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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04. 2024

좋아하는 마음에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_환승 인간


인생 네컷을 좋아하는 귀여운 한정현 작가의 산문집 <환승 인간>. ’좋아하는 마음에서 좋아하는 마음으로‘의 의미로서 ’환승‘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이름과 이야기들을 들려준 한정현 작가의 산문을 재밌게 읽었다. 마음 둘 곳 없어 환승하는 게 아니라 오롯히 ‘나’로 존재하기 위한 환승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그의 소설이 너무 좋다. 연구자이면서 소설가인 그가 보이는 차곡차곡 쌓인 토대 위에서 치밀하고 허투루 쓰지 않아 누굴 소외시키지 않는, 그의 퀴어한 소설이 좋다. 그의 소설로 안전한 세계를 그릴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안전함을 나 역시 만드는 데 멈추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그 살고 싶어서, 살리거 싶어서, 살아갈 것이라는 낙관의 의미에 너무나 공명하기 때문이다.


산문을 읽고 나니 나는 그의 다음 소설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환승 인간>, 한정현 산문, 작가정신


p14 나 또한 마찬가지다. 저버리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나는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 잘 숨겨서 보관했고, 이미 세상에선 사라져 버린 것들을 나는 소설 속 세계 안에서 살려냈다. 그 세계를 보면서 나는 자주 안전한 기분을 느낀다.


p18-19 나는 그것을 안다. 안정되지 못한 환경의 사람은 더 자주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 고,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고 일상이라는 것이 없을 만큼 자주 삶을 바꿀 수밖에 없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마음과 사랑 이라는 것을 손쉽게 쓰지만 사실 요즘은 그런 것 마저 만들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삶도 많다고 느 낀다. 그런 삶은 환승의 수가 빈번하게 높다.


p66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그건 여태 보지 못했던 세상을 조금 더 보여주는 일이었다. 처음엔 좀 불편할 수 있지만, 그걸 모르고 살았던 때로 돌아가진 않게 되는 것 같다.


p68-69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에 쓴 것처럼, 가보지 않은 세계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건너갔더니 거기엔 오히려 진짜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의 취향을 알고 같이하는 걸 ‘맞춰준다'의 범위로 생각하는 것 같은 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왜냐면 확실히 사랑, 이 비문학 영역이 내게 알려준 건 '나 자신' 이 어떤 사람인가, 이었으니까. 결국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최초이자 최후의 환승지는 자기 자신이다. 정말 좋은 사랑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온전한 '나'가 남는 것이다. 오롯이 나로 환승하는 것이다.


p77 사랑은 비문학(연구)과 관련이 있었다면 내게 우정은.··· 문학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나는 가끔 삶이 우정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정으로 산다는 게 정말 재밌고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p80-81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특별한 교류 를 하지 않고 거기에 큰 의미 부여도 굳이 하지 않는 편인데 일단 동창이나 지인, 친구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창들보다는 지금 내 옆집의 이웃이 나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몇 시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택배로는 무엇을 시키고 어떤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는지, 진실 로 내 동창들보다 내 이웃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래 알던 사람이라고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내 입장에서 꽤나 무용한 일이다.


p86-87 D는 그해 내 생일에 한남역 언덕 꼭대기의 꼭대기에 있던 집에 초대해 덜 익은 닭볶음탕을 해 주었다. 나만큼이나 돈이 없던 시기의 D가 그걸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나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아니, 한편으로는 너무 좋아 아프기까지 해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p125-126 나는 어떤 때에 '낙관하자'라는 말을 사용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그건 주로 불행할 때였다. 잔혹한 낙관주의에 갇혔을 땐 도리어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기에, 역으로 낙관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살고 싶었고 살아야 했고 주변 친구들을 살리고도 싶었다. 그런 이유로,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 말고 다른 무언가가 없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했던 것 같 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잔혹한 낙관 말고, 진짜 '살아갈 것'이라는 낙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무언가로서의 낙관 말이다.


p189-190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최대 전범국가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대해, 서구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자가 당착'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오 로지 복원하고, 기억하고 그 복원된 역사 앞에서 끝없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뿐임에도 말이 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원된 역사 앞에서 자주 물어야 한다. 이제, 나를 알아보겠냐고,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리려 했던 피해자의 기억을 알아보겠냐고 말이다.


p247-248 결국 이 영화 속 행복한 시간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균형을 잡는 것. 내 안으로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것. 타인의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균형으로 일어서는 것 아니었을까. 그 균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붕괴되면서 말이다.


p289 뉴질랜드를 정말 사랑했던 건 이런 거였다, 그 누구도 '서빙하는데 웬 책?'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 주방에서 조리를 맡으셨던 리 화 아주머니는 항상 조금도 지친 기색도 없이 그러셨지, 나도 한때는 박경리를 읽었는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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