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책은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대구시 달서구의 결혼 장려 정책이란 한심함.

by 수수

달서구는 “청년들의 건전한 만남을 통해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 특구라 선포하고 세금을 들여서 각종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행사들을 하고 있다. 문제 제기를 계속 받고 있는데, 몇 년째 변함없이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대책이지 않은 대책이란 이름 속에는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속셈이 있다. 이렇게 하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가? 결혼이 여전히 하나뿐인 답인가? 지금과 같은 결혼 제도는 무슨 문제가 있는가. 달서구의 ‘결혼장려지원 조례’는 어처구니가 없다. 또 추진위를 꾸려 한다는 것이 연애 코치에게 배우는 연애 전략, 가면무도회 커플매칭, 결혼 특강, 결혼원정대 구성, 결혼 친화 공원 조성, 결혼장려사업 협약 등이 있는데 정말 가관이다.


사람들이 모두 결혼이란 것을 하지 않는 사회는 그저 결혼이 절대적 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결혼이 줄어드는 사회일 뿐이다. 그럼에도 달서구나 이 사회가 결혼을 외치며 매달리는 건 결국 저출산 문제 때문이다. 재산인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안달 나서 여기저기 불안한 청년들의 삶을 위한 대책이라고 가져오는 것들이 시골로 오면 취업시켜주고 결혼시켜줄게, 따위나 결혼 특구 같은 소리를 하고있는 것. 달서구는 비혼이나 결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결혼을 아직 경험하지 않아서이고, 결혼한 경우 출산율이 높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출산장려 정책으로 결혼장려 정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 개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런 식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선택이기도 하면서 그것이 진행될 때 경력 단절이나 해고, 삶의 위협이 되지 않는 조건들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때 ‘가임기 여성 출산 지도’ 따위나 만들며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려 했던 것이나 결혼을 장려해서 결혼하면 결국 아이 낳을 거라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존중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면 그 뒤의 여러 가지로 들이닥치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그 뒤는 모두 개인에게 전가되는 것 아닌가. 여전히 여성의 몸은 언젠가 기필코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해야 하는 존재로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이유와 필요로 그 선택을 할 것이다. 필요한 초점은 사람 소개해주고 결혼하면 주택 대출 싸게 해주거나 결혼하며 얼마 줄게, 따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불안한 삶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대책이 만들어진다 해도, 너무나 당연하게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결혼 아닌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그게 이상한 사회가 아니라 일상이 된 사회인 것이다. 그저 결혼이 줄어든 사회에, 출산율이 줄어든 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달서구의 정책은 이성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가진 그 자체로 차별적인 정책이다. 만약 미팅 자리에 내가 가서 여성 파트너를 찾는다면 달서구는 어떻게 할까?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사람이나 레즈비언, 논바이너리 정체성의 사람과는 어떻게 할까? 그리고 그들이 결혼을 하면 달서구는 지원금을 주고, 혜택을 줄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현 사회의 결혼 제도는 주민등록증 남성과 여성이 부여받은 번호가 1:1로 할 수 있으니까. 현재 결혼 제도 자체가 많은 사람들을 선 밖으로 비정상이라 낙인찍고 밀려나게 하는데, 그것을 바꾸지 않은 채로 결혼장려나 출산장려는 이미 그 자체로 문제적이고, 차별적이다.


안정된 삶은, 불안하지 않고 안전한 삶은 결혼과 출산에서 오지 않는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 여건을 바꾸지 않고서는, 임신 출산 육아 앞에 선 여성이 쉽게 해고되는 조건이 바뀌지 않고서는, 육아휴직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독박 육아가 일상이 되는 사회가 바뀌지 않고서는, 이성애 정상 이데올로기가 깨지지 않고서는, 여성이란 이유로 죽임당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한낱 결혼과 출산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그 한심한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삶은 모양은 하나의 모양이지 않다. 우리는 단일하지 않고, 단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것은 더는 우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혼하라고 억지 정책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제적인 그 결혼 제도를 해체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하나 없는 나라에서, 생활동반자법도 없는 나라에서, 동성혼 법제화는커녕 혐오차별이 판치는 나라에서 결혼과 출산 이야기는 더는 내/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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