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한 농담

송강원_수월한 농담

by 수수

보라색 책을 읽고 손에 든 파란색 책도 펼치고 보니 엄마를 담은 책이었다. 대구퀴어영화제를 통해 <퀴어 마이 프렌즈>로 만나보았던 강원님의 책 <수월한 농담>은 엄마의 마지막 3년을 담고 있다. 투병 시간 속 엄마와의 이야기와 엄마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이 작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다가 나도 엄마를 생각해보다가 그랬다. 엄마의 질환과 살아가려고 하는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계기로 쓰였을 이 책은 엄마와 아들, 원가족이 솔직해지기도 하고 서로 돌봄을 주고 받는 새로운 과정이기도 하고 나아가 원가족들이 아닌 이들과의 돌봄을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는 괴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닥칠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어떤 표정•몸짓•행동들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같이.


<수월한 농담>, 송강원, 유유히


p12 숲을 걷다가 문득 죽고 싶었다. 내 걸음과 낙엽이 부딪혀 내는 소음을 참기 힘들었다. 내가 내는 소리가 싫어서 죽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쯤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젖은 마음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걸음마다 질질 흘리고 다니는 내가 싫어서, 남에게 내 우울을 묻힐까 두려워서, 존재와 수치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섞기 시작했다.


p25 어쩔 도리 없이 바탕색이 슬픔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슬픔의 바탕색을 끌어안고 자기가 선택한 색을 덧칠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랑이라면, 옥은 비로소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고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아닌 옥으로 더 깊이 알아갈수록, 죽음을 품은 옥이 다채롭다. 죽음을 끌어안은 삶이 이토록 다채로운 것이라면, 죽음은 과연 사라지는 일일까. 사라지는, 사라진 것들은 모두 슬픈 일일까.


p64 과장되게 고갤 내저으며 서로를 징그러워하는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대화 속에서 서로를 향해 안전하게 기대고 있다는 걸. 있는 그대로 마음을 꺼내놓는 일이 이제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는 걸.


p71-72 통증은 몸을 폐쇄 공간으로 만들었다. 진통제도 소용 없는 날에는 엄마는 자신의 몸 안에 갇혀 탈출하지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 점점 지쳐가는 엄마가 내뱉는 비관의 언어는 아버지에게 슬픔으로 닿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은 가장 가까이 있을 때, 가장 크게 실감하게 된다. 퇴직을 결정하 고 엄마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엄마의 작은 반응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살피는 아버지는 이미 그의 최선에 도달해 있었다.


p75 엄마의 돌봄을 아버지에게 믿고 맡기는 것도 나를 챙기는 일이었고, 나를 잘 챙기는 건 결국 엄마를 돌보는 일과 연결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돌봄으로 연결되었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돌봄의 순환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동시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워갔다.


p118 슬픔이 일으키는 긴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p185 옥과 함께 떠올리지 않기가 힘든 두 사람이 있다. 남편과 시어머니다. 50년대에 태어난 많은 여성이 그랬듯, 딸은 자연스레 아내가 되고, 아내 바로 뒤에는 며느리가 따라왔다. 옥은 삶 깊숙이 들어온 두 사람에게 오래 자리를 내주었다. 막상 자기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30년이 지나 있었다. 미움도 사랑만큼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었다. 나이 앞자리가 6으로 바뀌고서야 옥은 지난 장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성실한 자기분열의 시작이었다. 이미 지나버린 장면에 다른 해석이 생긴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p235 엄마가 아프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돌보려면 똑바로 서 있어야 된다고 믿었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슬픔의 무게에 휘청거리지 않으려면 내 안에 고이는 슬픔을 꺼내놓을 곳이 필요했다.


p236 쓰는 일은 기대는 일이었다. 고이지 못한 슬픔은 나를 통과해 글이 되었다. 서로의 글 속에서 다양한 삶이 교차했고 포개어졌다. '살아간다'는 저마다의 임무를 각 자의 방식으로 해내는 동료가 모여 공동체가 되었다. 그 곳에서 글로 삶을 나누는 일은 기꺼이 뒤엉키는 일이라 는 걸 배웠다. 엉성하고 조잡해도 얼기설기 뒤엉켜 서로에게 기대고 기댈 품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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