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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23. 2024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서이제_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책 제목과 동명의 소설은 영화가 소재인 소설이어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와 같았다. 영화를 보듯 소설이 내게 이어지고 흘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오랜만에 인디 음악을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좋겠단 마음이 들었다. 에세이에서 서이제 작가는 재즈를 좋아하는 이를 좋아해서 그와 대화를 나누려고 재즈를 정말 열심히 들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만큼 재즈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주 어릴 적 버섯이란 식재료도 그랬고, 20대 초반의 레나의 음악도 그랬다. 온전히 나만으로 지금의 나의 취향이 만들어지지 않았단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이유로 시작되어 좋아함이 된 것들도 타인과 다르니 어떤 면에선 그 이유부터 온전히 나의 것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알게 되다니, 그를 좋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김사월이 말한 만두를 빚는 마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그래, 지난 삶의 그들을 좋아하길 참 잘했었다. 나도 내게 말해주고 싶으네. 그것이 연애로 진입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사랑이 스스로만 알다가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보게 되었다. 마지막 단편에서처럼 이루어지는 사랑은 반드시 결혼의 모양만은 아닐 테니까, 그런 생각도 하다가.


작고 얇고 책 한 권이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조용하게 반짝였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비추었다.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서이제 소설, 자음과모음


p22-23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긍정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이 이해한 것뿐만 아니라, 이해 할 수 없는 것들까지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되도록 있는 그대로. 좋아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늘 그렇게 말하면서. 그저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영화적인 어떤 것을 발 견해나가는 것, 그에게는 그게 중요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의 그런 연출 방식은 너와 잘 맞았다. 너는 수민을 연기하면서 점점 그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너는 진심으로 '수민'을 살고 있었다. 그건 이해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지금껏 잘 살아온 것처럼,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잘 지내온 것처럼. 도대체 마음이 왜 이럴까, 이해되지 않는 싱숭생숭한 기분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처 럼. 너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살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견딜 수 없었다. 아무 리 생각해도 사는 것과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무언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는 살 수 있어도,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연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p25 시간이 흐른다는 것. 가만히 있어도, 애쓰지 않아도, 매일 무언가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p38 끝내 내가 알게 되었던 건, 너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그건 어쩌면 세연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계속 너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 지나치도록 네 마음을 궁금해했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사실 이었다. 그 사실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네가 내 손목을 세게 잡았을 때, 네가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았을 때. 그러니까 마지막 촬영이 되어서야 어떤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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