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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ug 26. 2023

시의 마음과 기본소득의 마음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너무 좋았던,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마지막 날인 8월 26일 토요일 개별세션K CS33. 문학과 기본소득: 시의 마음과 기본소득의 마음(좌장: 류보선)


처음엔 프로그램을 보며 문학과 기본소득, ‘시의 마음’이라니ㅡ 이런 주제가 만들어졌다니 반가우면서도 어떻게 될까? 싶기도 했는데, 처음 발표하신 이문재 시인의 발표문을 들으면서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울컥했다.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에게 관심없는 삶이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가 선물이 되는 삶을 기본소득을 실현하자고 하는 그 과정부터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눈물을 차오르게 했다. 4일 수많은 세션들 중 개인적으로는 손에 꼽게 좋음이기도 했다.


-황금률과 ‘선물의 집’(이문재): 왜 시간 아니라 ‘시의 마음’인가. 창의성 관점에서는 사회성을 획득하는 과정은 이것이 사라지는 과정. 그러나 우리에게 시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잊거나 외면하거나 자각 못하는 것. 시의 마음의 핵심은 황금률. 땅에 뿌리내린 사회는 상호부조가 중요했고, 고루 가난했다. 고루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남이 나를 돕는 우애와 환대로 가능했다. 이후 국민은 납세자이자 선별적 복지 대상자가 되었다. 공정하지 않은 복지는 국민에게 열패감을 주었고,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이는 국가 폭력이다. 국가가 가져야할 것이 바로 시의 마음이다. 시의 마음을 국가와 국민이 가지는 순간, 상호부조의 모양으로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 실현의 길은 시의 길이라 민주주의 주권의 길이다. 기본소득 실현의 과정은 문명 변화의 과정과 같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하늘이 푸르름을 알게되고 바라보게 할 것이기에.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모든 경로는 나와 나, 나와 이웃, 나와 이방인, 자연, 과학기술과의 관계가 지금과 달라지는 과정이고 그래야 한다. 시의 마음을 선물하는 마음이라 생각해도 좋다.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는 삶. 기본소득은 삶이 존귀해지는 것은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하는 삶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복지(황시운): 기본소득의 정의를 알았을때 충격이었다. “일체의 자격심사 없이”란 정의는 여러 날 자격시험을 겪어야 했던 경험에서 가졌던 모멸감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하반신 마비를 갖게 되고, 장애를 갖게 되고, 이전과 달리 할 수 없어진 것들이 많아졌던 황시운 소설가는 수급대상에서 번번히 탈락되었고, 부모가 있다는 것이 부양자로 인식되어 의료비 지원에서도 탈락되었다. 정부가 판단하는 기준에서는 덜 가난한 축에 들어서 지원책에서 비껴난 존재이다. 장애지원을 일부 받는 ‘선별 복지’ 혜택자인 황시운 소설가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가난한가에 대해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일체의 자격심사 없는 기본소득에 대해 충격 받은 이유라 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복지가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라 했다. 더 무능하고 더 가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선별적 복지를 유지 받기 위한 방법이다.


내 생각엔 끊임없이 자격을 심사하고, 그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나의 무능을 드러내고 수치가 박히는 것은, 그 자체가 선별복지의 무능이라 여겨진다. 이것이 위계를 가르고, 인간 존엄을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이것이 ‘복지’인가? 나는 기본소득이 만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싸우는 수많은 의제들은 존엄과 평등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기본소득이 이를 위한 기존 전제가 될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선별 복지를 더 확대하라, 만이 아니라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실현하고, 필요한 안전망 시스템과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보편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맛있게 먹어라- 만인에게 기본소득을(김해자): 시골에 살면서, 쪼개진 선별 복지를 보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협소한 기준으로 갈라지는 복지 혜택은 사람들을 갈라지게 한다. 기본소득/보편적 복지는 사람의 마음을 밝게, 관계를 따뜻하게 하는 차원이라고도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맛있게 먹어라ㅡ는 시를 망송해주셨다) “만인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


-김수영과 기본소득(신형철): 기본소득을 말하기 어려운 이슈라 서론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가져온 글. 신형철 평론가는 기본소득을 말하면서 비웃음 당한 적이 있다고 했고, 그 경험으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김수영의 이혼취소 시를 가지고 쓴 글. 이 시가 김수영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 생각했고, 이것이 기본소득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선을 행하고자 한 빚보증이 잘못되어 더는 선이 아닌 행위가 되었던 그에게 온 시 구절 하나. 실현되지 않을 욕망은 아예 싹을 잘라서 후회에 대해서도 남기지 말라고. 그것이 무슨 의민지 알았으나, 행위는 하지 못함. 그러나 이혼을 하려는 아내는 빚을 같이 책임을 지려 함. 이에 부끄러운 화자. 선을 행하고자 한 선이 후회와 미움이 된 것들. 이해했으나 실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내로 인해 지혜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선을 행하려 했으나 계산과 타협 속에 행해진 조금의 선은 선일까? 김수영의 표현대로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다. 선의 실천에서 이만하면/중립이 없다. 이만하면에서 선의 주체는 쉽게 지워지고, 행하는 이만 남게 되기 쉽다. 인간 선을 위해서는 ‘이만하면’은 없다. 이동권이 처음에는 사회권이라 생각하며 이만하면에 포섭되어 살았으나, 사회권의 온전한 보장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이만하면’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사실상 자유권에 가깝다. (김원영의 책 인용) 사회권이 사회권으로 보장되려면 기본권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기본소득 역시 주어지면 좋은 사회권이 아니라 기본적인 자유권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자격, 재원, 결과에 대한 불신 중 이론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것이 결과에 대한 불신인 듯 하다. 나 아닌 어떤 특정 인간들에 대한 불신. 이에 대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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