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속될 것이다.

큐큐단편선, 언니밖에 없네

by 수수



큐큐퀴어단편선 세 번째 소설, <언니밖에 없네>에는 일곱 명의 작가들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의 “언니밖에 없네”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의 대사였지만, 그 장면도 어쩐지 애틋했고 그리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 ‘언니밖에 없네’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번 소설집이 마음에 들었다. 일곱 명의 작가의 글 모두 저마다의 다정과 사랑이 담겨있었고, 모두가 좋았다.


<사랑하는 일>의 김지연 작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기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영 벗어나 다른 곳에 와 있었다고 했다.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한 이 다른 곳이 독자인 나도 마음에 든다. 눈동자에 절반쯤은 물이 차오르는 기분으로, 하지만 사랑만이 전부라는 마음을 꼭 붙잡은 채 이 소설을 읽었다.


정세랑 작가가 상상한 ‘아미 오브 퀴어’의 세상은 인구의 35%가 인터섹스로 성별이분법은 의미 없어지고, 재생산에 대한 개인들의 선택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곳이었다. ‘시코드 시티’가 협약을 깨고 다시 성별이 두 대로만 구분되고, 국가가 나서서 재생산을 강조하여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다시 쌓아올리는 퇴행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도시국가들을 유지시킨 하나의 축은 ‘궁극의 윤리 엔진’으로서 소수자/종차별에서 벗어나 설계되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차별하며 작동하지 않는 것인데 ‘시코드 시티’의 이런 행위는 그 체계가 훼손된 것이다. 인위적으로. 그러나 연합군들은 이를 결국 해결했다. 보람이 외친 “아미 오브 퀴어”는, 그러니까 사랑하는 정세랑 작가는 다양한 몸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쓰고 싶어 이 세계를 만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세계에 대해 쓰면 그 세계가 오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정소연 작가의 ‘깃발’은 이주 결정을 단 한 번도 번복할 생각이 없는 유나와 이주가 아닌 그곳에서 할머니가 될 거라는 하정이 사랑에 빠져 서로의 행복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유나와 하정을 만나면서 그리고 유나의 동생인 미나와 세 사람이 같이 사는 모습을 만나면서 얼마 전 읽은 폴리아모리 에세이가 생각이 났다. 다양한, 그리고 스스로들이 선택한 가족구성원들과 침범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기의 어려움과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한 것들을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유나보단 하정에 이입되고 마는 사람이라 읽으며 조금 슬펐지만, 그럼에도 유나의 이주계획과 하정이 그곳에서 할머니가 되어가겠다는 꿈을 각각 또 같이 응원하고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소연 작가의 글은 처음 읽는데, 실린 단편은 연작이고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했다.)


조우리 작가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그런’ 가게들 중 하나인, 예전과 달리 사라지는 데 더 속도가 붙는 레즈비언 업소 ‘엘리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도망쳐 나가야하는 동굴이 아니라 안전함을 찾아 사람들 스스로 찾아들어오는 동굴, 엘리제는 이제 페페가 새로운 주인으로 이어갈 것이다. ‘어떤 것이 사라지지 않게, 그냥 거기에 있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공간들을 생각하며 추억해본다. 나의 많은 것들이 이뤄지고 만나지던 곳들. 내가 어찌할 도리 없는 것투성이지만, 어떤 공간이 그곳에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네 모습 그대로.

조해진 작가가 김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가장 큰 행복’은 후반부를 읽으면서 콧물을 조금 흘리며 울었다.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멈추기로 하고 서로를 선택한 두 남성의 원치 않는 이별의 시간이 담겨 있었고, 이별 후에도 사랑은 할 수 있다는, 정말 이별보다 큰, 가장 큰 사랑이 담겨 있었다. 불안한 삶 속이지만 서로를 선택하고 기꺼이 함께한 15년. 누군가들의 그런 시간, 그런 사랑의 영속성, 그 시간을 함께 했기에 이해하게 되는 안온한 결여에 대해 생각하며 울었다. 조해진 작가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천희란 작가의 ‘숨’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은 어림도 없이 살아온,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나 같은 여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정희, 노년의 여성 정희가 나온다. 혼자인 외로움보다도 지독한 가난 속에서 버텨야 하는 것이 더 겁이 나 가지고 있는 돈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계산하는 정희. 18살 때 수경과 연애 이후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하지 못하고 70대가 되어버린 정희. 그런 정희를 보며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정말 이 나라에 생활동반자법과 동성혼이 인정되면 좋겠다. 이렇게 쓸리는 설움과 외로움이 아녀도 인생은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랑을 사회적 합의 운운이네, 잘못이네 하며 니들 멋대로 금지하지 말아 달라고.


이 책의 마지막 수록작은 한정현 작가의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이다. 수호는 나의 전 남자친구, 아니 지금 기점으로 이야기하자면 전 여자친구였다. 한정현 작가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자신만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누군가에게 이해받아야 할 부분이 전혀’ 아니라고 썼다. 물론 소설 속에서 수호는 여전히 사랑하는 ‘나’에게마저 이해받아야 했고, 그래서 상처 받았지만. ‘나’도 안다. 수호는 여전히 수호란 것을. 모든 이들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읽는 작가들이 많았다. 소설집을 통해 만나는 이점이 있다면 이런 점이다. 잘 몰랐거나 손에 들지 않았던 이들을 애정하는 순간들로 변화하는 것을 갖게 되는 것. 이 책에 수록된, 그러나 아직 그들의 이야기를 읽지 못했던 어제와 달리 내일은 그들의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로서 일단 그게 행복한 지점. 개인적으로는 ‘깃발’과 ‘가장 큰 행복’이 너무 좋았다.


아, 사랑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 정말,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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