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_관계의 말들
<관계의 말들> 작가 소개에는 “예고된 상처를 알면서도 함께 살자고 활짝 여는 모든 마음을” 존경한다는 글이 적혀있다. 글귀를 읽으며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아 열지 않는 울타리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매번 그것에 실패한다. 언제나 열거나 넓히거나 한다. 누군가 떠나고 이별에 아파하고 상처받는 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도, 이번 생은 망했구나, 하면서. 그러나 그때마다 나 역시 관계를 배우고 있는 거겠지. “점점 약해지고 아파오는 몸”을 가지며 살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줄 알고, 기꺼이 부르며 그렇게 관계 속에 살겠지. 그런 의미에서 “내 질문은, 만약 내게 질문이란 것이 있다면,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는가’였다.”는 문장을 껴안고 싶어지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가’의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는지를 생각한다는 건 나 역시 어떤 사람들로서 누군가의 곁에 있겠느냐를 사유하는 것일 테니까.
지금처럼 책을 읽는 꽤 많이 행위는 어렸을 때부터랄지, 평생을 걸쳐 만들어진 습관은 아니다. 이십 대 초반, 낯선 지역에서 지내며 지독하게 외로웠던 시간을 버텨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때 나는 책을 선택했었다. 책방에서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외로움 속에서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는 작가가 반가운 이유다. 과거의 나는 외로움 때문에 책을 선택했지만, 현재의 나는 책을 통해 나와 관계 맺기를 쌓아가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나의 외로움과도 관계 맺기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속 하나의 글은 책 기준 딱 한 페이지. 짧은 글이다. 짧은 분량의 글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넣어 마무리하는 것 역시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이 책의 한 페이지 분량의 글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책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관계의 말’로서.
작고 가벼운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하는 마음이 여러 번 만들어졌다가 머물렀다가 했다. 책 속에서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익숙한 웃음과 눈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제각각 너무 다르고 다채로워 뭉클한 이야기들을 만났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책 속에서 정확하게 내가 밑줄 그은 부분과 똑같은 글도 발견한다. 이를테면 “내가 지나쳤던 모든 사람과 사랑이, 실은 지나친 게 아니라 그렇게 내 안에 굳어져 내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라오에게 말하며 깨달았다.” 같이.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나오고 마주하고 만나왔던 사람들과 거기서 주고 받아온 애정과 다정들로 지금의 ‘나’를 이뤄 왔다. 사랑을 멈추지 않는 ‘나’로.
“나를 원하는 눈빛과 스킨십에 모든 의미를 기대는 일은 존재를 외주화하는 일이다. 침대 밖에 더 넓은 세계가 있다.” 이렇게 멋진 문장이라니! “폐기물 같은 사랑이어도 사랑 받아야” 존재 가치가 있다고 느꼈던 시절을 회피하거나 지우지 않고, “그랬던 시절이 있다고 적을 수 있는 지금”에 대해 안심하며 자신의 선명함을 보는 이의 글을 읽을 수 있어 그 시절의 그를 알지 못하지만, 뒤늦은 응원과 위로를 보내듯 기뻐진다. 버지니아 울프 일기에 쓰인 “나는 이제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문장을 읽으며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다정한 글을 써내고, 지나온 시간을 회피하거나 지우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그 역시,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함께 또 따로 잘 살기 위해서 서로 공생하고, 확장하며 나아가는 삶, 그리고 그 삶의 연결을 생각합니다. <관계의 말들>
<관계의 말들>, 홍승은,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