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_나의 덴마크 선생님
시골 책방 ‘하늘밭, 봄’에서 이 책을 만났다. 사두고 늘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두다가 한참이 지나 넘기기 시작한 책 <나의 덴마크 선생님>.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잠시 멈추며 울컥이는 마음을 바라보며 읽었다. 자주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좋았다.
이 책은 지리산의 대안학교 교사로 있다가 덴마크의 시민학교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로 간 저자가 보낸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덴마크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출신의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모인 IPC에서의 이야기와 저자의 고민과 생각들을 만나며 우리의 서로 다른 삶의 서사와 모양 속에서도 공감가고 위로되는 시간이었다. 책의 부제처럼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 독자에게도 잘 스며들어서. 모르던 세상의 이야기를 만나서 정말 좋았고 고마웠다. 좁은 나의 길이 다른 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누군가 어디선가 어떤 고민들을 안고 누군가들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오래오래 좋았다.
“우리는 서로 기대고 돌보며 산다” 평화나 평온이라는 것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지도 않지만, 그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경합의 과정이 일방에 의해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그런 과정도 그런 진행형도 서로 기대고 돌보는 과정 속에서 흐를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또 이곳에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며 살아야지.
<나의 덴마크 선생님: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러 의지하는 법 배우기>, 정혜선, 민음사
p8 나는 두 학교에서 나와 타인, 나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 기대고 돌보며 산다. 덴마크를 떠나 한국에 돌아온 지 5년이 된 지금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 앞에서 나를 지하는 것은 이러한 배움이다.
p31 덴마크 호이스콜레의 아침 모임은 한국 대안학교의 아침 모임과 다르지 않다. 약 한 세대 전 한국에서 대안학교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았고, 덴마크도 그중 하나였다. 이렇게 함께 모여 노래하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여는 것은 여러 선주민 문화에서 발견되는 인류 공통의 의식이다.
p35 초기 호이스콜레에서는 학생들의 노트 필기를 권장하지 않았다. 그룬트비가 호이스콜레 교육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육과정의 원형을 만든 크리스텐 콜(Christen Kold)은 필기를 안 하면 수업 시간에 들은 것을 모두 잊어버린다고 불평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땅에다 배수관을 묻고 나중에 묻힌 자리를 다시 찾으려면 그 자리에 표시를 해 놔야 해. 그런데 옥수수 씨앗을 심으면 따로 표시를 해 놓을 필요가 없어. 씨앗이 알아서 올라올 테니까. 수업 시간에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는 언젠가 필요할 때 바로 떠오를 거야"
p76 그것은 젊음이었다. 베를린에서 나는 기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과, 내 나라의 분단과,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유럽으로 모여든 중동의 젊은이들을 보았 다. 베를린은 제 상처를 숨기지 않은 채 두 팔을 한껏 벌려 그 모든 기억과 사람을 끌어안고 있다.
p85-86 “소렌, 어떻게 아우슈비츠에 가고 또 갈 수 있어요? 저는 인생에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해요. 감정적으로 감당할 자 신이 없어요"
”물론 몇 번을 가도 힘든 곳이야. 고통이 심하면 심했지 덜해지지 않아. 그래도 만약 가족들과 함께 폴란드를 가게 된다면,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우슈비츠에 또 갈 거야. 기억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야.“
p135-136 봄 학기가 끝나는 6월. 학생 대부분이 한 달 안에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함께 심은 딸기도 토마토도 블루베리 열매도 먹어 보지 못하겠지만, 그저 밭을 일구고 작물을 심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거트루드 선생님은 우리가 심은 작물의 열매를 다음 학기에 오는 다른 사람들이 먹게 될 것이라고,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역시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심어 놓은 것들의 혜택을 입고 있다고. 선생님은 학기가 끝나기 전 학에 발표회 시간에 학생들 모두를 밭으로 초대해서 테이프커팅도 하며 오프닝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봄 학기에만 임시로 일하는 율리 선생님은 이 밭에 계속 와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 다. 이 밭이 선생님들에게도 소중한 곳이란 걸 알았다.
p153-155 “과거 다른 나라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할 수 있는 정부가 자국 국민도 잘 대우할 거야. 한국인은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 록 다음 세대를 교육하길 바라. 그럴 때에야 한국과 일본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 이 일본을 방문했잖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게 속상하지 않아?"
“일본이 꼭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만큼 중요한 일인지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 부를 대표해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네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할 거야."
어느새인가 와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덴마크 친구가 끼어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다.
“사과란 말이야, 사과를 하는 쪽에게 상대방이 받아 줄 거라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한 일본인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너라면,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이 타인에게 저지 른 잘못에 대해서 사과할 수 있겠어?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덴마크 친구는 곰곰생각하더니 말했다.
“만약 나의 사과가 상대방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난 하겠어.”
p165 치유의 공간에서는 상처가 터져 나올 수 있다.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 치유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상처가 터져 나올 때마다 나의 상처 또한 움찔했다. 학생들과 내 상처는 서로 만나 깊은 가을 뱀사골 단풍처럼 활활 불타오르며 지 리산을 홀라당 태워 버릴 듯했다. 내게 치유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치유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대꾸에 친구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치유자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자기 자신이 치유되어야 했던 사람들이야."
p203 “있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아. 다만 네 곁의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렴. 우리 가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어."
p207 좀 더 큰 화분에 카랑코에를 옮겨 심고 보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당분간은 잎을 잘라 내지 않아도 괜찮고 화분 이 휘청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아직 야생에서 자랄 만큼의 힘이 없다면, 나를 큰 화분에 옮겨 심고 싶다고. 작은 화분에 맞추기 위해 내 꿈의 푸른 이파리들을 잘라 내고 싶지 않다고. 나는 이제 곧 마흔이 되겠지만, 좁은 생각과 관습에 갇히고 싶지 않다. 문득 한국에서 시달렸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깨끗하게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이곳에 온지 열 달째. 아무도 나에게 더 늦기 전에 결혼해서 애를 낳아 봐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니, 나는 결혼과 출산에 관심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
p224-225 덴마크는 경쟁이 심하지 않은 나라다.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누가 일등을 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보통 정도로만 해내면 만족하는 태도를 자랑으로 삼는다. 대신 누군가가 뒤에서 혼자 힘들어하거나 부당한 취급 을 받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1학기 베를린 여행 때 자꾸 만 뒤처지는 나를 기다려 주던 프레데릭과 자폐 스펙트럼 증상이 있는 일본 친구를 살펴던 아스트리드처럼.
p253-254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지금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태어나 자기만의 모습으로 자라난 이 나무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처럼, 내 삶 역시 초라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로로섬의 나무들은 부 러지지않고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 대지에 바짝 엎드려야 한다. 이 나무들이 IPC 매너하우스 옆에 웅장한 수형을 자 랑하며 서 있는 마로니에보다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없다.
p290 “기억해야 해. 네가 정치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너를 선택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