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이의 밤토키

비 오는 날, 밤토키가 되는 순간

by 유혜성


<비 오는 날, 밤토키가 되는 순간>


밤토키 연작 7 : 고독을 허락하는 사랑

띠링.


알림이 울렸다.


딸기.

체리.

샤인머스캣.


“이게 뭐야?”


“근처 마트에서 주문했어.”


제이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딸기 먹고 싶다며.

체리랑 샤인머스캣도 좋아한다고 했고.”


“나 집에 없는데.”


“문 앞에 두라고 했어.

신선할 때 먹어.”


제이는 안다.


토랑이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 순간을.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토랑이는 조금 조용해진다.


우산을 쓰지 않고

잠깐 빗속을 걷기도 하고,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오래 듣는다.


말하지 못한 기억들이

비를 타고 돌아오는 날.


제이는 묻지 않는다.


대신 남겨둔다.


과일과

짧은 메시지와

돌아와도 괜찮은 온기.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라는 걸


그는 안다.



그날 밤.


비를 흠뻑 맞고 돌아온 토랑이를

제이는 말없이 끌어안았다.


젖은 어깨를 감싸고,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눌러 닦고,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을

천천히 흘렸다.


“또 감기 걸리면 어떡해.”


“괜찮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밤이었다.


드라이기 바람이 멈추자

토랑이는 가만히 제이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낮의 것이 아니었다.


“제이도 외로울 때 있잖아.”


“있지.”


“그럴 땐… 떠나도 돼.”


잠깐의 침묵.


토랑이는 조용히 말했다.


“난 기다릴 수 있어.”


제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낮게 말했다.


“나는 안 떠나.”


“왜.”


제이는 잠깐 토랑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네 비까지 다 좋아하니까.”


비 오는 날의 너도.


말 없는 너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너도.


그 말에


토랑이의 숨이

천천히 무너졌다.


그 순간,


토랑이는

밤토키가 되었다.


단단하게 세워 두었던 마음이

조용히 풀렸다.


제이의 셔츠를 잡은 손이

조금 더 깊어졌다.



제이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이마가 닿고

숨이 섞였다.


입술이 닿기 전의 짧은 정적.


비가 창을 세게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술이 겹쳐졌다.


묻지 않듯.


확인하듯.


오늘은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차가웠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졌다.


젖은 머리에서

비 냄새가 났고


그 사이로

서로의 체온이 번졌다.


토랑이는


제이의 품 안으로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


버텨내지 않아도 되는 품.


그의 손이

등을 따라 천천히 내려올 때마다


숨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안겨 있고 싶었다.



비는 밖에서 오래 내렸고


안쪽에서는


온기가

더 오래 머물렀다.


이불 끝이

조금 구겨지고


체온이

서로를 기억했다.


토랑이는


제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심장이 닿는 위치에서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처음으로

확신했다.



창문을 타고 흐르던 물줄기가

천천히 느려질 즈음,


비는 잦아들었고

방 안에는


모락모락한 온기만

남아 있었다.


밤이 지나간 자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여운이

조용히 번져 있었다.


이불은 조금 구겨져 있었고,

서로의 체온이

아직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아침이 올 때까지


두 사람은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젖은 기억도,

말하지 못한 상처도,


그날 밤에는


천천히

마르고 있었다.

토랑이는 알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낮이 아니라


그 사람의

비 오는 밤까지


받아주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밤을

함께 건너는 일이라는 걸.


토랑이는

제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심장이 닿는 자리에서


자신이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비 오는 날,


낮에도


밤토키가 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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