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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l 11. 2024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황의진_빈틈없이 자연스럽게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를 읽었다. 한 달 가까이 가지고 다니며 느릿느릿하게 읽기를 끝낸 책이다. 저자는 사진을 잘 찍지 않은 ‘젊은 여성’으로서 궁금증이 일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을 자주 찍으나 어느 순간부터 혼자의 셀피는 찍지 않고, 친구들과의 시간은 인물이 아닌 다른 물질이라도 그 시간이 보존되는 양 사진을 기록하는 나 역시 궁금함은 마찬가지였다. 간혹 ‘이런 사진까지, 왜?’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건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도 내게 그런 의문을 갖겠지? 하는 마음도 가지며.


싸이월드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이어지는  SNS에 존재하며 무수한 사진을 게시해왔다. 그리고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나 역시 저자의 이어지는 생각처럼 이것이 단순한 ‘자기 과시’라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렇다면 ‘우린’ 왜? 하는 질문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었다. 소싯적(언제적인지 오래됐다만), ‘하두리’ 등 셀피 사진부터 생각해보면 가부장제 남성중심적 및 이성애규범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않은 사진의 역사가 내게도 너무나 명백하게 존재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인식했다.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여성이 자신의 사진에서 어떻게 객체화/대상화 되었는지도 보여준다) 그러니까 내가 ‘나’라고 인지하는 ‘내 사진’에서도 나는 소외되었기도 한 것이다.


그런 여성들과 사진의 관계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되었다. 카메라 기술, SNS 등 기술 발전은 사진을 매개로 소통이 되고, 다른 방식의 기억 보존과 같은 기록 나아가 ‘평범한’ 일상의 문화적 디폴트가 되기도 하였다. 사실상 내가 통제할 수 없을 온라인 상의 나의 사진에 대해 ‘우리’는 안전하게 업로드하고 기억하고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설사 안전해지지 않더라도. 비-안전의 문제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좋아서 찍는 내 사진의 즐거움과 불안, 욕망”에서 불안은 내가 자초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사진을 자신의 즐거움과 욕망에 맞게 잘 드러낼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을 읽으며.. 아니 나는 과연 이런 연구 해서 이런 글 쓸 수 있냐구.. 하는 생각도 많이 차지했음(하하…)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황의진, 반비


p13-14 내가 만난 여성 가운데는 형편이 넉넉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모두 있다. 자기사진을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이들의 가난과 슬픔, 고충은 교묘하게 숨겨진다. 아름다운 사진 찍기는 겉으로는 파편화된 개인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들에게 '촬영자 여성‘이라는 모호하지만 공통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위이고, 이때 고통과 가난은 숨겨지고 과거는 미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사진에 담긴 모습은 과연 작위적인 '가짜'에 불과할까? 처음에 나는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사진 찍기를 일종의 위장 전략으로 생각했다. '진짜 나'의 모습을 숨기고 보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사진 찍기의 목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인터뷰를 거듭할수록 촬영자 여성들이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가짜'라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사진에 공들여 남긴 것은 사진 바깥의 모습, 사진에는 결코 남기지 않을 순간의 '나'와 마찬가지로 분명한 '진짜다. 사진은 원하는 조각들만을 잘라 편집한 '빈틈없는 몽타주'이지만 동시에 여성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꼼꼼하게 다듬은 사진을 '자연스럽다'고 표현한다면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그런 이미지가 사진의 촬영자이자 피사체인 '나'를 거꾸로 재구성한다는 의미이다.


p25 그러나 자기사진은 단순히 연출의 수단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기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그 속의 이미지보다도 중요하다. '나‘를 촬영하여 업로드함으로써 타인의 눈앞에 등장하고, '나' 역시 남의 사진에 시선을 보내면서 촬영자는 비로소 대화에 참여한다.


p76-77 카메라 대중화 흐름의 이면에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여성-피사체의 계보가 존재한다.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를 알리며 카메라는 보급형 기기로, CCTV로, 그리고 몰래카메라로 도시 곳곳에 확산되었다. 갈수록 넓게 깔리는 경박단소대한 렌즈들 속에서 여성 피사체를 향한 시선은 더 집요해져갔다.

 기술 발전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카메라와 사진은 결코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술로 주어지지 않았다. 카메라는 어떤 이들에게는 시야를 넓히는 즐거움을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과 억압을 현실화하는 도구로 작동하였다. 카메라 대중화 시대가 현실화할수록 여성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재현하는 여성상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아름답게 보여주도록 요구받았다. '여성의 미‘를 전형적으로 생산하는 사진의 범람 속에서 여성들은 촬영자가 되기도 이전에 피사체로 위치 지어졌다. 가정용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성의 촬영은 '주부 촬영자'와 같은 성별화된 정체성을 통해 좁게 규정되었다. 가정용 카메라 담론이 만들어낸 평면적인 여성상들, 즉 가정의 보조 촬영자인 주부와 '아름다운 피사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이 자리 잡을 곳은 없었다.


p101-102 ’나‘를 촬영함으로써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보다도 '나'를 찍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즉 김혜연에게 사진은 이 순간만 남길 수 있는 기록이다.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지금의 나 역시 그렇다. 스물네 살의 나와 스물다섯 살의 나는 서로 다르고 그 이후의 나도 마찬가지다. 김혜연에게 내 사진'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나를 시시때때로 촬영해 남기고 싶다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자기사진을 촬영함으로써 ‘나'는 특별한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함은 '나'의 모습을 남보다도 예쁘고 독특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경쟁적인 방식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속적인 촬영을 통해 갤러리로 구축된 '나'만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데서, 특히 계속해서 바뀌는 주변의 시공간을 오로지 '나'의 배경으로 배치하는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p112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촬영한 사진들은 다분히 개인적인 의미를 띤다. 설령 그 사진들이 각종 SNS를 통해 외부에 공개된다고 해도 그렇다. 자기사진을 찍는 여성들은 사진에 본인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그 과정에서 카메라 기기, 또는 촬영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자기사진 촬영은 무엇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작동법을 터득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촬영자 여성들은 자기사진을 찍으면서 '나'와 관련된 개인적인 요소들, 즉 외모나 감정, 일상적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뽑아내고 사진에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자기사진의 주인공인 '나'는 이러한 배치의 주관자다.


p117-118 자기사진은 어떤 거창한 의미나 중요한 사건 외에도 "찰나 찰나"의 소회를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자기사진은 예전에 잠시 일어났던 감상과 감정을 붙들어두고 지금의 나에게 일깨운다. 자기사진을 촬영하는 '의미 없는' 습관은 사소한 과거의 감상을 끊임없이 소환하려는 현재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사실 그런 종류의 기억이나 욕구는 자기사진과 공생하는 관계이다. 소회라는 것은 애초에 자기사진이라는 증거물 없이는 구체적으로 복원하기 어려운 찰나의 느낌이다. 자기사진은 촬영한 이미지 없이는 그 존재마저 잊어버릴 만큼 휘발성 강한 감상을 환기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자기사진의 필요성은 기록을 위한 목적뿐 아니라 그것이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순간의 가치, 즉 재미와 즐거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p127 자기사진의 표면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사진은 현실의 각종 어려움을 숨기는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에 맞설 긍정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자기사진은 긍정의 힘을 소환하는 자기위로의 도구이기도 하다.


p136-137 ‘자연스러운 예쁨'은 자기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미적 조건이다. 촬영자 여성들은 '자연스러움'을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쓴다.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고 싶느냐고 문자 촬영자 여성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사진'을 강조했다. 촬영자 여성들은 얼굴과 몸에 대한 보정의 적절함을 가늠할 때뿐 아니라 사진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 때("자연스러운 사진이 잘 나온 사진이죠."), 또는 촬영할 만한 순간과 공간을 포착할 때 자연스러움을 고려한다. 자기사진과 관련한 자연스러움은 좋음, 또는 만족스러움에 해당하는 가치로 통한다.


p150 자기사진은 외부에 자신의 모습을 쇼잉'하는 창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촬영자 여성의 내밀한 기억과 감성에 밀착된 기록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자기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개인적인 기억을 구성하며 이때 사진은 기억의 지표로서 꼭 필요한 도구다.


p159 물론 어떤 사진은 의도적으로 삭제된다. 촬영자 여성들에게 사진 관리는 긴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며 어떤 자기사진은 과거의 즐거운 기억을 상기하는 자료로 앨범에 보관되는 한편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억을 담은 사진은 삭제된다. 특히 촬영자 여성들에게 연인과의 이별은 한동안 찍고 간직했던 자기사진을 대폭 정리하는 계기이다. 여기서 인생의 특정한 시간적 구간은 줄지어 배치한 일련의 사진, 또는 하나의 사진 폴더로 대체되어 손쉽게 삭제된다.


p178 따라서 촬영자 여성들은 자기사진을 통해 '나'의 모습을 기록하거나 때로 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사진이 '안전'한 곳에 있어야 가능하다. 이처럼 안전과 위험의 가능성은 자기사진으로 하여금 이중적인 성격을 띠게끔 만든다.


p241-242 어떤 형태의 자기사진을 찍든 촬영자는 안전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안전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공유해야만 촬영자 여성이 자기사진의 정당한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을 '예쁘고 섹시하게' 연출하는 여성들, 하루에도 몇 장씩 사진을 찍어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는 여성들, 또는 SNS 계정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해둔 여성들 역시 자기사진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을 교환하는 장의 안전성은 여성들의 자기사진이 더욱 자유로운' 형태를 띨 수 있게끔 하는 중요한 밑바탕이기도 하다.


p246 사진 찍기에는 촬영자의 여러 계산과 전략이 녹아들어가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촬영은 개개인의 산발적인 실천이자 관습이다. 젊은 여성들은 각종 기술과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의 경험, '자기사진 촬영에 습관적으로 참여한다. "사진 찍는 데 별 의미는 없다"는 한 참여자의 고백은 실제로 그들의 촬영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의식과 목적 없이" 자기사진을 계속 찍는 것 역시 능동적인 문화적 실천으로 볼 수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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