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원, 토요일 외로운 없는 삼십 대 모임
불편했다면 불편한 대로 성공일 것이고, 낯설다면 낯선대로 성공인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사실 맨 처음엔 창작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이 내내 남으며 “글을 잘 쓰시잖아!” 생각했던 거지만.)
혐오세력에게 툭하면 원치 않게 호명되는 성소수자, 게이, (예)비감염인 등의 정체성들이 들어있는 이 책을 다 읽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다른 책들과 병행하며 읽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기도 했고, 일명 ‘섯버체’라고 하는 익숙치 않은 글투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저자 유성원을 그전에 몰랐고,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된 배경엔 그와 상관없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일단 팔로우하고 있는 난다 출판사의 신간에 표지가 오! 하고 눈에 들어온 책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추천사를(책을 읽으면서 보니 정확하게는 해설이었다) 쓴 타리의 글을 보아서였고 (믿고 보는 타리인가 아닌가) 홍승은 작가가 글쓰기 강연에서 언급한 책이기도 했다. 애정에 애정이 더해진 상황들 속에서 이 책을 안 읽을 수 있나? 싶었고 나는 이 책을 여러날 밤 읽어갔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고 할 기운이 글에 담겨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해서 살아있다. 살아남았다.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절실한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에서 수없이 나오는 자살이나 죽음, 밑으로 떨어진 프라이드 없음과 같은 모습은 그라는 개인에게만몰고 갈 수 없는 복합적 감정과 맥락과 과정이 존재한다. 노력하면 할 수 있어, 너는 행복할 수 있어, 하며 끊임없이 사회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상성’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할 이들에게만 보여주는 이중적 단면이다. 누군가이건 상관없이 삶에 있어 필요한 것들이 안전하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사실 사회는 무심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삶에는 관계와 자원, 안정, 안전, 사랑이 필요하고 모든 과정에서 무시되지도 차별받지도 않아야 한다. 특정한 모양으로만 존재하도록 규정되어온 오랜 시간 속에서 이 책은 그것에서 빗겨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이 책은 수치심을 강제로 떠안게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말할 자격, 환영받지 못한 주체들의 말하기이다.
저자는 HIV/AIDS운동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그이기도 한 ‘문란한 게이’들의 ‘성적 행위’들은 단지 노콘이나 항문섹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들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가 책의 말미에 이야기한 늙어감에 따라 누군가가 성적 대상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등이 신체, 나이, 경제적 상황, 가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어느 순간 그만이 아니라, 게이가 아니라, (예)비감염인 혹은 감염인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물론 앞서의 이유들도 모든 인간의 문제이지만, 뭐랄까 나이듦이나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않을 삶을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의 문제와 관통하게 된 것이다. 어디서건 건강만을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건강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문제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적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고 부당한 일에 함께 싸우면서 책임을 나눠가지는 것”(나영정)이 내 삶에서, 내가 멈추지 않고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여 저자의 글 외 타리의 멋진 글(해설)을 읽으며 적극 동의하는 바이기에 함께 기록해둔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균형법 추행죄 폐지, 후천성면역결핍예방법상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폐지, 동성혼 법제화를 주장할 것이다.”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의제강간문제가 연동되어 생각되었고, 이 부분에 대해 더 깊어질 수 있길 바라기에 메모로 남겨둔다.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 대 모임>, 유성원, 난다
p11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고 밥술을 뜨는데 이 사람이 누나가 꿈꾸는 결혼, 삶의 한 조각이구나 생각하니 그녀와 나는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다르게 살아갈 것인가 싶어 견디기 힘들었다. “만나는 사람은 있어요?” 매형의 물음에 없다고 짧게 답했다. 그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동안 조금씩, 고통스러운 것은 아닌데 비참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구나. 이것이 나로구나. 이게 소수자인 내 모습이구나. 저기 저렇게 친구들과 놀러갈 여름휴가 계획을 짜는 이들이 사회의 다수이며, 구성원이구나. 나는 저들의 관대한 포용을 가장한 무관심 속에서만 자유롭다고 착각할 수 있는 거로구나 생각하며 앉아 있었다.
p21 전쟁기념관을 둘러보고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갔던 인권기행에서는 여러 생각을 해야 했다. 나는 비정상이라는 것, 남들 역시 누군가는 비정상이고 그걸 저 나름대로 견디고 있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비정상성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립감을 느끼게 했다. 내 비정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타인의 비정상에 무심해짐을 느꼈다. 이 무심은, 참여하고 간섭하는 관심의 반대가 아니라 누가 죽게 되거나 위기에 처해도 그를 돕는 것이 나의 무엇에 유익한가? 따지는 종류의 진심이었다.
p39 누군가의 관계를 맺고 데이트를 하고, 그걸 유지하는 비용과 시간을 건강하게 유지해본 적이 없다. 적은 수준의 지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 역시 부담이 된다.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기간을 정해두고 만났다.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면 스트레스가 앞서니까 그만 보게 된다.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던 선에서.
자주 가게 되는 곳은 찜방이나 디브이디방이다. 누구와도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고, 성욕을 해소할 수 있으며, 좋아하고 싶었고 잘해보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실감을 구체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목소리와 성기와 몸을 가진 아무나와 오천 원에서 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공간.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공격받는 건 자존감인데 사람들이 관계맺는 ‘커뮤니티’, 돈과 시간과 감정을 들여 친구가 되는 가상의 공간에 대해 느끼는 지루함과 불안이 내가 느끼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한심함인지 아니면 질투 같은 적개심인지 알 수 없었다.
p47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하는 일에 공포를 느낀다. 자살을 안 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중인데 그건 자살을 안 하는 데 온 온 힘을 쏟아야 해서다.
p68 안 견디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것도 안 견디고 싶다. 하면 하는 사람, 안 하면 안 함을 이해하는 사람. 이해할 필요도 없이 바로 수행해버리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 안 함을 이중으로 생각할 필요 없이, 아무것도 안 보는 사람, 본 것도 안 본 사람이 되고 싶다.
p73 볼 수 없는 사람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며 힘이 난다.
p73 남들에게 읽힐 만한 글을 써내고 싶다. 하지만 강요하거나 증명하려는 마음으로 해내려고 하면 안 된다. 어차피 안 써진다. 어차피 안 써지는 것을 남을 의식하면서 쓸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문장씩 써나갈 수 있을 뿐이다.
p148 “아까 예기했거든. 요새 관심사가 고정되어 있다고. 누군가와 관계맺는 것보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알고 싶고 거기에 물리적인 시간을 쏟고 싶다고. 그런데 너랑 통화하면서 깨달아버렸어, 내가 얼마나......”
p149 d와 통화하고 나니까 흐릿했던 게 대여섯 가지였으면 그중 하나가 선명해지고 나머진 지워져버린 기분이었다.
p264 한 달을 생각하면 좋다 나쁘다가 있는데 이 나빴던 일도 좀 길게 보면요. 인생을 이렇게 길게 보면은 좋은 일 나쁜 일은 없는 거 같아요. 지금 말고 나중에는 아쉬워지겠지. 여기까지였는데 왜 그렇게 조바심냈을까 하고.
p272 탈시설 운동을 잘 몰랐는데 오늘 들은 발표와 토론들은 훨씬 다양한 질문을 담고 있었다. 시설화와 탈시설화, 이것은 물리적인 시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존엄과 주체성을 삭제하는 조건하에 놓이게 되는 것, 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분류되는 어떤 이의 속성은 시설 바깥에 있는 동일한 조건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p299 내 발언은 정치적으로 옳은 위치에서 내뱉어지고 있다. 나의 특정한 조건, 상황이 내게 정당성을 부여했으니까, 하고 혹은 당사자가 비슷한 억압과 차별을 공유한다고 해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증폭시킨다고 절대 제발 생각하지 말자. 앞으로도 항상요.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뿐이고 거기까지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어떤 의견이 필요할 수 있어도 그것은 빈칸 채우기나, 세계를 인식하는데 스스로 필요한 교정 작업이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옳다는 의식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아니 되겠죠.
p333 나는 몸에 수치심이 있다. 과체중인 거 복부비만인 거 근육질이 아닌 거. 그 외에도 여러 비난할 요인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아무 상관없다는 듯 전적으로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주다니? 나는 신이 나고 자신감에 차 있다.
침대에서 뽀뽀하고 눈 마주치는 동안 생각했다. 이런 사람과 애인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주려고 하면 그것들을 다 받아주는 사람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어디를 같이 놀러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인권 활동 같은 것도 안 해도 될 거고요. 삶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p337 문제는 박 탈 사람이 없는 게 아니고 너무 많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데 있고 얼마든지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박 타러 온 곳에서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주의해왔는데 홀린 듯이 정이 들어서 속이 상했다.
왜냐면 내가 그 사람과 영화 나오는 방에서 껴안고 뽀뽀하는 동안 했던 행동들이 그동안 너무나 하고 싶던 종류의 것이어서.
p345-346 얼마 전에 고생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서 다음에도 보고 싶고 또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던 걸 떠올랐다. 그 방심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p362 요즘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한다. 오십 년 동안 보고 싶어한 사람이 있었어도 말 안 하면 모르니까.
p364 노콘 항문섹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으나 어떤 젊은이들, 아름다운 청년들을 인스타 등에서 목격하면 저들이 정말 게이구나 나와는 다르구나, 하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신체나 외모 조건, 삶의 양식에 따른 분류를 더 강하게 느낀다. 나는 동성애자로서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라 생각하고 있으나 그러한 나의 성행동, 내가 섹스하는 것과, 저 미청년이나 젊은이들이 동성과 관계맺는 것은 다른 질감이라 느낀다. 나의 질문은 어디로 발전해야 할까? 회의에서는 이제 정해주자고, 우리가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 안에 싸도 돼요? 라는 말에는 안에 싸고 된다,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논쟁은 과학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면 그 논의의 출발선을 그어주자고 한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오는 게 뭘까. 누가 늙은, 늙어간 혹은 외모 자원이 부족한 내 입에 싸줄 것인가 혹은 자기 입에 싸게 해줄 것인가, 이것은 정말 다음 질문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
p368 소수자로서 살아가면서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을 파악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무시하는 일은 중요했다. 내게는 이다음에 올 것을 상상하고 고민할 의무는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p369-370 어떤 행동이나 말들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겨져 있다. 나는 공적 공간에서 항문섹스, 노콘 섹스 등의 단어가 노출돼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혐오세력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
일부 게이 남성에게 만남의 통로가 되는 어플 혹은 사우나 등의 공간에서의 문법은 그에게 관계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성애자와 달리 아직은 제한적인 선택지 안에서 친밀함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시대와 사회, 공간의 한계를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바라보게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이렇듯 차별과 불평등은 개인의 특성이나 문제행동의 결과처럼 보이도록 강제된다. 구조적 취약성을 소수자 개인이 떠안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세계에서 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다수에게 늘 ‘비용’이라는 부담으로 인식되어 변화를 저지시킨다. 소수자 개인이 처한 환경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는 동일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p373 감염 사실을 인지하고 조기치료를 시작해 에이즈로의 진행을 막고 전파 능력을 상실하면 더이상 신규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감염인 당사자가 예방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전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감염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국제적인 HIV/AIDS 정책은 누구나 HIV에 감염될 수 있음을 알리고, 정기적인 검사로 자신의 상태를 알게 하여 확진 판정을 받으면 치료에 들어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타인에 대한 전파력을 제로로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HIV/AIDS를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검진과 치료과정에서 낙인과 차별로 접근 장벽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일이다.
p375 이렇듯 치료받은 감염인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없다는 사실과 프렙이라는 혁명은 국제사회에서 상식으로 자리잡았으나 아직도 ‘동성애 하면 에이즈 걸린다’는 구시대적 막말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해내는 한국에서 감염인과 에이즈는 낙인과 몰이해의 정점에 있다.
p376 HIV감염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해당 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유가 아니라 이에 걸맞은 접근법과 정책을 세워야 할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해당 집단을 낙이찍고 주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특성이 맞는 의료 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p384-385 그리고 그것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다. 누군가가 차별 발언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 그것을 제지하고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HIV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외우기.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된다. 누구도 사람의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를 모욕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