, 아내로, 모임 회원으로 분신술 하듯 여럿의 내가 쉬지 않고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일을 했지만, 잠이 드는 늦은 밤까지도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유, 일어나자.' 내일 갑작스러운 상담건들이 생겨 오늘 자료를 챙기고, 29일 2월의 마지막날까지 들어야 할 업무 강의와 학교 수업이 남아 있어 집중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자다 깨서 앉은 나는 그저 멍하게 있을 뿐. 으쌰, 입으로 소리를 내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음악이 듣고 싶다. 취향이 아닌 생존의 다급함으로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를 열었다. 시사, 뉴스, 다큐, 오래전부터 보던 예능, 피아노음악 등등 그간 내 족적을 따라 자동으로 화면이 채워진다.

어우, 싫어 머리 아파. 화면을 보자마자 내뱉은 한 마디. 음악으로 쉬고 싶었는데, 화면 가득 채운 세상의 입에도 담기 싫은 일들과 시시껄렁한 영상들이 싫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숨을 몰아 쉬고, 정수기에서 찬 물을 한 컵 따라 천천히 마셨다. 한결 나아졌지만, 괜찮지 않았다. 책이 필요하다. 책을 읽어야겠어. 할 일이 많더라도 우선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 오른쪽 뒤쪽 할 것 없이 책들이 쌓여 있는데,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찾는 그 책이 어딨더라. 가방에 넣었었는데.


"찾았다." 2월 동안 아끼며 찬찬히 읽고 있는 책, <선릉과 정릉>. 난다 출판사에서 올해 2024년 1년 동안 12명의 시인들과 시와 산문, 편지 등을 엮어 월마다 출간하는 형식의 재미난 프로젝트 시의적절 중 2월을 담당하는 책이다. 시는 어려운 것으로 치부하고 거리를 두었던 영역이었지만, 계간지에서 만난 나희덕 시인의 <샌드위치> 시를 읽으며 알고 싶어 졌고, 작년부터 동네 책방 모임에서 달에 권의 시집을 읽고 있다. 여전히 시는 모르겠고 어렵지만, 시집 권을 통째로 읽으며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통과하는 느낌이 생경하고 통한 듯 좋았다. 시모임에서 각자의 해석으로 다양하게 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도 좋았다. 한 편의 시는 이야기하는 사람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 무엇보다 권의 시집을 읽고,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시인은 나에게 '아는' 시인이 되는 나만의 친밀감이 생겨 좋았다.


<선릉과 정릉> 시의적절 시리즈는 시와 함께 편지와 에세이, 동시 등 작가의 여러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매일매일 부담 없이 숙제처럼 쫓기듯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읽어가는 책 읽기. 매서운 겨울을 보내고,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찰나를 찬찬히 산책하듯 오랜만에 여유를 찾았다.


내 몫의 빛을 전부 잃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있습니다. 실수로 그만 하수구 같은 데에 빠뜨렸을 수도 있고요. 으르고 협박하는 누군가에 순순히 내줬을 수도 있지요. 아니면 그저 스스로 깜깜하고 싶어, 어디 멀리 내 다 버리고 왔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빛을 잃고 난 몸안은 정말로 어둑어둑해져선, 느른해진 상태로 침대 위에 곧장 쓰러지고 말아요. <무드 인디고> p.32


고단했던 나의 오늘도 그러했다고. 쓰러지고 싶지만, 살아야 하기에 해내야 하기에 무거운 몸 일으켜 앉아 수혈처럼 받고 싶었던 책 수액. 나도 작가처럼 듀크 엘링턴의 <Ellington Indigos>를 틀어본다. 진한 재즈선율을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본다. 처음이구나. 이제까지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스쳐 지나가듯 들었지,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본 건 기억이 없구나. 3분의 재생 시간 동안 머릿속에 오랜 흑백 영화 같은 장면들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들며 스쳐간다. 그렇게 앉아서 일은 안 하고 책을 읽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 좋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오, 책 마지막 부록에 음악 리스트가 있다. 부록 음악들 (차례대로 귀에 넣으면 누군가의 한 시절이 완성됩니다.) 라고 적혀 있다. 29곡 리스트 중 루시드 폴 이름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낯설다. 이렇게 모르는 음악들이 다양하게 많았다니. 하나하나 검색해서 새로운 재생목록을 만들어 저장을 해놓았다. 목록 이름은 선릉과 정릉. 글을 쓰는 지금 하나하나씩 듣고 있는 중이다. 이 음악들은 누구의 한 시절에 닿을까. 버스를 타고 종점을 가던 작가의 플레이리스트였을까.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과 글이 많은데,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하고 타락하고 이기적이기만 한 것 같다. 이렇게 부러 찾아서 저장해서라도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고 싶다.


자신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통해 꿈을 꾸는 것이라던 듀크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빛을 잃어 흑백 화면이 되어버린, 소리가 나지 않던 내 현실에 타인의 꿈이 개입합니다. 음악을 듣는 일이란 이런 것 아닐까요. p34

 

빛을 잃고 힘도 잃었던 오늘에 전욱진 작가의 음악 리스트가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일상에 빛이 되어 주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만남. 이제 남은 음악을 들으며 일을 시작해볼까? 으쌰! 힘을 내본다.


선릉과 정릉 플레이 리스트


https://music.youtube.com/playlist?list=PLvFz8xfVCgo1Na9q96lN70S3doTIv2zCJ&si=Z0_VkJe0dKDqNK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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