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솔_아무튼, 친구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라니,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은 무언인가, 생각하며 (고스란히에서 만난) 양다솔의 <아무튼, 친구>를 손에 들었고, 읽었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삶에서 친구들이 중요한 나에게 <아무튼, 친구>라니! 크, 양다솔 작가의 선점(?!!)이 캬하- 하는 마음과 함께 이건 나에게 단박에-였던 제목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나에게도 친구란 영원불변의 요소라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시절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역시 언제나 늘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뭐 이건 다른 말이니까 이쯤..)
단박에- 란 말이 더 잘 들어맞은 조각처럼 내 생일날에 출간된 이 책은 막상 읽어보면 나와는 매우 다른 어린 시절과 서사를 지니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는 아무튼, ‘아무튼’ 시리즈에 ‘친구’를 택했고, 나는 거기에 빠져나갈 구멍 없이 반응한 사람이다.
“나의 이런 서슴없음은 이후로도 엄마를 비롯해 수많은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겉돌았고, 누굴 때리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던 내가 어린 시절 어딜 가나 문제아로 꼽혔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의 없음, 눈치 없음, 배려 없음, 개념 없음, 선 없음 혹은 싹수없음으로까지 이름 붙여진 어떤 것. 귀에 못이 박이도록 욕을 먹으면서도 나는 내가 어디가 그렇게 자기중심적인지 알지 못했다.”라는 문장의 어린 시절에 혼자인 게 끔찍이도 싫어서 친구에 열혈인 작가의 글을 읽다가 사실 살짝 질릴 뻔도 했으나, 이내 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난하고 어려웠던 시간을 살아내고, 지나오면서 친구들로 하여금 배우고 변화하고 알게 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일방적으로 가능할까. 그 역시 그의 친구들에게 그러한 존재였기에 서로가 지금을 목도하며 살아가는 거겠지.
매일 같이 만나거나 연락하거나 하다가 어느새 잘 만나지 않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서로의 삶의 순간을 그 순간순간 목격하는 일이 줄어들기도 하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이기도 할 텐데, 그 관계들이 한 시절이 지듯 지나가기도 하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이어지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혹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생각의 물꼬를 이어가는 것이 친구들과의 지금을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될 것. 우리의 눈부신 우정. 나의 눈부신 친구들. “아! 아무튼, 친구!”
<아무튼, 친구>, 양다솔,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