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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Feb 14. 2024

퀴어 아포칼립스

시우_퀴어 아포칼립스


2018년 여름에 나온 시우, <퀴어 아포칼립스>를 출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읽고 약 6년 만에 모임 책으로 다시 읽었다. 아, 다시 읽어도 너무 좋았다. 당시의 퀴어 논쟁과 투쟁, 흐름에 대해 다정하게 써내려갔다 생각했던 것은 여전했고, 그때보다 밑줄이 더욱 많아진 것은 그 당시 읽었을 때보다 훨씬 쉽게 이해하며 읽는 수 년 후의 나라는 상황이 적용된 것이겠고, 무엇보다 퀴어 문장들이 너무 좋은 게 많아서!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고, 정치권에서는 혐오의 대표마냥 떠들어대며 혐오차별을 동조하며 정치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고, 퀴어 집단의 인권과 시민권을 부정하는 체제 역시 그대로이지만 여전히 ‘퀴어 운동은 적대와 혐오에 진지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일과 밝고 명랑하게 대처하는 일을 병행하며 멈춤 없이 ’퀴어 한국‘을 살아가고/살아 내고 있다. 총선 시기이다. 또다시 표를 이야기하며 민심을 찾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전국에 울리겠지. 적대와 혐오를 조직화하는 반퀴어 집단을 묵인하고, 모두를 위한 평등을 방관하는 정치가 아닌 다채로운 퀴어 삶을 위한 그 이후/너머의 이야기 하고, 약속하고, 지켜내는 정치의 모습을 보고 싶다. 퀴어 운동은 오늘도 춤을 추며, 두려움 속에서도 나아갈 테니. 정치여, 해야 할 몫을 해주시라.


아, 다시 읽는 <퀴어 아포칼립스> 너무 좋았다. 시우님 강의도 좋았었지.. 시우님, 다른 책 안 내시나요…

& 아메드 글도 너무 좋았음. (퀴어는 과거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을 비틀고, 똑바른 직선과 명확한 좌표로 이루어진 공간을 구부러뜨린다. 퀴어가 대단한 의지를 갖거나 급진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메드의 표현을 변주하자면, 퀴어가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주어진 것과 어긋난 각도를 맞추며 살기 때문이다. 퀴어는 돌아갈 집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들이다. 퀴어가 하는 양심고백이 있다면,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다짐일 것이다.)


<퀴어 아포칼립스>, 시우, 현실문화


p13-14 지난 10년 동안 퀴어 이슈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퀴어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결정적인 시점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전개된 2007년이다. 당시 법무부는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이 명시된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예고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회를 배경으로 한 반퀴어 집단과 한국경영자총협회로 대표되는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항목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했다. 이에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운동을 해왔던 퀴어 활동가들은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행동'을 조직해서 적극적인 차별반대 운동을 펼친다. 퀴어 당사자들의 집단적인 커밍아웃을 이끌어낸 2007년 투쟁은 사회적으로 퀴어 집단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고 퀴어 운동의 기획과 전략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p15 퀴어 집단의 열악한 삶의 조건은 보수 개신교회의 강력한 반퀴어 운동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보수 개신교회는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거리의 정치학에 몰두 했고,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 개신교회는 사립학교법 재개정 반대 운동에 집중했다. 퀴어 집단이 개신교회의 표적이 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가 죄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유통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기도회와 시위가 조직되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다툼은 퀴어 이슈에 대한 보수 개신교회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퀴어 집단과의 적대 관계를 분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p17 무엇 보다 퀴어 이슈는 특정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 또는 이해관계 당사자 사이의 다툼으로 환원될 수 없다. 퀴어 이슈는 우리가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규범적인 질서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를 통해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등에 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p37 반퀴어 운동을 보수적인 교리에만 의존해서 설명하는 방식의 두 번째 문제점은 보수 개신교회를 내부적 통일성을 갖춘 곳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보수 개신교회에서는 지역교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개교회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교단을 넘어서는 연합운동은 물론이고 교단 내부의 구심력도 약한 편이다. 수백 개에 달하는 교파는 이해관계로 인한 다툼으로 분리되었고 정략적 판단에 따른 이합집산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회의 반퀴어 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개신교회가 반퀴어 운동을 중심으로 결속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p38 반퀴어 운동이 조직화된 이유를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보수 개신교회의 내부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 개신교회가 오랫동안 퀴어 이슈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할 때, 퀴어 집단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게 된 계기를 찾아야 한다. 보수 개신교회의 반퀴어 운동을 이해하는 단서는 개신교회의 위기다. 현재 반퀴어 운동은 교회 위기를 극복하려는 일종의 영적 각성 운 동이자 교회개혁 운동으로 가능하고 있다.


p45 현재 개신교회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거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위기를 진단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보수적이며 종교적이라는 데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수의 개신교인은 그동안 보수 개신교회를 구성해온 신학, 교리, 교회 운영 방식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p48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보수적인 성적 규범에 부합하는지 여부다. 다시 말해서 이성애 가족질서를 정점에 위치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등급화•위계화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고정된 성역할에 도전하는 문화, 다양한 형태의 성적 친밀성을 존중하는 문화,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문화는 왜곡된 세속 문화로 폄하된다.


p90 개신교회의 위기는 반퀴어 운동이 조직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복음주의권의 침묵은 반퀴어 운동이 확산되는 배경이 되었다. 지난 세대의 복음주의자들이 ‘하느님의 선교' 개념을 나름의 방식으 로 풀어냈던 것처럼, 현세대의 복음주의자들은 퀴어 이슈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에 책임감 있게 응답할 필요가 있다. 퀴어 이슈는 교회 개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안이 아니라 함 께 고민해야 할 정치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퀴어 논쟁이 고조될수록 복음주의권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p95-96 그러나 성서눈 벽을 쌓는 일이 아니리 다리를 놓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서로 원수가 되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14~22절). 특히 "담을 헐어버렸다“(14절) ㅣ는 표현은 십자가 사건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는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고 평화를 이룬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기억할 때, 보수 개신교회가 퀴어 변화를 막는 최후의 벽이 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개신교회가 당면한 위기에 맞서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하려고 한다면, 퀴어 변화를 적대와 혐오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p97 보수 개신교회가 진정으로 새로 위지기 위해서는 퀴어한 존재를 처벌하고 저주하는 일을 그치고, 퀴어한 존재를 통하여, 퀴어한 존재와 함께, 퀴어한 존재 안에서 일어 나는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셨던 것처럼 새로운 길은 경계를 가로지르는 도전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0장 19~20절).


p110 미국교회와 사회가 퀴어 차별적인 정책을 점차 바꾸어나가면서 한국의 보수 개신교회는 미국을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실망과 비난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미국의 사례를 거부해야 하 는 미래,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미래, 두려운 미래로 의미화하는 것이다. 일례로 2014년부터 미국을 포함한 여러 외국 대사관이 퀴어 문화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자 몇몇 반퀴어 단체는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대 시위에서 나온 구호나 성명서에 쓰인 표현을 살펴보면, 대사관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p118 퀴어 집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퀴어 의제가 공적인 장에서 논의되는 변 화는 반퀴어 집단에게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반퀴어 집단은 퀴어 집단에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퀴어 집단을 부정적인 기호와 연결시킨다. 반퀴어 담론에서 불행, 멸 망, 죽음, 지옥, 타락과 같은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퀴어 집단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이고 비규범적이며 통제 불가능하다‘라는 담론은 퀴어 집단을 공격하고 차별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p134 퀴어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퀴어함으로 인해 파괴되는 현 체제와 결별하고 퀴어함이 창조하는 새로운 세계에 주목해야 한다.


p156 퀴어 집단의 정치적 요구를 사회적 합의 부족과 시기상조를 이유로 거부하는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퀴어 이슈를 둘러싼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퀴어 이슈가 나중으로 미뤄져도 괜찮은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면서 퀴어 이슈를 동시대적으로 풀어가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다. 퀴어 집단은 퀴어 이슈를 미래로 끊임 없이 유예하는 시간의 배치를 어그러뜨리고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를 임의적으로 나누는 공간 구획을 거부하면서 변화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퀴어 논쟁과 투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퀴어 변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퀴어 집단의 다급한 외침에 국가기관과 사회 전체가 응답하는 일이다.


p158 반퀴어 집단의 등장은 퀴어 이슈가 사회적인 논쟁을 이끌어낼 정도의 가시성과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중략…)  반퀴어 운동은 퀴어 집단이 사회적으로 '발견' 혹은 ‘발명'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퀴어 집단은 지식과 정보를 유통시키면서 퀴어 이슈를 둘러싼 연상체계를 만들어낸다.


p165-166 퀴어 운동이 권리보호와 반차별 주장을 넘어서 불평등한 세계를 떠받치는 물적 토대와 의미 체계를 재조직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긍정하는 커밍아웃,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은 '나중에' 담론에 맞서 퀴어 변화를 실현하는 데 저마다의 모습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퀴어 당사자-커뮤니티- 운동 사이의 우연한 관계를 살피는 일, 퀴어 집단의 다채로운 문화적•정치적 실천을 의미화하는 일, 연대를 확장하고 교차의 지점을 인식하는 일, 급진적 퀴어 비전을 힘 있게 풀어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p190-191 ‘퀴어'는 이원젠더체계, 이성애규범, 남성 지배, 신자유주의, 백인우월주의 등의 지배 서사가 촘촘하게 설계한 각본을 떠나 길을 잃는 것을 불안과 위기로 이해하지 않는다. 퀴어는 과거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을 비틀고, 똑바른 직선과 명확한 좌표로 이루어진 공간을 구부러뜨린다. 퀴어가 대단한 의지를 갖거나 급진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메드의 표현을 변주하자면, 퀴어가 모든 것에는 제자리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주어진 것과 어긋난 각도를 맞추며 살기 때문이다. 퀴어는 돌아갈 집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들이다. 퀴어가 하는 양심고백이 있다면,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다짐일 것이다.


p200 사랑을 담은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그들, 주체와 타자, 반퀴어 집단과 퀴어 집단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퀴어 변화가 실현하는 것은 보다 진정한 사랑이나 더 많은 관용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평등이기 때문이다.


p230-231 퀴어 정치학이 동성 간 사랑의 정당성과 진정성을 확인받는 데서 멈추게 될 때, 2015년 서울퀴어문화축제 슬로건에 새겨진 '사랑과 저항을 통한 퀴어 혁명'은 불가능한 일로 남게 된다. 퀴어 이슈를 동성 파트너십의 인정과 동성 간 성적 친밀성의 존중으로 제한하는 방식은 섹슈얼리티, 친밀성, 관계를 둘러싼 위계를 묵인하고, 가족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또 다른 타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에 여러 퀴어 연구자는 성적인 영역을 직조하는 소비 자본주의, 군사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비장애인 중심주의 등 교차하는 지배의 축에 저항하는 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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