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밀러, 디어마이네임
성폭력 피해경험자가 병원에서 사려 깊은 진료와 상태에 대한 파악을 받을 수 있는가? 강간에 대한 협소한 정의는 그곳이나 이곳이나 다르지 않아서, 피해경험자보다 유망한 가해자의 호소에 더 귀 기울이는 태도가 너무 많이 본 장면이어서, 책에서 다룬 정치권 이야기처럼 일상 어디에서나 남성들의 용인되는 농담 혹은 그럴듯한 사적 이야기로만 존재해 온 성적 폭력에 대해 이 지긋지긋함을 끝내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그럴 리 없다는 최근에도 너무 많이 들어온 그 대단한 측근들의 의리보다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성폭력은 가해자의 가해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함부로 대해도 그것에 대해 잘못이라 이야기되지 않고 묵인될 때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샤넬은 우리가, 우리 모두가 그 잘못된 시스템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방관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그 방관자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될 수도 있는 다면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해자를 비롯하여 가해자의 지인들이 어느 누구도 가해자에게 잘못 했으니 사과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샤넬은 가해자가 반성하고 충분히 사과할 수 있기를 바랐으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전히 피해경험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피해경험자는 하루에도 수없이 쓰러지고 상처받았지만, 나아갔다. 그녀는 사건과 기억에 이름 붙이지 않고 그녀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였다. 그녀 스스로의 이름을 찾았다. 그녀는 많은 시간 울고 구토를 하고 아팠지만, 매일 싸워나갔다.
그녀는 ‘나는 계속 부드러웠기 때문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글을 썼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내 진실 옆에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에, 끔찍한 폭풍 속의 작은 화염처럼 그것을 지켰기 때문에. 눈물이 날 때, 당신이 조롱과 모욕을 당할 때, 의심과 위협을 당할 때, 그들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때, 당신의 몸이 구멍으로 전락할 때, 고개를 당당히 들라. 여행은 당신의 상상보다 길 것이고, 트라우마는 당신을 찾아내고 또 찾아낼 것이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 당신의 힘과 함께 부드러움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있다, 지금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