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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an 18. 2024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정혜윤_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사회적 참사에 대한 책을 읽고난 후 조금 더 편한 마음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은 큰 착각이었다. 참사로 잃은 인간동물에 대한 생각 이후 또다시 그 인간동물이 자유로울 수 없는 비인간동물이란 존재, 삶, 끊임없는 팬데믹과 같은 재난에 대해 쏟아졌다. ’우리는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이, 우리를 묶어두었던 많은 것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얼마나 사무치게 슬픈 글인지. 그러나 여전히 삶의 온전한 재료로 받아들이지 못한 이가 나라는 것에 ’파타고니아‘ 책을 읽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움찔하고 찔렸다. 이 책은 그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혐오와 차별의 모습은 서로 다른 모양을 갖지만 닮아있다. 무엇이 먼저인가, 우월한가, 이윤을 내는가, 정상적인가 가름 속에서 비껴남을 당하는 존재들이 있다.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인간동물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참 못되고 나약한 인간 존재구나. 빚을 많이 지고 있다. 고맙다는 말로는 마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그에 대한 빚으로 미안하기에. 지구는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나는 그 바깥에 존재하지 않고 있기에. 그러나 기쁨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정확히는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을, 그것을 외면하고마는 이가 아님을.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의 집에 빠짐없이 심겨 있던 장미처럼. 리베카 솔닛이 말한 오웰의 장미를 떠올리며. ‘잠든 공주들의 집은 장미로 연결되었고 결국 길이’ 된 것처럼. 마음 편해질 수 있음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 정혜윤 소설, 위즈덤 하우스


p12-13 ‘우리는 사랑한다. 그러나 상상 이상으로 책임을 지면서 사랑해야 한다'라고 부모는 생각했다. 그러나 필리피노는 이 사실마저 뛰어넘어버렸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가 금박을 입히고 나무틀을 만들고 천과 물감을 고르는 일들을 어찌나 능숙하게 헤쳐나가던지 사람들은 그가 인간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 생각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나 스승 혹은 또 다른 인간에게 뭘 배웠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혼자 깨우치는 듯 보였다. 어린 독학자인 그가 하는 일은 관찰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과 사물의 곁에 앉아 있을 줄 알았다.

수석 필경사, 성당 건축 현장의 인부, 상인, 개울, 새, 구름, 거리.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의 옆에서 다정하게 존재할 줄 알았다. 이것이 그의 가장 신비로운 점이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모두들 커다란 날개를 펼치는 새처럼 우아해 보였다. 그가 옆에 있으면 모두 조금씩 눈동자가 빛나고 입가는 부드러워지고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모두 그에게 친절해지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도 친절해졌다.


p28-29 여기서 필리피노는 잠시 숨을 멈췄다.

필리피노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자신,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무엇이 있나 생각해봤다. 그것은 '추방'이었다.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서 추방 중이었다. 아름다움을 스스로 추방하기도 했다. 우리는 화가라면 누구도 붓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을 추한 그림의 일부, 지옥도의 일부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 생각을 하면 필리피노는 짐을 챙겨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는 어느 낯선 항구에 피난민으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당장이라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차분해졌다. 생각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생각은 우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p50 ‘어떤 사랑은 이 세상의 많은 일들에 반대하게 만들어. 반대하는 힘이 한 사람의 진짜 힘이야.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반대자가 될 거야. 사랑해.'


p103-104 우리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뻔한 것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었다. 잃어버릴 뻔한 것을 어떻게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지? 우리는 묻고 또 물었다. 그사이 함께 있으면서 제 할 일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 할 일을 찾으면서 제힘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수년째 반복되는 이야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갔다. 꿈이 체념뿐이었던 마음속 자리를 차지했다. 마음은 어둡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내 눈에는 왕족처럼, 장미처럼 고귀해 보였다.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어깨를 주무르고 부축하고 노래를 부르고. 인간의 몸은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다.


p106 눈이 내린다. 밤눈이 고요하게 우리를 깨운다. 당신이 아직 사랑을 믿는다면? 이제 남은 삶의 방식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서로 깨우리라. 깨어나면 놀라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리라. 눈이 내리고 세상은 온통 하얗게 빛나고 세상에는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우리 모두 쓸쓸하게 죽거나 아니면 이 현실 너머에 더 깊은 아름다움과 더 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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