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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ug 29. 2023

혼자 울게 하지 않고 싶어서

김지연_마음에 없는 소리

모르던 작가의 모르던 책이네, 라고 생각하며 책을 구매했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나는 그의 글을 기존에 두 편정도 읽은 적 있다. 둘 다 젊은작가상 작품집이었고, 하나의 단편은 또다른 책인 큐큐 퀴어소설집에서였다. 그 외는 없고 이 책은 김지연 작가의 첫 소설집이기에 처음 내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셈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조금 먼저 살아간 작가의 소설 속에는 비혼 여성, 퀴어 여성, 가난한 여성, 비서울지역의 이야기들이 담겨 공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겹겹이 쌓인 마음들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 소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남해, 옆 어촌 마을, 조선소, 바다 등의 배경이나 소설 속 장소가 많이 나온다. 작가를 검색하며 알게되었다. 그가 거제에서 태어났고, 그 역시 서울로 이주갔다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다시 서울로 온 사람임을. 이 소설 속에는 결혼 중심의, 남성중심적 이야기들이 없다. (물론 헤테로 연애나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원가족구성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소설 속 ’나‘들에게는 또다른 관계가 주요하게 나오거나 작동한다. 그리고 그건 내 삶 역시 그러하다.


이 책의 첫 번째 소설인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에서 ‘나’는 ‘내가 다 겪은 것, 감당한 것, 견뎌낸 것에 대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용기가’ 났던 사람이다. ‘진영’은 같이 마음 졸이기를 선택하자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가 친구 상주에게 내뱉었듯 그리고 상주 역시 그렇게 말했듯 ‘나’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사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의미는 그러니까,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혐오하기 쉬울 것이기에 그러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드러내지 않겠다는. 그리고 ‘나’는 그 방식으로 진영과 헤어지게 되었기에 진영과 다시 시작할 수도, 진영과의 시간이 유일하게 안정을 주고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는 것도 나눌 수 없었다. 그에게 그런 생각은 왜 형성되었을까. 넌 이상해, 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인 내가 여성인 애인과 키스를 하거나 함께 있을 때, 모르는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때리거나 조롱하거나 이상한 취급을 하면 나는 나를 드러내는데 여전히 아무렇지 않기만 할 수 있을까.


‘굴 드라이브’. 용서에 대해 생각했다. 상처 받지 않았을 때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해도 우리가 모두 어떤 상처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을 허우적대거나 고통스럽게만 사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용서에 대해 다른 생각이 생길지고 모르고. 다만 용서의 전형적인 순서나 과정이 아니라도 마주하며 맥주 한 잔 하고, 웃을 수도 있겠구나. 반드시 그게 철저한 원수나 복수 혹은 분노와 원한으로만 존재하진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과 용서하지 않아도 되니 또 오란 말 그리고 그리움이 공존한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도 나는 고마워하며 끌어안을 수 있었다.


김지연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작정기’를 읽으며 윤성희 작가의 추천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시간의 뒤섞임 속에서 나는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무작정 슬프기에는 현재가 아니고, 과거로 잊기엔 현재로 흐르고 있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의 주인은 내게 점점 더 구체적인

사람이 된다.”는 문장을 쓴 이의 첫 소설이 참 좋았다. 소설집의 제목인 ‘마음에 없는 소리’는 마음에 담겨 있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고, 음성언어로 표출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희극적이다. ‘내가 울기 시작할 때’를 읽으면서는 최진영 작가 생각이 났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이 책에 추천사를 썼다.


‘사랑하는 일‘은 2020년에도, 2022년에도, 2023년이 되어서도 읽었다. 큐큐단편선에 이어 수상 작품집에서도 이 소설의 같은 대목에 울컥했는데, 이 소설집에서도 그랬다. 내가 하는 방식과 또 다른, 소설로서 다양한 가족구성권과 사랑과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고 슬프다. 이 다채로움이 더 많은 소설로 확장되는 게 반갑고 즐겁고, 여전히 우리 사회가 누군가를 쉽게 지우고 가리고 있는 것이 화가 나고 슬프다. 그럼에도 웃기도 하고, 다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공원에서’처럼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는 걸 무척 좋아할 수 있다. 싫다는 사람들의 그 감각이 자신이 못 나서, 나 때문이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모욕, 수치, 차별, 폭력ㅡ 타자로부터, 세계로부터 오는 문제가 없다면. 그래서 작가는 누구라도 혼자 울지 않도록 우는 ’나‘의 옆에 토리와 서영을 등장시켰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소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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