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쓰말사_<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가득 찬 3년이 된 모임. 이번달 책은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우리를 대변하는 듯한 문장들이 곳곳에 있던 책.
- 우리의 우정은 어떻게 끝나고 변하고 지속될까.
“조심히 가고 집에 가면 연락해.” 이 말이 가진 안전에 대한 바람과 의미에 대해 나는 여러 날을 곰곰이 생각했다. 2016년 강남역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 이를 기리는 집회를 하고 친구들과 헤어질 때, 나는 여성 친구들에게 그 말을 건넸었다. 그리고 그때 나의 이 버릇 같은 말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도 서로의 안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책 제목은 별다른 부가 설명이 없어도 너무나 충분히 이해되고, 가슴에 와 닿았다.
어렸을 때부터 대부분 여성 친구들과 친밀한 우정을 나눴던 나는 언제부터 여성들이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을 정답이라 생각한 여자들 사이에서 나는 힘들었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그것이,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한 자들은 누구인가. 왜 그들은 숨고 서로의 앞에 선 여성들끼리 서로를 조롱하고 미워했던 걸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도로 외로운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엄마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과 한 공간에서 일했다. 나는 왜 여자들이랑 있는 게 어렵다고 생각한 건 아마 이때부터일까? 생각해보았다. 자신에게 할당된 일의 분량과 성과밖에 몰랐던 사람들 속에 이제 세상에 나온 초보자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말야, 그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자기의 이름을 적어 검사 물품을 제출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은 어땠을까. 온전히 책임을 져야 했던 임금노동자들. 하루종일 일하면서도 반찬값이나 벌려고 하는 거라며 자신을 축소 시킨 그 여자들. 그 여자들이 하는 고된 일이 별 것 아니라는 건 대체 누가 만들었나.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저자는 책에서 사랑과 꽃에 너무 빠져있는 것 같은 여자들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아까웠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나도 사랑에 빠져 괴로웠을 때조차 약해 보이기 싫었고, 행복에 대해 원하지만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움받을 만한 여성들을 미워하거나 기피 하며 살아온 게 아니라 나도 세상에서 말하는 여성들의 편견의 시선으로 그 여성들을 미워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여성 다운 여성의 틀에 나를 갇히게 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다. 하지만 나는, 나와 친구들인 우리는 변화했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이런 고정관념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는 당당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서로를 돌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삶의 순간순간들에는 여성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수많은 긍정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매번 여성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해왔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여성들과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없던 시절이 없었다.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 먹이고, 함께 볼링을 치고, 휴가를 즐기는 모습들, 기숙사에서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시간,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한집에서 산 경험, 함께 여행을 가고, 때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같이 씻고 밥을 먹고 바느질을 하던 시간. 그것들은 모두 나의 일상을 촘촘히 채워왔고, 나는 그 속에서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사려 깊고 다정한 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여성 친구들과의 관계처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소중한 남성 친구들이 있다. 그렇기에 ‘어떤 남자도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조금 반박해보고 싶다. 많은 남성이 좋은 사람으로 관계 맺기를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이 없었던 건 사실일 것이다. 그들은 그런 관계 맺기에 대해 대체로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성이란 정체성을 특권인 양 갖지 않고 다채로운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맺기를 다시 배우고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랑하는 나의 남성 친구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나라는 사람을 더 온전하게 사랑하는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런 나를 더욱 돌보고, 자기 신뢰를 쌓아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내 곁에 머무르는 사랑해 마지않는 매력적인 여성 친구들 덕분이다. “나는 친구들이 나의 세계라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한다.”는 글처럼 그들은 나의 세계이고, 나의 세계를 더욱 멋들어지게 만들어주고 있다. 나의 단단함은 나 혼자서 잘나서 만든 것이 아니라 곁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샘솟게 하고, 나의 옹졸한 질투를 반성하게 한다. 마치 ‘저는 사랑이 유한다고 보지 않아요. 더 많은 사람을 좋아할수록, 그것도 열정적으로 좋아할수록 우리의 인간관계도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라는 문장이 내 가슴에서 나온 말인 것처럼 느껴지듯이.
물론 나의 우정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나의 우정과 관계의 사람들은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똑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는 없다. 함께하던 이들이 파트너가 생기고 결혼을 하거나 다른 구성원들과의 깊은 관계가 되거나 삶을 꾸리면 가장 소중하다 여긴 관계들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고,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 당장 몇 년 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로 남을 수도 있다. 또한,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모양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조금 멀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그것에 대처하는 마음을 평상시에도 갖기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런 순간이 온다면 슬프고 말 것이다. 아마 나는 펑펑 울지도 모른다. 우린 서로에게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같은 부족의 일원처럼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 달라지는 감정과 상황의 결을 잘 다독이고 나누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가 똑같지 않더라도, 그리고 몇 년 후 우리가 설령 지금과 똑같은 관계이지 않을지라도 지금 이곳에서의 우리를 너무 걱정하며 살진 말자. 너의 부족과 나의 부족은 서로의 곁에서 서로를 돌보아주고 보살피며 살아가자. 다가오는 불안이 싫다며 장담할 수 없는 먼 미래를 확정하듯 약속하지 말고, 오히려 오늘을 그리고 내일이란 하루하루에 마음을 쓰자, 고 오늘도 나는 우리의 우정과 그 속의 자신을 돌본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우정은 어떻게 끝나고 변하고 지속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오늘도 나는 계속해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