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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Sep 01. 2023

당신을 지우지 않기 위해

“엄마는 왜 나를 낙태하지 않았어?”


뜨거운 목욕탕 온탕 속에 다리만 겨우 담그고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와의 결혼을 생각하면 임신도 원했다고 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서 물어본 말이었다. 이 이상한 질문이 갑자기 튀어나온 배경에는 읽고 있던 소설이 있었고,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읽고 있던 책 내용을 말해주었다. (나도 만약 소설처럼 내가 없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너에게 나를 낳지 말고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할 테지만, 너를 울리거나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그럼에도 꽤 엄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을 하나 읽고 있는데 말야. 나랑 심술이처럼 80년대생들도 물론 그랬겠지만, 여자라서 낙태가 되고 성비가 가장 불균형했던 해가 1990년 백말띠때래. 그때 태어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러다 엄마도 원하는 임신이 아니었을 것 같아서 물어보고 싶었어.”


엄마는 임신을 했는데 낳지, 그럼 안 낳아? 라며 그게 질문이야? 하며 생각도 안 해본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런 정보에 대해서도 몰랐다고도 했다. 그러네. 일단은 그런 정보도 없다면 아예 그런 생각에 접근하지도 못하겠구나. 원하는 결혼선택이 아니었다고 했었으니까 그 이후에도 그랬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말하며 엄마에게 정보 접근성이 없었을 이야기를 했다가 새로이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 임신을 했고 (그 임신도 원하던 임신인지 알 수 없지만) 원치 않는 폭력으로 자연유산이 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산 전, 엄마는 그러니까 첫 번째 임신인 줄 알았던 그 임신이 첫 번째가 아닌, 다른 첫 번째 임신 경험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경험이 그에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한 원치 않았던 관계의 결과였구나, 생각했다. 그 임신의 경험은 임신중절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기에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임신중절 선택했다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언니들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그녀는 낙태를 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었고, 결혼도 안 한 상태였던 그녀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들은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당사자는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고, 선택할 수도 없이 낙태 ‘당했다.‘


“엄마는 그때 임신도 원치 않게 했는데, 낙태도 원치 않게 한 것이기도 하겠구나. 아빠도, 이모도 둘 다 나빴다, 엄마에게.”


누군가 임신•출산•육아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기 위한 사회이길 바라는 마음과 동일하게 누군가 원치 않는 임신•출산•육아가 아닌 다른 모양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들 이전에 성과 재생산 권리와 정보에 대해 충분히/더 많이 이야기 되고,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와 정보만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안전한 사회 시스템, 안전한 곁, 쫓겨나지 않고 떠돌지 않을 수 있는 집 등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도록의 조건들과 존엄할 수 있는 권리가 함께 붙어있어야 한다.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는 것은 분절되는 경험이지 않으며, 그때그때 잠깐의 지원책으로 완료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가 없으면 다이지도 않다. 관계가 위계적이고 평등하지 않는 여성이 안전하단 감각으로 ‘엄마’란 정체성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을까.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곁에 설 결심도 없으면서 국가는 너무나 쉬운 방식으로 누군가들을 비난하고, 외면하고, 배제하고, 통제해왔다. 여성을 쉽게 혐오하고 때리고 죽이고 무시하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는 여전한데, 참 쉬운 말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떠돈다.


나는 엄마와 이야기하며, 비단 수십 년 지나온 엄마의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끝없이 지워지는 존재들인 여성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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