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

추지현 외_페미니즘, 안녕들하십니까

by 수수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구한다’ ‘지식과 대학의 역할’에 대하여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안녕들하십니까>. 처음에는 학부가 주되게 이야기될 대학과 관련한 이야기라 생각해서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읽으면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와 같이 계명대학교의 여성학과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 및 관련자들이라면 더욱 공감되고 와 닿는 지점들이 많아서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얻게 되기도 했다. 또한, 대학에 왜 페미니즘이 계속해서 필요한지, 페미니즘이란 어떤 것인지를 각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함께 정돈되면서 배울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너무나 오염되어버린 이 세계에서 함께 공명하고 나눌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 “어디에 있나요?” 찾기 위한 목소리이기도 하고, “어서와~ 내가 여기에 있어”라고 같이 마주하자고 건네주는 목소리이기도 한 듯했던 읽기였다. 나도 잘 살아남고, 잘 살아가야지.


<페미니즘, 안녕들하십니까>, 추지현 외 지음, 창비


p6 그리고 그 연결은 여성됨에 국한되지 않고 농민, 장애인 등 또다른 타자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이 여성들이 지향하는 것은 그들 내부의 차이를 억누르고 여성이라는 하나의 정체 성으로 연대하려는 동일성의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위치에 뿌리내리면서도 타자의 발화에 주목하고 그 위치로 이동해 사회 부정의의 작동 방식을 살피며 자신의 부분적 지식과 관점을 갱신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였다는 말이다. 이 여성들은 그러한 횡단의 정치를 통해 페미니즘이 민주주의에 갖는 강력한 힘을 적확히 보여주고 있다.


p7 저자들은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만난 시기는 물론 학생, 시간강사, 연구노동자, 교수 등 현재의 사회적 위치도 상이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의 여성됨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언어를 갖게 된 것, 이를 통해 다른 여성들의 삶, 나아가 가족, 조직 등 한국사회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페미니스트로서의 실천 과정에서 성별을 넘어 다양한 차이들을 가진 몸들과 대면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자신 역시 변화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부분적 지식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젠더로 환원될 수 없는 차별과 배제를 더욱 깊게 문제 화하고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페미니즘을 사회변혁을 위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적 지식과 실천'으로서 경험한 것이다.


p8 이때 여성들이 페미니즘 관련 지식과 실천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통로는 사실상 디지털 공간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여성들 간의 다양성과 차이, 그럼에도 여성을 여성으로 만드는 젠더의 작동 방식에 대한 숙의는 이뤄지기 어려웠다. (…) 남성과 여성 간 동등한 자원의 분배나 인정에 대한 요구를 넘어 다양한 성적 차이를 억압하는 현행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 두개의 성별이라는 이원 중심의 젠더 관계가 인종, 민족, 계층, 장애 등과 맞물려 작동하고 있고 또한 늘 구성되는 과정 중에 있음에 주목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하여 다양한 차이들이 공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p10 김하영은 대학을 "슬림"하게 만들려는 경제적 효율성 중심의 구조조정 시도들이 오히려 지역을 슬럼으로 만들고 있으며, 대학은 물론 해당 지역을 살리기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p11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집단의 권익에 부응하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젠더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해 끊 임없이 재생산되는 열려 있고 유동적인 것으로 바라보며, 상이한 위치에서 구축된 복수의 경험적 지식의 조각들을 묶으면서 더 강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지식의 생산과 열린 정치를 추구해왔다.


p15 페미니즘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질문하고 경청하며 함께 듣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지식과 실천이다. 대학이 이러한 교육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다양한 몸들이 함께 살아가는 정치체의 시민으로서의 소양, 즉 타자를 배제하고 적대시하거나 경쟁력 없는 자신을 질책하며 분노하기보다 어떠한 구조적 불평등이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지를 질문하는 소양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대학과 페미니즘이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다. 페미니즘 역시 대학을 재구성하는 과 업이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의 일부라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p24 여성들은 온라인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의제를 형성하고,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정책과 법률의 변화를 촉구하는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사회적 변화를 추동했다. 이는 분노의 표출, 통쾌한 성찰, 즐거운 놀이로서의 페미니즘 실천과 함께였다. 차별의 현실을 폭로하는 미러 링 전략,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느슨한 연대,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공감과 지지는 여성들로 하여금 일상의 즐거움을 문제 삼되 재미는 놓치지 않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 페미니즘에 쉽게 관심을 두고 참여할 수 있게 했다.


p25 페미니즘이 사회를 해석하는 지식이자 사회변화를 논의하는 중요한 사상으로 부상하면, 성차별과 불평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여성운동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언제나 등장했다.

다만 최근의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남성들이 자신을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로 이해하고 그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지목하며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의 언어와 실천 방식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 양상이 다소 다르다.


p36 페미니즘을 접하고 세계를 넓혀가는 일은 근사했지만, 그 과정은 마냥 멋있지도, 매끄럽지도 않았다. 이는 그야말로 우당탕하는 여정이 었고, 이불킥을 하고 싶은 흑역사 또한 무척이나 많았다. 갈등하는 속내를 털어 놓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욕하기도 하며 시답잖고 말도 안 되는 대화와 논쟁을 하면서 함께한 이들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p40-41 성평등 교육과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이 대학을 비롯한 학교에서 의무화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구조적 성차별이 부정되고 성평등 정책이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교육에서 전달하는 지식이 힘을 발 휘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내가 대학에서 페미니즘 실천에 참여하고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교류하며 깨달은 사실은 페미니즘이 단순히 정교화된 의미 체계나 이론이 아니라 그 행간에 역사와 경험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성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페미니즘에서 지식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고, 이 지식은 언제나 '상황적'이다. 페미니즘 이론은 책으로 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황적' 성격을 이해하고 행간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갈등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공간과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중략) 그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가 지적하듯 함께 페미니즘 지식을 나누고 혼란과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 없이 홀로 지식을 접하고 배울 때, 특정 담론에 대한 편향이 강화되든지, 당장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실용적인 페미니즘 지식에만 집중하거나 생물학적 여성의 경험에만 주목하면서 페미니즘 이론과 지식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등의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글과 말로 전달되는 지식이 아니라 '성찰적' 지식이자 실천이기에 페미니즘 지식을 함께 배우고 논의하며 실천할 관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물리적 공간과 시간 또한 필수적이다.


p43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망설이고 고민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은 내가 어떤 위치에서 질문하고 말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p44 페미니즘이라는 가능성과 대안적 지식을 탐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대학, 페미니즘 지식을 전수하는 고등교육기관이자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대학이 필요하다.


p49 그러나 이 경로는 결코 깔끔하게 정리되는 단일한 노선이 아니고, 그러하기에 혼자 걸어갈 수도 없는 길이다. 배움은 원래 하나의 답이나 경로로 딱 떨어지지 않는 지저분한 측면이 있다. 특히 페미니즘은 지식과 실천이 긴밀히 결부되어 있고 현실세계에 그 어떤 학문보다 발붙이고 있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지식과 경험을 끊임없이 오가는 귀추적 사고의 과정은 페미니즘에서 언제나 공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공동으로 생산된 지식과 경험이 더 나은 지식으로 이어진다 는 믿음 때문이다. 샌드라 하딩은 이러한 페미니즘 알기는 언제나 타인을 경유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 나은 지식, 하딩의 표현으로는 ‘강한 객관성'을 가진 지식은 다양한 여성의 경험을 경유할 때 더 정확해 진다. 성차별적으로 기울어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차별받았던 이들이다. 차별로 인해 그 구조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던 이들이다. 이러한 이해는 ’생물학적'으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경험과 지식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고 세계의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페미니즘 지식을 습득하고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알고 타인의 부분적 지식과 상황적 맥락을 본인의 경험과 연결짓는 시도를 의미한다.


p50-51 디지털 공간의 페미니즘 지식들은 여성들에게 현실의 성차별에 빠르게 대응할 논리를 제공한다. 또한 그곳은 그 밖의 공간과는 달리 페미니즘을 발화할 때의 위험부담을 줄여주기도 한다.


p75 서울과 달리 지역은 익명성이 지켜지기 어려운 공간이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지역 특유의 좁은 관계망은 성별화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청년 남성에게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는 자신의 진로를 개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인맥이 될 수 있지만(이정은, 2022), 청년 여성에게 그것은 페미니스트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하는 기제이기 때문이다(김하영, 2022). 가부장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여성은 주류사회로부터의 비/공식적 추방을 각오해야 하고(조주은, 2007), 사회적 관계망이 촘촘히 얽혀 있는 지역일수록 그 댓가가 매우 혹독할 수 있다. 지역의 페미니스트들이 좌표가 찍히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페미니스트 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p83 지역 대학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식별함으로써 지역 특유의 성차별 구조와 보수성을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할 필요가 있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과 '가부장제'에 맞춰진 (강은, 2022) 지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청년 여성들이 급증하는 현실은 지역과 지역 대학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공간"(박서화, 2023)으로, 지역 대학은 지역의 진보를 위한 창의력과 실험정신을 배양하는 요람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p97 미투는 단지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폭로하는 게 아니라, 기득권에 의한 성불평등•성폭력의 재생산을 멈추자는 목적을 지닌 운동입니다.


p101 성평등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천박한 실용주의가 대학을 지배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도나 평가 기준에 따라 기구는 만들어져 있지만, 사회적 정치적•문화적 담론을 논하는 학문적 공간은 계속 축소되고 있어요. 학생들이 여성학을 배우고 힘을 받을 수 있는 학문적 공간이 열려 있어야 기구도 제 역할을 하고 활성화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중략)

기구는 갖추어졌지만 아주 낮은 수준의 규율과 규칙, 법치주의로 환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평등센터•인권센터 장을 전문성 없는 법대 교수들이 맡는 상황도 생깁니다. 피해자 보호와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익명성 보장, 절차적 공정성 등의 원칙을 만들어두었더니 그 자체가 어떤 철칙처럼 고수되면서 사건 발생 사실 자체나 그 내용이 외부에 퍼질까봐 쉬쉬하는 비밀주의만 강화되고, 오히려 인식 확장의 기회를 막고 있어요. 피해 당사자가 문제해결의 주 체로 서지 못하고 어떤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생기고요.


p113 저는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누가 퍼뜨렸느냐에 대해서도 혐의를 갖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개념적 명명체계를 아주 정교하게 발달시켜왔기 때문에 쉽게 젠더갈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젠더불평등이나 젠더기반폭력이라고 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정치권에서 이대남에 주목하고 젠더갈등 운운하면서 또다른 불평등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세대 간 불평등 문제, 부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 등은 싹 달아났어요. 이렇게 담론의 지형을 바꾸고 유지해나가는 데 누가 기여하고 있는가, 그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도 페미니스트들이 던져야 합니다. 게다가 20대 남성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면, 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성평등 인식이 필수적이라고 설득해야 되지 않겠어요?


p121 지금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지역 간 격차도 커지고, 학벌 위계는 더 강화되고 있어요. 학생 교수 할 것 없이 모든 대학 구성원들의 젠더경험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다층적인 차원이 얽히다보니 가령 지방대의 여학생은 생존이 더 어려워지는 식으로 문제가 드러나고 있어요. 이제 대학은 과거와 같은 엘리트교육이 아닌 대중교육 공간인데, 이 대학이라는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페미니즘 관점에서 계속 분석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과제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p125 ‘성' 강의가 성교육, 성차이, 성차별, 성평등 등으로 뒤죽박죽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성질,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상이한 개념을 ’성‘'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뭉뚱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학습한 것이 마치 타고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개인의 성격이 성차로 설명되며, 성폭력이 본능의 문제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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