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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l 09. 2024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에이미 엘리스 넛_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매우 추천하고 싶은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만의 이야기뿐 아니라 원가족과 학교나 마을의 주변인 등 공동체의 경험이 함께 담겨 있다. 이 글은 당사자의 자기 서술이 아니라 참여 관찰 내지 인터뷰와 같음으로 되었을 방식이 와이엇에서 니콜로 트랜지션 하는 과정을 그의 출생부터 되짚어 다루고 있다. 또한, 그 이야기들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란 용어가 언제 우리 사회에 등장했는지, 니콜 이전의 각국의 상황들이나 의료계는 어떤 현실이었는지, 젠더의 개념은 물론 다양한 이야기를 세심히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쓰기와 저자 덕분에 이 긴 여정이 다양한 감정뿐 아니라 고민과 응답으로 이어지는데 주요한 작용을 한 것 같다.


와이엇이 지정성별로서 본인을 인식하지 않을때 간과하지 않은 엄마, 켈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비록 아빠 웨인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지만(물론 그도 계속이진 않다. 그 역시 벽장을 나온다), 와이엇의 일상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 쌍둥이 조너스가 있었고, 니콜이 와이엇 어린이 시절에 학교에서 만난 리사 어하트란 상담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켈리와 소통하며 학교에서의 생활이 안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무엇보다 와이엇의 어린이 친구들은 이런 상황에 ‘어른’들보다 성별이분법에 갇히거나 와이엇을 이상하게 취급하거나 배제하지 않았다. (물론 괴롭힘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담긴 니콜의 경험과 영화 <리틀걸> 등은 트랜스젠더 어린이가 차별•배제 당하지 않고 가족과 공동체에 인정받고 어우러지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왜 모두의 안전과 평화의 삶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외과적 수술을 통한 트랜지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어린이•청소년 시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이 어떤 불안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사실 너무 잘 알고 있는 사회에 살면서도 유독 그것이 성소수자에게는 취약한 것처럼 군다. 아니 사실 여전히 무지하다. 더 나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죽임 당하게 두지 않도, 죽이지도 않기 위해서는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정답처럼 가져선 안 된다. 이 책의 여러 사례에 끝내 떠나간 이들기 나온다. 그러한 사건이 언제까지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둘 것인가. 이 책에서도 가족과 주변, 학교에서도 모두 니콜을 받아들이고 중요한 문제, 니콜이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기독시민연맹’은 성전환을 할 수 있는 18세 이전이라면 화장실도 지정성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며 악의적 차별 행위를 펼쳐간다. 그리고 니콜의 가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학교에 요구하고, 다중이용시설 제한 법안을 부결 시키는 등 계속해서 싸워나간다. 니콜의 시간은 오늘에 멈춰있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다. 패소한 이후 항소하여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야함을 확인하는 승소의 경험도 가졌다. 니콜의 안전하고 평등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싸우고 변화를 만들어왔다.


이 이야기를 만나 너무 좋았다. 우리는 나다워지기 위해 생애 전반을 ‘트랜지션’하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 누구도 차별에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 해야할 것들은 너무나 명확하다.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에미미 엘리사 넛 지음, 현아율 옮김, 돌고래


p55 켈리는 아이가 싫어하는 옷을 강제로 입힌다는 게 끔찍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가끔은 웨인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고 와이엇이 입을 수 있는 덜 남성적인 옷을 쇼핑하기로 마음먹었다. (…중략…) 켈리는 프릴이 과하거나 지나치게 여성적이지 않으면서도 기왕이면 분홍색인 여아용 셔츠를 찾아봤다. 때마침 그런 옷을 발견하자, 이제는 아침마다 와이엇의 옷을 입히는 일이 한결 수월해지리란 걸 알았다. 켈리는 사람들이 분홍색 셔츠를 입은 와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할지 애써 외면해야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 본인이 마음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와이엇의 문제도 아니었다.


p56 켈리는 답했다. "와이엇은 우리한테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 거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는 거라고. 그럼 우린 애를 도와줘야지, 자기가 누군지 알 수 있게."

 웨인은 세상 사람들처럼 그저 '정상' 가족을 꾸리길 바랐다. 다른 집이라고 다 정상인 건 아냐. 켈리가 웨인에게 말했다. 켈리도 그런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웨인과 달리 켈리는 와이엇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알지 못했기에 별 다른 기대도 없었고, 낙심할 이유가 없었기에 와이엇을 남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p85 “엄마, 메인스 남매 말하는 거죠? 그 집에는 남자애랑 여자애가 하나씩 있잖아요." 한 아들이 말했다.

 ”아니, 그 집 애들은 쌍둥이 남자애들이잖니."

 아이들은 와이엇이 여자아이라고 주장했다. 그제야 듣고 있던 남편이 끼어들며 물었다. "너희들 화장실 같이 갔던 거 기억나? 와이엇한테 고추가 있지 않았어?"

 아빠의 말이 끝나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아들 하나가 입을 열었다.

 “물론 남자한테는 고추가 있고 여자한테는 없지만•···• 그래도 와이엇은 여자애예요. 어쩌다 고추를 갖게 됐을 뿐이고요."


p89 보일런이 오프라에게 말했다. "저도 이렇게 다른 삶을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남들처럼 제게도 트랜스젠더의 삶은 낯설 었으니까요. [•••••] 이런 사람이 세상에 저 혼자뿐인 줄 알았죠. 이제는 미국에만 트랜스젠더가 수만 명이나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만요. 어떤 학자는 다발경화증이나 구개 열만큼 흔하다고 얘기해요. 트랜스젠더는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 무수히 많지만, 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침묵과 수치심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중략…) 와이엇은 정신장애가 있지도, 아프지도, 기이하지도 않았고, 괴물도 아니었다. 와이엇이 남자아이로서 행복하지 않다는 게 핵심이었다.


p148 염색체 순열이 만들어지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이들은 염색체의 젠더와 성기의 젠더가 정반대다. 누군가는 남성 생식기와 고환이 있지만 체내에 자궁과 나팔관이 있기도 하다. 남성 생식기와 작은 고환, 난소를 함께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2010년에 호주에서 보고된 한 임 산부 같은 사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 임산부는 셋째 아이를 출산할 무렵에야 검사를 통해 수많은 체내 세포가 그가 염색체상 남성임을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여성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쌍둥이 남매 의 배아가 합쳐진 경우임이 유력했다. 성기를 보면 여성이지만 유전적으로는 여성이자 남성으로, 이런 상태를 키메라증이라고 부른다. 사람에 따라 XXXL XXY, XYY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염색체 구성이 나타나거나 상이한 조직에서 각기 다른 염색체 배열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같은 상태는 섞임증이라고 한다.


p149 그렇다면 의사는 무엇을 근거로 간성(인터섹스, intersex) 신생아의 성별을 결정할까?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은 생물학보다 문화적 기대와 편견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p154 젠더는 지극히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특히 지난 10년의 세월을 지나며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인정받았다. 사람들은 완전히 남성적이거나 완전히 여성적이지 않으며 대개는 (이를 테면 선머슴 같은 여자아이나 여성스러운 남자아이처럼) 그 둘의 혼합체라는 시각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과 데이팅 웹사이트 오케이큐피드의 성별 기입란에도 남성과 여성 외에 제3의 ‘개인 지정'탭이 생겼는데, 보기에는 ’에이젠더(무성)','바이젠더 (쌍성)‘ㅊ '팬젠더(범성)’, ‘젠더퀴어’, ‘안드로진(중성)' 등 실로 다양한 선택지가 포함돼 있다.


p158 21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트랜스젠더 어린이들은 사춘기에 미리 대비할 수 없었고, 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 미처 확정되지 않은 귀중한 수개월, 수년의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사춘기를 피할 수도 없었다. 성별확정수술도 성장을 마친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만 진행됐다. 외면의 모습이 내면의 느낌처럼 비치길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은 트랜스젠더들로 하여금 성별확정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발육이 끝난 남성을 여성으로, 혹은 그 반대로 바꾸려는 시도는 결과가 당사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심리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불러올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p167-168 의사와 과학자들은 여성•남성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한 지 1년이 지나면 트랜스젠더 선수가 애초에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경쟁 우위 같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사실 여성의 난소는 테스토스테론도 소량 만들어 내는데, (대개는 난소가 없는)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 재생산 기관을 갖고 태어난 일반 여성들보다 체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을 수도 있다.


p178 공중화장실 이용은 자신이 정체화한 젠더의 화장실을 이용하길 선호하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논쟁과 불안을 수반한다. 이전에는 와이엇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는 화장실에 성별 구분이 없고 칸도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켈리는 이것이 와이엇에겐 그리 큰 변화가 아닐지 몰라도 다른 아이들이나 특히 그 부모들에게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는 아이 들이 젠더유동적(gender-fluid) 행동을 비롯한 다양성에 훨씬 포용적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어떤 학부모가 반대의 목소리를 낼지 몰라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p189 웨인은 다름 아닌 법정에서야 비로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와이엇이 완전한 트랜지션에 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며 그 과정은 최대한 안전한 환경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p259-260 제니퍼 피니 보일런은 언젠가 이렇게 썼다. “젠더를 판별하는 기준 가운데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것은 한 사람의 삶에 담긴 진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 자체이다. 한 사람의 젠더를 가장 잘 판별할 수 있는 건 타인을 모욕하고 의심하는 검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젠더를 가장 잘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당사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젠더를 어떻게 검사할 수 있을까?"


p339 니콜과 조너스는 이 나쁜 소식을 듣고 실망했지만 곧장 이렇게 물었다. "이제 다음에는 뭘 해야 돼요?" 둘은 싸움이 이대로 끝나기를 원치 않았고, 켈리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클라인과 레비를 비롯한 변호사들도 즉시 주 최고법원에 항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항소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가족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이 일에 휘말려왔고 우여곡절도 지나치게 많았다. 사태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몇 개월쯤은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p378 몸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몸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도구이기에 우리를 세상과 연 결해준다. 니콜은 마침내 그 연결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외과적 트랜지션에만 집중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니콜에게 수술은 마지막으로 거쳐야 할 단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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