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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02. 2024

교토에서 온 편지


2024년 첫 영화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는데도 어쩐지 보고싶었던 <교토에서 온 편지>. 2023년을 일본 영화(괴물)로 마무리했는데, 새해 시작도 일본 영화로 하는 게 어쩐지 지금의 나에게 알맞은 템포 같은 느낌적 느낌. 영화는 부산 중에서도 ‘영도’를 주 배경으로 흘러간다. 영도는 내가 태어난 곳이다. 비록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영도에 대한 기억은 없는 거나 다름없지만 영화 속 오르막길을 보며 한때 가족이 살아 때때로 갔던 영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십 대 시절 영도에 온 이후 수십 년을 영도에서만 산 엄마와 영도에서만 생의 전부를 보낸 그야말로 k-장녀와 막내딸, 서울로 진입을 성공했으나 다시 영도로 온 둘쨋딸까지 네 여성의 원가족을 다룬 영화를 보며 내게는 없는 ‘고향’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가 돌아갈 곳이 없음에 대해. 돌아갈 곳이 없으니 애초에 어딘가를 떠났다는 것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같은 것들. 그런 생각을 하며 부산 바다를 보니 엄마 생각으로 이어졌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펼쳐지는 전라도의 작은 바닷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엄마는 마찬가지로 바다의 공간인 그러나 큰 도시인 부산으로 일을 하러 이주하게 되었고 이후 바다를 끼고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바다 없이 살았다. 엄마도 혜주처럼 창밖을 바라보면 바다가 아닌 모습이 낯설었을까, 어땠을까. 영화 속 엄마와 다른 속사정이지만, 나의 엄마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 없는 생을 살아왔다. 그리움이란 것이 묻어지지도 않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그에게 부모와 그리움은 어떤 감각일까. 나이들어가는 엄마, 줄줄인 가족, 혼자서 딸들을 기른 엄마, 가난, 여성, 고단한 노동…의 모습들의 그녀들을 보며 똑같은 그림으로 보여지지 않지만, 공감하고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도 들이칠 일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를 옭아매지 않으면서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아직 찾지 못한 답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 바닷마을 영도의 풍경과 누구에게만 치우치지 않은 영화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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