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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17. 2024

우살롱에서 만나요

수미_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엄마는 잘 때 수면제를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불면의 시간이 적지 않게 그를 맞이한다. 수년 전, 수술로 입원했을 때 의사는 엄마에게 좀 더 일찍 병원에 왔더라면, 이야기했다. 엄마의 수면제 이야기 후였다 20대 초반에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를 하다 가난의 허덕임에서 일을 하며 가사와 경제와 육아를 도맡았던 엄마는 그렇게 일찍 만성질환자가 되었고, 불면이 치우려 수면제를 먹고 잠드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을 나는 왜 읽었나. 우울증 진단도 없고, 엄마도 아닌 나는 왜. 주변에 정신의학과를 가거나, 약을 먹거나, 우울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다. 한 친구는 자신이 결혼을 할 게 아니라 병원에 가야했다고 자조했다. 친한 친구가 번아웃으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리고 친하고 좋아하는 친구가 몇 개월 후 결혼을 할 예정이고, 정확히 언제일지 모르나 그는 임신•출산•육아의 계획이 있다. 요즘 그래서 그런지 관련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비혼 여성인 나뿐 아니라 기혼 여부나 성적 지향 상관없이 누구와도 함께 잘 살고 싶어서-의 이유 말고도 말이다. 곧 다가올, 그리고 함께 시절을 보내는 이의 달라질 삶에 그리고 변화가 올 우리의 ‘사이’와 ‘차이’에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살롱 이야기와 저자 수미님의 이야기는 엄마인 이들이 쉽게 갖는 죄책감이나 우울감이 당신 탓이 아니라는 것을 들려준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문제라는 것도. 그러니 이것은 숨겨둘 이야기가 아니다. 드러내고 같이 맞대고 고민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며, 해결이 아니더라도 채근이 아닌 경청과 환대가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쓰는 나도 육아는 남일이고, 잘 모르는 일과도 다름 없어 말로 내뱉는 쉬운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면 그만일 일처럼 살기도 쉽고. 그렇지만, 완벽할 리 없고 부족하고 싫은 감정도 존재하겠지만, 놓치지 않고 배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앞서 말한 그 친구가 육아로 힘들어할 때, 혼자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에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그런 고민과 다짐을 하는 시간이 여전히 추상적이긴 하지만, 좋은 책을 만난 시간이었다.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수미 에세이, 어떤 책


p6 “그동안 잘 견뎌 오셨네요." 마치 그 말을 듣기 위해 정신과에 찾아간 것만 같았다. 타인이 나의 고통을 알아준다는 것, 내 고통이 존중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큰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p7 우울증을 주제로 책을 쓴다면 100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우울증은 복잡한 병이다. 원인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등 개인이 가진 성향, 불행한 사고나 사건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몸담은 사회와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나 경쟁이 심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삶에 대한 통제력이 적고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정신건강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울증은 '사회적 질병'이라 고 불린다. 처한 환경에 따라서 누구나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가 우울증에 매우 취약한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p9 나는 약과 상담이라는 개인적 노력만으론 우울증이 나을 수 없다는 비관을 가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내가 속한 사회의 현실이 있다. 저출생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지만, 육아의 고충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엄마는 필연적으로 우울해진다. 우리 사회는 쉽게 개인의 나 약함을 우울증의 이유로 삼고, 엄마들은 자신이 우울하다고 말하기조차 눈치가 보인다.


p30 분유를 먹이기로 했다고 말하면 주변 어른들은 서운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때면 분유 수유를 결정한 것이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된 후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이 정말 나에게 있는가' 의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p42 하지만 엄마의 수면 부채는 10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는 엄마들의 수면 부족이 애초에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p51 나는 다행히 3만 원씩 하는 진료비를 걱정 없이 낼 수 있는 통장 잔고가 있고 진료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남편이라는 보호자가 있다는 것도 큰 다행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행운의 건 너편에 있을 이름 모를 여자들을 생각했다. 어떤 여자는 죽고 싶어도 이를 악물고 참을 것이다. 어떤 여자는 자신이 아픈 상태라는 것을 모른다. 어떤 여자는 아파도 정신과에 갈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없다. 왜 그 여자들과 내가 이어져 있다고 느꼈을까.


p186 성교육은 일상 속에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들을 배우는 것이니까. 성교육은 나와 타인의 '사이'와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관계라는 맥락을 이해해야만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p188 페미니즘은 나에게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남편과 두 아들뿐만 아니라 우리 곁의 모든 남자들이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빠가 아닌 그저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은 구원이자 혼란이며 투쟁이다. 혼란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기꺼이 혼란을 택하는 남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럴수록 우리의 아들들도 자유로워질 테니까.


p203 단지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것. 우울한 엄마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아픔에 대한 존중이었다. 우살롱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우울한 이야기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공감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정희진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우살롱이 일회성에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p237 고맙게도 나의 친구들은 아이들에게 위계 없는 다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친구는 나와 일대일 관계를 맺은 사람이므로 내 가족과 다정한 관계를 맺을 책임은 없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아이들과 사는 집을 찾아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대화가 뚝뚝 끊기는 집을 찾아오는 데에는 얼마나 큰 용기와 애정이 필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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