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잡한 친밀성으로 새로운 유대 만들기

김순남_가족을 구성할 권리

by 수수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가족은 어떻게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들어가며 부분인 시작 글부터 끝까지 밑줄 치기가 장난 아니게 펼쳐지며 읽기를 마친 책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너무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족-되기, 삶의 모양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과 제도는 협소한 모양만을 가족이라 칭하고 거기에서 벗어난 삶을 비정상의 삶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 책의 다양한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은 그 바깥에서 상호의존과 돌봄을 다양하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제도는 변화하지 않는가. 이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회에서 하나의 모습으로만 강제하고 이야기해온 ‘그 가족’과 무엇이 새로운 유대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강고한 정상성 규범 속에서 ‘미래 없음’의 존재들로 치부되고 배제되어 온 이들이 말하는 저항과 새로운 유대, 원본 없는 가족 만들기를 살펴본다. 또한 시민의 삶을 개별적인 이슈로 자꾸만 파편화시켜 서로를 연결짓기 어렵게 만드는 구도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연결의 의지가 권리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되고 그 토대 위에서 함께 그려가는 시민적 유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족을 사적 영역에 가둬왔던 지금까지의 세계에서 나아가 가족을 정치화하고 공적 영역으로 들어 올려 저항의 언어로서 사유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낯설고, 불온하고, 문란한 신체들이 공적 영역에 출현하고, 관계 맺고, 일상과 사회를 함께 점유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곧 불온한 정치의 현장이다.”라는 글처럼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누구에게든, 그리고 개별적 의제로 나뉘었던 공간의 존재들이 연대하며 공적 장에 출현하여 지금까지와 다른 ‘취약성’을 매개로 사회의 토대를 쌓고, 변화하자는 낯설고 다른 정치의 모습인 것이다.


‘가족다양성’을 넘어 기존의 가족/가족제도의 해체와 함께 누구나의 어떤 모양의 삶도 상상할 수 있고 안전할 수 있도록 그리는 ‘가족구성권’ 개념이 담는 새로운 유대에 대해 읽어가며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거 형태로 살아온 지난 삶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원가족과 살다 같이 하는 구성원들의 차이에 따라 같은 형태여도 관계의 모양이 매우 달랐던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기숙사 생활, 오랜 친구들과의 동거, 사촌과의 동거, 혼자서 원룸과 고시원에서 살았던 경험, 주거공동체에서 살았던 경험, 또 애인이 주거공동체의 일원이었던 경험, 원가족과 친구와 같이 살았던 경험, 같이 활동하던 이들과 살았던 경험 등 다양한 집과 방의 형태에서 다양한 주거와 동거 형태의 경험을 갖고 살았다. 작은 원룸 방에서부터 공용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주거공동체와 같은 집에 살지 않지만, 상호의존과 돌봄을 주고받는 지금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네트워크 가족이란 말이 나에게 오는 깊이와 중요성에 대해서 역시, 책을 읽으며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혼인평등권이나 생활동반자법이 너무 필요한 법이라 여기면서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법·제도라 여겨진 점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더욱 생각할 수 있었다. “같이 밥 먹고, 삶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이러는데 우리는 가족이지 않을까” 나에게는 그것이 파트너만을 뜻하지 않고, 일대일의 관계만을 뜻하지 않고, 원가족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기쁨과 생일과 같은 기념일과 일상을 오가며 살아가고, 서로에게 상주가 되어주자고 한 이들은 수 명의 친구들이다. 그들과 그런 관계 맺기를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일종의 가족-되기를 실천하고 있기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져서 나도 깨기 어려웠던 일대일의 관계와 독점의 관계가 흡수된 새로운 법·제도와는 조금 더 다른 시스템이 내게는 필요하다. 이성애규범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아닌 다른 형태의 ‘난잡한 친밀성’으로 상호의존과 돌봄의 실천과 새로운 가족-되기를 형성해 나가는 데 조금 더 안정과 안전한 삶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김순남, 오월의 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 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