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_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by 수수


1930년대 여성의 분노를 그대로 이어받은, 그러니까 백신애 작가의 <광인수기>를 2022년 버전으로 써보자 했으나, 그것은 글이 아니라 분노만을 담길 것으로 생각된 최진영은 전혀 다른 글을 만들었다. 쓰려면 어디 못 쓰겠는가. 지금도 뉴스에선 수시로 만나는 소식들에 우리는 잠시만 시간을 갖고도 그 분노들을 얼마든지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시들고 메마른 나무에 물과 거름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뤄질 수 없는, 남들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시대에, 일찍 아이를 낳아 제 아들뻘인 소년 정규에게 열망을 갖게 된 여성 순희를 그린 <아름다운 노을>은 발표가 되고 어떤 반응이었을까. 어떤 욕지기를 얻었을까.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을 했던 작가의 손이라 나올 수 있었을 글이기도 하다. 최진영 작가는 <광인수기>를 지나 <아름다운 노을>을 이어받아 사랑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속 순희라는 여성과 정규라는 여성의 시작하는 사랑, 떨림이 만들어졌다. 1930년대 십 대의 정규는 이십 대의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취업준비생, 밤길이 두렵기도 한 여성 정규가 되었다. 1930년대 삼십 대의 순희는 평생 미술을 할 줄 알았지만, 가정폭력을 벗어 던지고 이혼을 한 후 공무원으로 딸을 부양하는 사십 대의 여성으로 재탄생하였다. 성별이 바뀐 것은 그에게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남성의 연애가 잘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물론 그들의 사랑 역시 세상엔 무수히 존재하겠으나, 남성과 여성의 로맨스인 줄 알았으나 피해와 가해가 된 일을 너무나 많이 겪은지라 그는 범죄가 아닌 순수히 로맨스를 만들고 싶었기에 사랑하는 여성들, 순희와 정규를 탄생시켰다.


1908년 영천에서 태어나, 1939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백신애 작가의 세 소설이 이 책에 담겨있다.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 모두 그 글과 그 글을 쓴 여성 작가 모두 손가락질받기 좋은 글이었을 듯싶다. 미친 여자, 결혼에 실패한 여자, 재혼해야 하지만 그 바깥의 사람 상대에게 마음을 뺏기는 여자, 그리고 결혼 그 자체가 아닌 신념을 갖는 여자. 여성이 신념을 가질 때, 세상은 얼마나 그 여성을 좋아하지 않고 탓하기 쉽던가. 세상은 얼마나 여성들을 쉽게 미친년 취급하고, 쌍년을 만들기 쉽던가. 1930년대, 백신애 작가의 소설 속 여성들은 지금 2023년에 보아도 역차별을 운운하고, 여성혐오를 일삼는 이들의 손과 입에 쉽게 오르며 평가받을 여성들이었다.


밤에 혼자 다니는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돌봄이 필요한 여성들을 기꺼이 제집으로 데려가는 여성들이 있는 세계에는 누군가 미친년이나 쌍년이 되지 않는, 아니 미친년과 쌍년이 되어도 상관없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장이 열릴 수 있다. 천천히, 오래오래, 빠르지 않고 변화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듯하여도. 강물이 잔잔하여도 멈춤 없이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이. 강물처럼 말하고, 강물처럼 안아주고, 사랑하는 여성들이 오늘도 이 세계에 있다.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사랑하며 있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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