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_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책 서평을 쓸 때 몇 번 쓴 적 있는데, 책을 읽기 전 의식(?!)은 앞뒤 표지, 띠지, 날개, 목차, 만든 이들 정보를 다 읽고 본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책들이 있다. 그 의식(?!) 행위부터 눈물이 나게 하는 책. 이 책도 그랬다. 어떤 면에선 이 책의 이야기들이 지금 내가 늘 상 듣거나 하는 말일 텐데도, 그랬다.
“괜찮아요, 동성애자여도. 괜찮아요, 양성애자여도. 괜찮아요, 트랜스젠더여도. 괜찮아요, 무성애자여도. 괜찮아요, 논바이너리여도. 괜찮아요, 당신이 그 무엇이어도 괜찮아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물론 태생부터 ‘성별 교란자’ 그의 이야기를 킥킥대며 읽기도 했지만. 그리고 책을 읽는데 어쩜 이리 음성인식이 되는지 하하하. 그가 20대부터 만들어온 일의 시작들을 읽으면서 빚진 게 많다 싶었다. 20대 때 잡지 <버디>를 만들면서부터 계속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한다면 ‘한국의 노년 정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지금이 어떤가. 20대 때 생각했던 바람을 잊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에세이들은 풉 웃기기도 하지만, 가볍거나 재밌지만은 않다. 지금-여기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떤 상상을 같이 나누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그의 고민과 상상이 치열하게 담겨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보며 쓴 첫 에세이인 이 책을 보며 정말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어쩜 만들어온 게 이리 많은가요!!” 감탄과 같은 그 말 뒤엔 생각이 따라붙는다. 2023년 지금과 너무 다른, 정보도 무엇도 없거나 잘 없던 시절을 살던 이가 변화를 만들고 싶어서, 아니 그보단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서, 서로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차별로 가득찬 게 아니라 말이다. 그런 생각들... 속에 또 따라붙지. 아니 근데 이걸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하고 쓴다고요? 이런저런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며 읽게 되는, 마치 춤을 추듯이 리드미컬하게 읽게 되는 책. (한채윤 Q&A는 아니지만 그런 비스무리 해결도 되니 궁금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을 듯 하하)
“견디며 즐기는 삶” 활동가는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 그게 그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견딘다는 것을 안고 즐기는 것이 공존한다는 것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채윤이 말하는 ‘시기상조’의 우김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어떤 일을 하기에 아직 때가 이름’이 아니라 ‘서로가 돕는 시기. 평등 세상을 향해 서로 도와가며 나아가기 적당한 때’라고. 홍은전 작가 추천의 글처럼, 우리는 비를 같이 견뎌서 이 무지개를 만난 거니까!
+그나저나 그가 경험한 대전역 인근서 들은 “쉬다 가”는 숏컷 시절 나 역시 경험한 일이다. 대만에 갔을 때 번화가에서 만난 성중립 화장실을 한국에선 특별한 경우에만 만날 수 있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내가 숏컷 일 때 화장실을 가면 목소리를 내거나(사실 목소리를 내면 여자로 인식한다는 것도 너무 웃기지만), 친구와 같이 가거나.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벗어버리거나. 그러나 조금만 머리카락이 길어져도 남자예요? 묻는 게 없어지거나 현저히 줄어드는 경험들. 어떤 특정 모양을 특정한 이름에 집어넣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의 정답까지 알아서 내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춤을 추고 싸우는 이상한(퀴어한) 행위를 우린 계속해 나가겠지.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한채윤 에세이,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