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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17. 2024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_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기록이 담긴 책을 읽었다. 참사가 있던 날, 저자가 이 참사를 처음부터 인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자신과 현장을 기록한 초입의 글을 읽으며 잠시 눈 앞이 어지러웠다. 한동안 이 참사를 사람들은 파악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죽음이 다가오거나 가까워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2년 10월 29일, 우리는 대규모 압사와 질식사 사건으로 누군가들을 잃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많은 경우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들과 근접하게 지내지 않았다. 영상이나 무분별한 장면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텍스트 뉴스 외에는 말이다. (물론 많은 sns의 텍스트까진 피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누군지 모를 그러나 그게 누구라도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났고, 이 참사의 피해자에 지인의 지인들이 있었다. 마음으로 애도하면서도 동시에 나의/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시간을 살아야 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음을 보았다고. 나는 이 책을 덮고 싶지 않았지만, 읽는데 자꾸 눈물이 새고 숨이 답답해져 초반 글을 한 페이지 이상 연달아 읽지 못하고 덮고 펴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상상할 수 없는 죽음들이 이 나라에서 일어났다. 처음이 아니다. 자꾸 그런 죽음들이 일어나고 있다.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막지 못할 일이었나.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 참사는 누군가만의 사고나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전 사회적 문제이고, 참사로 우리는 모두 생존자이기도 하며 생존자를 지지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임을 가진 주체이기도 하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명확한 질문이 생긴다. 누구의 책임인가. 애도를 막는 폭력과 권력은 무엇인가. 물론 나도 당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다. 일어나지 않아야할 일이 일상에서 일어났다. 일상을 살아가는 당연한 행위에 당연하지 않아야할 사건이 참사로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생존자와 피해경험자, 유가족, 희생자를 욕하고 비난할 이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는 없다. 잊지 않아야 할 일이 자꾸 늘어만 간다. 살면서 잊혀질 순간이 더 많은 일들이 될지도 모를. 그러나 잊지 않기를. 나도 당신도 그러다보면 우리가 같이 잊지 않고, 이어져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지.


이 책을 읽으며 저자 역시 그러했을 시간, 그러니까 치유와 회복을 위한 시간을 생각해본다. 좋은 상담가를 만났다, 로 끝나지 않도록 다양한 영역의 상담가들이 편견 아닌 상담이 이뤄질 수 있기를. 상담가와 의사들에게 상처 받는 친구들을 계속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에 나온 상담가/의사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유와 회복에 당신이 나설 수 있기를.


덧붙임: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연달아 읽은 책들이 ‘우울증’에 대해 다루고 있기도 하다.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런다는 ’엄마’와 사람들이 이제 좀 그만하라고 쉽게 말하는 ‘참사 생존자‘의 당사자들이 말하는 ’우울증‘에 대해서 이어지는 감각으로 만나도 좋겠다. 쉬운 단정과 판단에서 멀어지며 다시 생각할 수 있기 위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아몬드


p12 이것이 바로 내가 '고통의 자원화' 그리고 '침묵 깨기'를 선택한 이유다. 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혹시 변화의 땔감으로 쓰인다면, 혹시 '타인을 살리는 기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p41 우리는 이태원에서 이촌동까지 걸어 갔다. 걷고 또 걸었다. 울먹이려는 친구를 중간 중간 달래기도 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내 서로 말이 없어졌다. 이태원에 서 조금 떨어진 보광동을 걷는데 여전히 핼러윈 파티 중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흥겨워 보였다.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빠져 나온 이태원 쪽으로 걸어가 고 있었다.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저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또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겪고도 저들에게 가지 말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 이 아수라장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까.


p50-51 나는 대답 대신 펑펑 울기만 했다. 뒤이어 상담사가 따뜻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실은, 이 사건을 뉴스로 전해 듣고 간접적으로 겪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생존자예요. 특별히 초롱 씨는 현장을 경험했기에 더욱 강도가 센 것이고요. 현재 상태가 심각해 보이니 반드시 대면 치료를 권하고 싶고, 연계해주는 시스템을 통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검사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대화한 바로는 이미 트라우마가 발현된 것 같은데 연계 시스템을 안내해드릴게요.”

 통화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일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털어놓고 내 상태를 내보였던 것뿐이었다. 울면서 상담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햇

무 후회돼요."

그리고 이어진 상담사의 대답은 내게 첫 치료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p56-57 한참 상담을 진행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이태원 거리 한복판, 외진 곳도 아니고 폐쇄된 공간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참사를 겪었으니 세상 모든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와 원인을 하나씩 객관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은 분명 내게 도움이 되었다.


p65 참사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자꾸 묻는 것이 실례일 거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날 일을 설명하는 것은 치유에 도움을 준다. 나 역시 입 밖으로 꺼내 설명할수록 그 일은 점차 내게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되어갔다.


p67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실은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제때 밥을 챙겨 먹는 것부터 자주 씻고 속옷 갈아입기, 손톱과 발톱 깍기, 재정을 관리하고 쇼핑하기, 빨래와 청소하기, 스킨케어하기, 친구들과 연락하 기, 좋아하는 것 탐색하기, 심지어 유튜브를 보는 것까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에는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일상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는 가벼운 일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몸을 누이는 행동밖 에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일상이 무너졌다"라고 말 한다. 왜 어른들이 아이를 키우며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 자고, 잘 놀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그 모든 일상 행위는 실로 고귀하고 귀중한 삶의 밑거름이었다.

 나는 그때, 반드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야 그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일상을 지켜내면 그 무엇도 이겨내고 지킬 수 있음을 절감했다.


p88-89 “왜 타인의 상황일 때는 '나였어도 그랬다'라고 말하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자신에게는 그 말을 들려주지 못하나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잖아요. 사람이 150명 넘게 죽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합리화를 해요. 너무 양심이 없잖아요. 내 탓을 하는 것 말고는 머리가 안 돌아가요."

 상담사가 다시 물었다.

 ”이기적인 게 나쁜 거예요?"

 이때 나는 다시 눈물이 터졌다. 내 흐느낌을 들으며 상담사가 조용히 말했다.

 “이기적인 게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누가 그래요?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상담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점차 내 뇌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의미의 충격이 시작된 셈이었다. 특히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을 보이라는 게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게 된다는 말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눈앞의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비로소 숨 쉴 구멍을 찾은 기분이랄까.


p97-98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더, 많이, 자주, 주기적으로 말해야 한다. 이 고통을. 이 참사를.


p105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생존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나에게 왜 백화점에 갔냐는 사람은 없었다'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p126 동기들에게 이제는 그만 인사하러 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 냐는 말을 듣게 된, 그의 나이는 어느덧 40대 중반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더는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인사하러 가지 않는 동기들에게 서운하지도 않고, 배신감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그럴 수 있다고,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고, 그래도 나만은 그러지 말자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 년에 한 번, 후배의 기일을 챙기는 것으로 자기 인생의 일직선 도로에서 벌어진 예기치 못한 사건을 분리하나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통합했다. 지울 수 없으니 잘 데리고 살기로 한 것이다.


p173 대형 참사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극복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만큼 큰 치유는 없다. 잘못한 사람을 찾아서 벌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극복의 중요한 포인트다.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치료와 상담을 열심히 받아도, 나는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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