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는데, 제자에게 DM이 왔습니다〉
작가님께.
지난주
인스타그램 DM이 하나 왔습니다.
프로필 사진은 바뀌어 있었고
이름도 영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메시지는 짧았습니다.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한국 들어왔어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끝이 식었습니다.
몇 년 전의 시간이
아주 조용하게
다시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프로필을 눌렀습니다.
결혼반지가 보였습니다.
남편과 찍은 사진,
신혼여행 사진.
그녀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두 번째 메시지가 왔습니다.
“교수님,
한 번쯤은 그때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이제 괜찮아요.”
작가님,
저는 마흔여덟입니다.
강단에 선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전임 교수는 아니지만
제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습니다.
칼럼을 쓰고
강연도 합니다.
SNS 팔로워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조심해야 한다고.
몇 년 전
저는 그 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한 수강생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학기가 끝난 뒤였습니다.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교수와 학생이 아니야.”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가장 비겁했습니다.
그녀는 스물다섯,
저는 마흔셋이었습니다.
처음은
진로 상담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원고 첨삭이었고
어느 날 저녁
합정의 작은 와인바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그녀는
제 강의를 오래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제 문장이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교수도,
남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남자였습니다.
관계는
6개월 정도 이어졌습니다.
아내는
눈치챘습니다.
어느 날 밤
휴대폰 화면에 뜬 그녀의 메시지를
아내가 보았습니다.
“오늘도 교수님 목소리 생각났어요.”
그날 밤
집안은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아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자야?”
저는
졸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저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관계는 끝났습니다.
제가 먼저 정리했습니다.
강의도 일부 내려놓았고
공적인 자리도 줄였습니다.
아내와는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받았고
아이들 때문에
그리고 오래 함께한 시간 때문에
조금씩 다시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DM이 왔습니다.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한국 들어왔어요.”
저는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우지도 못했습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여전히
강단에 서 있습니다.
학생들은
제 말을 받아 적습니다.
그런데
제 안의 어느 부분은
그 DM 하나로
다시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이 메시지는
다시 시작하자는 신호일까요.
아니면
이미 끝난 시간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인사일까요.
그리고 저는
답장을 해야 할까요.
-48세,
여전히 단정한 얼굴로 강의하는 남자
편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사연의 핵심은
그녀가 왜 DM을 보냈는가 보다
당신이 왜 다시 흔들리는가에 있다는 것.
당신은 이미 한 번 들켰고,
한 번 무너졌고,
한 번 정리했습니다.
강의도 줄였고,
공적인 자리도 내려놓았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DM은
단순히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가 아니라
당신이 정리했다고 믿었던 시간의 문을
다시 두드린 사건일 겁니다.
그녀는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그 말은
정말 괜찮아졌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겨우 마침표를 찍으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확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말의 진짜 뜻이 아닙니다.
그 한 문장에
왜 당신의 손끝이 식었는가입니다.
사람은
다시 사랑해서 흔들리기보다,
다시 기억되고 싶어서 흔들릴 때가 더 많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그 시간은 정말 끝난 건가.”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남아 있는 사람인가.”
그 DM은
꼭 “다시 시작하자”는 신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요”라는
늦은 질문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건
답장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그 답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먼저 보는 일입니다.
그녀를 위한 답장입니까.
당신 자신을 위한 답장입니까.
아니면
이미 한 번 위험해졌던 욕망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입니까.
그리고 하나 더.
당신은
단지 한 남자이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강단에 서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책임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
당신은 이미 한 번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질문은
“답장해도 되나요?”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요?”에 더 가깝습니다.
끝난 관계는
연락이 끊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열렸을 때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끝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수와 제자였던 관계.
이미 한 번 들켰고,
정리했고,
가정은 유지 중입니다.
몇 년 뒤,
그녀는 결혼했고
“이제 괜찮다”며 DM을 보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답장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다.
2. 짧게 인사만 한다. 정말 마지막 정리로.
3. 완전히 차단한다. 다시 흔들릴 이유를 없앤다.
4. 한 번 만나서라도 진짜로 끝낸다.
이 DM은
예의일까요.
미련일까요.
아니면 자기 삶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확인일까요.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영향력 안에 있던 사람과 관계를 맺는 순간,
그 감정은 어디서부터 위험해질까요.
사랑에서 일까요.
침묵에서 일까요.
아니면
스스로 합리화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일까요.
이번 이야기는
사랑보다
책임과 위치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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